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꿈] 베트남을 울린 투이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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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꿈] 베트남을 울린 투이의 일기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06.18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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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제1부 베트남 여성이 본 전쟁 - (2)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1970년 22세의 정보장교 프레드 화이트허스트(Fred Whitehurst)는 노획한 문서 가운데 시집이나 편지 같은 군사적인 가치가 없는 문건을 소각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 화이트허스트 장관
어느 날 드럼통 불구덩이에 노획한 문서들을 내던지자 베트남인 통역 히에우(Nguyen Trung Hieu)가 “이것은 소각하지 마세요. … 벌써 불이 붙었네요.”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프레드는 이미 불이 붙어 있는 담뱃갑 두께의 일기를 끄집어냈다. 그날 저녁 히에우는 프레드에게 일기를 읽어 주었다.

6개월 후 히에우는 투이가 1969년 잃어버려 미군이 노획한 두 번째 일기도 찾아내어 프레드에게 주었다. 프레드는 이 일기를 이해한 훗날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1972년 프레드는 베트남을 떠날 때 군사 규정을 어기고 투이의 일기장을 미국 집으로 가져가 35년간 간직했다.

프레드는 투이의 가족에게 일기장을 돌려줄 생각은 했으나 가족들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른 채 시간이 흘렀다. 프레드는 일기를 출간하면 투이의 가족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프레드는 베트남어를 잘하는 형 로버트(Robert Whitehurst)에게 일기를 보여 주었다. 로버트 역시 베트남 참전용사였고 부인이 베트남인이었다. 로버트도 일기를 해석하면서 투이의 글에 매료되었다

2005년 3월 두 형제는 텍사스 공대에서 개최한 베트남전 세미나에 일기를 가져갔고 마침 하노이에 여행 갈 베트남 참전용사이며 사진작가인 테드(Ted Englemann)를 만났다. 테드는 하노이 퀘이크단체에 근무하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투이의 가족이 사는 곳을 알아내어 전자 복사본(CD-ROM) 일기를 가져갔다.

▲ 화이트허스트 형제와 투이의 어머니
투이의 어머니 도안 응옥 쩜(Doan Ngoc Tram)은 82세임에도 점잖고 정정했으며, 세 여동생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베트남 통일 30주년 기념일인 2005년 4월 30일 일기는 마침내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7월 18일 투이의 일기는 Nhật ký Đặng Thùy Trâm(Dang Thuy Tram’s Diary)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일기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자 베트남의 모든 사람에게 그야말로 센세이션(sensation)을 불러 일으켰다.

베트남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설적인 장군 보 응우옌 지압(legendary General Vo Nguyen Giap)과 그 당시 수상 판 반 카이(Phan van Khai)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버트는 투이의 막내 여동생 당 낌 쩜(Dang Kim Tram)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동안 투이 집안은 로버트와 프레드를 ‘아들’과 ‘오빠’로 불렀다. 두 형제는 8월에 투이 가족을 만나러 하노이를 방문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을 방문한 독일인과 같았다. 우리는 어쨌든 침략자였다. 그러나 베트남 국민은 우리를 포옹했다. 베트남 수상도 우리를 만나 격려해 줬다. 투이 가족들도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줬다.”

놀랍게도 과거 베트남의 적이었던 두 형제는 공항에서부터 기자를 포함한 수십 명의 환영을 받는 국빈대접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TV 기자가 왜 적군인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묻자 “당신들의 뺨에 흐르는 눈물과 내 뺨의 눈물은 같은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울자.”고 답했다.

투이의 일기 원본은 텍사스 루벅에 있는 베트남 자료 보관소에 있으며, 2007년 9월 미국에서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Last Night I Dreamed of Peace)’란 제목으로 영어로 출간되었다.  

 (계속)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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