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꿈] 여린 투이, 호찌민 루트를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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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꿈] 여린 투이, 호찌민 루트를 밟다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06.23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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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부 베트남 여성이 본 전쟁 - (3)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당 투이 쩜의 아버지는 하노이 성바오로 병원의 외과의사였으며, 어머니는 하노이 약학대학 강사였다. 투이는 딸 넷과 터울이 많이 지는 아들 한 명인 가족의 맏딸이었다. 집안에는 책과 꽃이 가득 했고 가족 모두가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여가 시간이면 서양 클래식 음악을 즐겨 연주했고, 투이는 그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과 기타를 배웠다.

▲ 투이의 고교시절
투이는 하노이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뒤를 이어 하노이 의과대학을 수료했다. 안과 전문의 과정에 합격했지만 투이는 전문의 과정을 밟는 대신 전쟁터를 택했다.

1966년 12월 민간인 전쟁지원자와 함께 트럭을 타고 하노이에서 400km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쯩선(Truong Son) 산맥을 따라 이른바 호찌민 루트(Ho Chi Mihn Trail)라는 험한 길을 무려 3개월이나 걸어 남베트남 꽝 응아이(Quang Ngai)성 득 포(Duc Pho)현 부상자 진료소로 갔다.

진료소 상급자들은 안색이 창백하고, 키가 작고 호리호리하며, 도회지 냄새가 물씬한 애송이 여의사를 외딴 진료소에 배치하기를 망설였다고 한다.

투이는 황량한 산악지대의 진료소에서 땔감을 구하고 참호도 파고 쌀자루도 날라야 했다. 중상을 입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밤 세워 진단서를 작성하고 전기도 없이 수술을 했다. 득 포의 젊은이들에게 기초 보건을 가르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동하는 군인들이 남기고 간 죽어가는 부상병과 시신은 언제나 투이의 몫이었다.

투이는 하노이에서 남부로 향할 때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앞부분의 일기는 남아있지 않다. 지금의 일기는 득 포 진료소에 도착한 지 일 년이 지나서부터 쓴 것이었다.

(계속)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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