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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고 공부나 합시다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3.07.05 00:00


새벽에 등교하며 “엄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가 아니라 자정 넘어 하교하면서 “선생님, 잠깐 집에 다녀오겠습니다”고 한다. 수업 중에 덕담하려 치면 “그만하고 공부나 합시다”고 대드는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면 선생님은 찍소리 못하고 당하기 일쑤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나다를 깨칠 무렵부터 오직 일류대학을 염두에 두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유학이 지배하던 시절부터 과거 급제에 대한 집착이 뿌리깊은 전통으로 자리 잡아 지금도 기상천외하게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사법시험 합격에 죽자고 목을 매달거나, 의대만 가면 인생이 만사형통인 줄 아는 의식이 교육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교육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싱싱한 삶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해치고 남의 위에 올라서도록 하는 반인간적 교육제도와 자식들을 입신 출세의 길로 달리도록 채찍을 치는 것만이 유일한 교육이라 믿는 학부모들의 합작품이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은 ‘내 자식만 잘 되면 그만이다’는 출세지향이 교육의 전부라는 착각을 심어주었고, 내 자식 기죽지 않게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담임에게 돈봉투로 인사를 해야 안심을 한다. 스승과 제자라는 미명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고 실제 학교 교육에서는 학원 강사와 수강생으로 자연스럽게 전락한 지 벌써 오래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학교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인 창조 능력이나 따뜻한 감성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직 인기학과에 들어갈 성적만이 행복일 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봉사활동마저 내신 성적에 반영하자 이 또한 점수 따기의 한 과정이 되고 말았다.

‘제자’의 모든 활동을 점수로 매겨 효율적으로 보고하는 것이 ‘스승’의 고귀한 의무가 되었다. 이제 학생은 무슨 짓을 해서든 점수 올리는 데만 눈을 돌려야 하고, 자식 능력이 부족한 부모라면 돈다발을 지고라도 이를 메워야 하며, 교육부는 이를 토대로 인간 서열을 매기는 것을 ‘효율’이라고 선전하며 미덕으로 삼고 있다.

부모의 재산정도는 국세청이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고, 학생의 건강 여부는 의료보험공단에서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학생의 은밀한 사적인 부분은 고해를 받는 신부님처럼 담임 한 사람만 알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교육부가 한 곳에 모아 인간을 줄 세우는데 이용하겠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뿐더러 보수 언론조차 애초에 심각한 인권 침해라 지적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이것을 ‘효율’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시시콜콜한 것조차 인간성을 평가하는 대상으로 만들어 그것을 담임의 주관적인 잣대로 잰다면, 돈 없어 과외를 못하고, 못 먹어 허약하고, 돌릴 봉투가 없는 가난한 집 자식은 생활기록부에서도 서러움을 겪을 것이다. 그 기록부에 담임이 ‘주홍글씨’를 새기면 이것은 전과 기록이 되어 평생 가슴에 멍에를 씌울 것이다.

샅샅이 기록한 것이 두고두고 남는다면 내 자식 잘 봐달라고 건네는 돈봉투로 기록을 조작하려는 부패의 사슬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오로지 머리에 지식만 꾹꾹 쑤셔 넣는 것만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 버리는, 이런 한심한 짓거리야말로 우리 교육의 근원적인 폐악이라고 인식해야만 한다.

교육을 국가 백년지대계라 한다. 그러기에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보다 훨씬 웃도는 기형적인 교육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어느 정권에서도 국정 주요 과제였다. 박정희의 중·고교 평준화, 전두환의 과외금지 그리고 DJ정부 이해찬의 내신제도 도입 등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지만 이런 폐악을 근절시키려는 시도는 아직까지 제자리 맴맴이다.

인간을 효율적인 틀에 가두어 오직 알만 잘 낳는 양계장 닭처럼 양육해서는 안 된다. 교실에서 소리 없이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는 스승의 따뜻한 마음에 교육의 미래가 깃들어 있다는 자세가 더 소중한 것이다. 입신출세만이 교육의 전부라 믿는 전 국민적 미신을 타파해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게 만드는 것이 참여정부가 풀어야 할 시대적 현안이다.

교육의 문제를 본질적이고 지속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효율성 제고’라는 미명아래 컴퓨터 자판이나 토닥거리며 인간을 평가하려는 교육정책은 하루 빨리 버려야 한다.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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