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탐방에서의 쌀국수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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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방에서의 쌀국수 한 그릇
  • 이동호
  • 승인 2008.06.16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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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친구들 이야기] 19

2주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한 주는 스페인에 다녀왔고요 다음 한 주는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내내 피곤했습니다. 이제 달이 바뀌고 계절도 바뀌었습니다. 노랗게 물든 거리의 낙엽들이 발길에 채이면서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지구가 더워지는 탓인지 2주 전만 해도 반팔 T를 입었었는데 이젠 추위를 느낄 정도입니다. 11월이 가기 전에 가을산에 한 번 오를 수 있을까요?  아이들과 가까운 장산이라도 한 번 가야겠습니다.

유럽의 나라들이 어딜가나 비슷비슷하지만 다만 스페인의 경우엔 무려 8백년간의 이슬람지배기를 가졌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곳에 이슬람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특히 스페인 남부에는 우리에게 기타음악으로 잘 알려진 '아람브라궁전'을 비롯하여 이슬람왕국의 유적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적 이유로 인해 원래 카톨릭교회였던 건물이 이슬람성전으로 바뀌고 나중에 다시 카톨릭교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많은 손상을 받았지만 훌륭한 문화적 유산을 완전히 파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이 다른 유럽나라들과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카톨릭문화와 융합된 이슬람의 흔적때문일 것입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피카소나 달리도, 혹은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가우디 조차도 그 매력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에 대한 인상이 좋지만은 않은 이유의 하나는 여행 둘째날에 당했던 강도사건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착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에 마드리드의 시내 지하철매표구 앞에서 강도를 당했습니다.

저는 약간의 돈과 함께 카메라를 강탈당하고 얼굴을 심하게 두들겨 맞았지요. 일요일 아침에 열린다는 마드리드의 유명한 벼룩시장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사람의 통행이 적고 써머타임으로 아직 날이 어둑한 주일 아침의 마드리드의 지하철은 소매치기들이 물정모르는 관광객들을 노리기 좋은 때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을 겪긴했지만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무사히 돌아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바탐방은 어떤 곳이지요? " 시엠립에서 이경용신부님께 물었습니다. "인구가 많은 큰 도시이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지요. 학교가 많고 캄보디아농업의 중심지이고요. 농업도시이자 교육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은 여정이라 바탐방이란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볼 기회는 없었지만 바탐방이 평화로운 곳이란 느낌은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프놈펜의 혼잡함이나 시엠립의 들뜬 분위기는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곳은 외국인들이 들끓는 프놈펜에서도 시엠립에서도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특별한 유적이나 볼거리들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캄보디아의 최대 농업지대인 톤레삽 남서부 지방의 곡창지대의 한가운데에 바탐방은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희가 묵었던 호텔은 최근에 문을 열었습니다. 수수한 외관에  내부는 깨끗했고 샤워시설도 아주 편리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청결하고 친절한 호텔. 바탐방에서 이런 훌륭한 숙소를 만나게 될 줄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곳에도 이제 개발의 열풍이 불어오는지 관광객들과 외지인들을 위한 이런 작은 호텔들이 여러 개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땅값도 갑자기 치솟고 있다고 하고요.

조용하고 평화롭던 바탐방에도 이제 큰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나 봅니다. 그것이 앞으로 이 곳 바탐방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는지...

숙소 근처에 바탐방의 상징이라고 하는 큰 불상을 모신 로터리가 있습니다. 황금색의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어깨에 멘 검은 빛깔의 독특한 모양을 한 이 불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다만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다 꽃을 정성스럽게 바치는 광경으로 보아 아마도 이 불상이 바탐방의 수호신 정도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삶 속에 기도와 섬김이 녹아있는 캄보디아인들의 종교생활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꽃다발을 팔기 위해 어린 아이부터 온 가족이 나와서 좌판을 마련하고 있는 광경을 몇 장 담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옵니다. 이곳 바탐방의 원불교 교무님들께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곳으로 저희들을 안내해주시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야쿠르트 앞치마를 두른 젊은 아낙의 손을 거친 바탐방의 쌀국수는 참 훌륭했습니다. 몇 점의 살코기와 어묵을 넣어서라기 보다는 야채를 함께 넣어 우려낸 국물의 맛이 끝내주었지요. 원래 쌀국수라는게 이웃 베트남의 음식인데 캄보디아에서도 비교적 즐겨먹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제가 먹어본 것들로 판단하자면 베트남의 그것에 비해 캄보디아의 쌀국수는 내용물이 비교적 단촐하다는 것, 그리고 베트남사람들이 좋아하는 독특한 향의 풀인 '라우텀'을 그다지 많이 넣지는 않는다는 것, 그 외에는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단지 캄보디아에서의 음식장사는 거의 중국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곳 바탐방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중국인들이 만드는 바탐방식 베트남쌀국수의 맛,  향기롭고 상쾌한 바탐방의 아침공기와 함께 아직 기억에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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