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이라크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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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이라크에서 온 편지
  • 편집국
  • 승인 2003.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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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전쟁

우리팀의 진료지역은 뉴바그다드(바그다드 내의 행정구역 명칭, 우리나라의 구 정도에 해당, 시아파 거주 빈민지역)의 알마쉬텔이라는 곳이었다.

도착 다음날 아침 진료소로 이동하니 아직 진료를 시작하지 않은 듯 사람들 수 백 명이 줄을 서있다. 이곳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진료를 하고 오후에는 진료가 없단다.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의료욕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한다.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 이라크에선 치과진료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기가 나가서 장비를 가동할 수 없는 시간에는 한방 예진을 도와주었는데, 예진을 보며 이라크 여성들에게 “아이가 몇이나 되냐”고 물어보면 대개 “6명이었는데 지금 3명이 살아있어요” 또는 “7명 중 5명이 있어요”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체크를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답변한 아이들 중 약 70-80%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너는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와 “주변의 식구나 친지들이 어느 날 죽거나 사라질 거라고 걱정하니?”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진료소에 왔다. 아이는 6-7개월 정도 되어 보였다. 이틀 동안 설사를 했단다. 그리고 3일째는 괜찮았는데 그 다음날부터 아이가 이상해져 데리고 왔다고 한다. 아이는 완전 탈수 상태였고 배가 부풀어 있었다. 3일째에 설사가 멈춘 것은 나올 것이 다 나와서 더 이상 나올게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너무 작아 혈관도 잡을 수가 없었다. 막막했다. 도저히 살릴 방도가 없어 보였다. 급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왜 그 어머니에게 돈은 있는지 묻지도 않고 보냈는지, 그리고 어렵더라도 당장 수액이라도 꽂아주었어야 하지 않았는지…” 서로 물으며 그날 저녁 내내 모두들 한숨만 푹푹 쉬었다.

1차 의료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설사의 유행은 곧 유아들의 사망률 급증을 뜻한다. 그러나 미국은 경제봉쇄 기간동안 화학무기생산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정수장에서 필요한 약품의 수입도 금지시켰다. 혹독한 유아기를 거치며 많은 아이들이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라크 어머니들의 자녀의 수는 “몇 명중의 몇 명”이라는 식이 되었다.

▲ 진료하는 건치회원들
유아기를 거쳐 살아남은 초등학생들의 건강상태는 그래도 좀 나을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키와 몸무게, 그리고 팔 둘레를 측정하는 체격검사를 행했다. 일부 결과만이 나왔는데, 이라크 초등학교 아이들의 45%가 우리나라 아이들 중 2%에 해당하는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10%의 아이들은 우리나라 1살 어린이에 해당하는 팔 둘레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의 구강도 검사했다. 충치도 많고 잇몸병도 많았다. 심지어는 치석이 온통 치아를 뒤덮고 있어 검사를 할 수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10명 중 1명꼴로 앞니가 부러지거나 빠져있었다. 충치 치료율은 2.5%에 불과했다.

이라크 아이들은 눈이 무척이나 크다. 그리고 그 눈 크기에 맞춰진 듯 기다랗고 멋진 속눈썹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가와 그 눈으로 쳐다보며 어설픈 영어로 자신을 소개한다. 몇몇 아이들은 매일 진료소에 와서 우릴 쳐다보며 논다.

때론 쵸코바 비슷한 걸 가지고 다니며 환자들에게 팔기도 한다. 우리가 사탕 같은 먹을 걸 줘도 최소 5-6번은 권해야 마지못해 받는다. 그리고 수줍은 표정으로 우릴 쳐다본다. 아이들은 동생들을 데려와 우리에게 소개시켜준다. 자랑스런 표정으로.
지금도 그 아이들의 눈동자가 뚜렷이 머리 속에 새겨져 있다.

▲ 임시진료소가 들어선 건물
석유국과 수자원공사

휴일인 금요일(이라크는 금요일이 휴일이다), 외국인들이 자주 간다는 레스토랑에 들려 식사를 하고 바그다드를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티그리스 강을 가로지르는 강 위에 다달았다. 내려도 안전하다는 말에 다들 문명의 발상지를 구경하러 내려섰다. 한강보다는 못하지만 상당히 넓은 강폭을 지닌 티그리스의 흐름은 고요하다.

이 근처는 ‘사담과 그의 친구들’의 거처가 인근에 있기에 전쟁 전에 강가에 돌아다니면 총을 쐈다고 한다. 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통역인 ‘두’가 말하는 ‘사담과 그의 친구들’의 집은 수도 없이 나온다. 각각의 규모도 매우 커서 통행금지 구역은 바그다드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듯하다. 설명하는 ‘두’의 어조에는 분노와 비웃음이 담겨져 있다.
지하도를 지나는데 벽에 문이 있다. ‘두’가 “저 문이 무엇인지 아냐”고 묻는다. 고개를 젓자 지하감옥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한다. 정권에 항거하는 사람은 잡아다 그저 도로에서 바로 지하감옥으로 보내는 것이다. 몸서리 처지는 일이다.

가장 많이 부서진 건물이 눈에 띄었다. 엄청난 양의 폭격을 받은 듯 거대한 건물이 거의 완파되어 있었다. 방송국이냐고 묻자 통신국이라고 한다. 다시 차를 돌려 가다보니 큰 관공서 2개가 이어져 있는데 한군데는 거의 무너져 내리고 다른 한군데는 총탄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다. 부서진 건물은 수자원공사에 해당하는 건물이고 멀쩡한 건물은 석유국이라 한다. 석유국 주변을 미군이 에워싸고 있다.

▲ 이라크봉사자들과 함께
완파된 수자원 공사와 멀쩡한 석유국. 나란히 붙어있는 두 건물은 이라크전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던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서방에 망명한 반 후세인 인사들은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자 각자 마치 자신이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들떴겠지만 자치정부는 꿈이다. 차마 ‘두’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미군은 결코 이라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석유에 대한 권리를 죄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분배하기 전까지는…. 그리하여 이라크의 부를 자기 것으로 하기 전까지는.

돌아온 뒤에 인터넷을 통해 이라크 소식을 보았다. 이라크 군인들이 월급을 지불해 달라고 시위를 벌였단다. 먹고 살 길 없는 이들의 평화적 시위에 미군은 총을 발사해 2명을 사살했다. 시위는 격해졌고 이들은 “사담과 미국은 똑같다”고 외쳤다 한다.

정상호(건치 서경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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