기사 (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노동조합 결성과 근로기준법의 발견 노동조합 결성과 근로기준법의 발견 1. 철학자 전태일전태일은 초등시절에 이곳저곳 떠돌아다녔다. 여섯 식구가 천막촌에서 살며 단칸 셋방조차 그나마 사치였다. 때문에 초등학교는 겨우 2년을 다녔고 대구 남산동 셋방시절 근처 명덕초등학교 부설 야간 청옥고등공민학교(중학교 과정) 1년을 다녔을 뿐이다.학력이라 할만한 건덕지가 없지만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하층 노동자로 입에 겨우 풀칠하면서도 배움을 향한 열의가 남달랐으며 지혜를 구하고 세상의 참뜻(진리)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했다.서양에서는 지혜를 사랑하는(philo+sophia) 사람을 철학자(philosopher)라 한 정책 | 송필경 | 2023-07-13 17:00 연꽃의 미덕과 측은지심 연꽃의 미덕과 측은지심 주위 환경이 교육에 끼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말할 때 흔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교훈을 든다. 곧 맹자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3번 이사를 했다는 내용이다.맹자는 어려서 묘지 가까이 살 때 줄곧 장례 지내는 흉내를 냈다. 시장 가까이 집을 옮겼더니 이번엔 물건 파는 흉내를 내 글방이 있는 곳으로 옮겼더니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다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전태일의 집안은 편안한 때가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심한 생활고로 한때는 가출해 식모 일을 하며 혼자서 아등바등 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사업이 제대로 된 적이 정책 | 송필경 | 2023-03-28 14:23 “전태일을 기억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 “전태일을 기억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 전쟁과 가난으로 ‘그늘과 그늘로 옮겨 다니면서 자란’ 전태일 열사에게 대구 청옥학교를 다니던 시간들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남아 있다. 가장 뜨겁게, 가장 깊이 ‘나 보다 더 힘든 어린 영혼’을 사랑한 전태일의 정신이 싹튼 곳, 대구는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전태일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창립선언문 중에서본지 송필경 논설위원이 지난 2019년 창립한 (사)전태일의 친구들(이하 전태일의 친구들) 제2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전태일의 친구들’은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기를 간절히 바 건치 소식 | 이인문 기자 | 2022-05-04 17:19 전태일이 살던 대구 남산동…그의 이름이 걸렸다 전태일이 살던 대구 남산동…그의 이름이 걸렸다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2178-1번지에 ‘전태일’ 이름의 명패가 걸렸다.이곳은 1970년 11월 13일, 50년 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태웠던 전태일 열사와 그 여섯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 1963년 방 두 칸을 빌려 살았던 곳이다. 전태일 열사가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한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 강당 부지)를 다녔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전태일 열사의 생거지를 알게 된 시민들은, 2018년 개발로 이 집의 담장과 대문이 허물어져 보건복지/사회 | 안은선 기자 | 2020-11-13 17:14 "대구에는 전태일 열사가 살던 '집'이 있다!" "대구에는 전태일 열사가 살던 '집'이 있다!" 11월 13일은 한국 노동운동의 첫 출발점이자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 중의 한 분인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다. 1948년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젊은 나이로 서울 청계천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았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7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천박성을 자신의 몸으로 밝힌 '불꽃'으로 드러내주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삶을 기리고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하는 흐름이 ' 건치 소식 | 이인문 기자 | 2019-11-12 17:13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