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사터 : 폐허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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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사터 : 폐허의 아름다움
  • 박종순
  • 승인 2003.07.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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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봉산과 설악산 사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고개 한계령이 시작하는 곳에 장수대가 있다. 장수대 휴게소 옆에 한계사터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 터널처럼 생긴 예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돌계단이 나오고 그 위에 양지바른 평지가 나타나는데 그 곳이 한계사터다. 삼층석탑과 불상이 있었을 대좌 그리고 건물터로 보이는 석축과 초석들만이 남아있는 철저한 폐허이다.

폐허에서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나 주변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이곳 한계사터는 다른 폐사지 보다 더 큰 폐허미를 주고 있다. 이러한 폐허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건축이라는 행위는 철저하게 거대한 대자연의 운행에 거스르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중력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거부하고 인위적으로 세워 올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과 자연간의 긴장관계가 허물어지고 다시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오는 폐허의 모습들은 다시 그 자체가 자연과 융화가 되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마치 여름 햇살에 해를 향해 하늘로 뻗쳐나가던 식물의 가지와 이파리들이 기온이 떨어지면서 낙엽으로 땅으로 되돌아가듯이….
인간 역시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섭리를 자신과 겹쳐보게 되며 대자연과 동화되어가는 편안함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폐허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자연미일 것이다.

또 하나 폐허에서는 여백미를 느낄 수 있다.
폐허와 만나게 되는 순간의 조건들이 다른 꽉 찬 느낌의 대상들보다는 훨씬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의 날씨, 계절, 시간,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그 폐허의 여백을 채워나가는 느낌 또한 특별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이번에 내가 만난 한계사터는 오디의 달콤한 맛과 개망초꽃 그득한 텅 빈 공간에 비가 부슬부슬 날리고 멋진 기암괴석을 휘감아 주는 마치 선계(仙界)인 것 같은 느낌의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박종순(건치 문화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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