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홍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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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홍련
  • 강재선
  • 승인 2003.07.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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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공포영화의 중요기제를 차용했다는 오명이나, 원작에서 따라온 ‘남자는 방관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가부장제적 도덕관을 반복했다는 혹평은 차치하자. 김지운의 ‘장화, 홍련’은 볼만하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을 잇는 가족에 대한 감독의 질문은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 영화는 분명히, 몇 년 전부터 여름이면 쏟아져 나온 ‘할리우드 청춘 호러물’을 흉내낸 ‘국내 공포물’과는 차별화되고 업그레이드된 본격 호러영화이다.

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산만해지는 꽃무늬 벽지에 고풍스런 앤틱가구들, 삐거덕거리며 “나 공포영화야” 하는 음침한 일본식 목조가옥은 평화로운 시골풍경 속에서 시종 불안한 향기를 뿜어댄다.

수미, 수연자매가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호들갑스럽고 아름다운 새엄마와 마찰이 일고, 아버지는 그녀들의 갈등을 무심하게 방관한다. 묘한 분위기의 이 집에서 누가 정상인가 밝혀지는 반전이 신선하다거나 정교한 것은 아니지만, 그건 별로 중요치 않은 듯 하다.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던 죄책감, 병든 어머니의 자리를 위협하던 은주에 대한 적대감, 완벽한 가족의 해체에 대한 위기의식.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맘속에서 죽은 자를 부활시키고, 또 다른 인격을 흉내내어 죄의식
을 전가하려 들며, 괴이한 가족을 만들어낸다.

공포영화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장화, 홍련’은 영화관에서 본 첫 공포물이 되었다. 화면의 색감과 배우 염정아의 연기가 맘에 남는다. 집에 와보니 싱크대 밑쪽이 막혀있다. 정말 다행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내가 도대체 왜 그랬지… 하게 만드는 삶의 순간들이 있다.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죄책감이나 분노, 적개심의 기억. 땅을 치고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어 나를 더욱 옥죄어 오던 부끄러운 순간들. 그녀만큼 아프고 괴롭겠냐만….

수미가 질질 끌고 다니던 피칠갑된 커다란 자루처럼,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기억의 자루가 조금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맑고 깊은 눈을 가진 두 자매가 죽어가고 미쳐가던 때, 복수나 원한보다 슬픔과 두려움으로 통곡했을 그 눈망울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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