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영리병원 허용, 제주 아닌 서울서 테스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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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영리병원 허용, 제주 아닌 서울서 테스트하라!
  • 박형근
  • 승인 2008.07.07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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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복지국가 Society(www.welfarestate.net)에 박형근 정책위원이 기고한 칼럼의 전문이다. (편집자) 

'의료정책 및 지역보건행정'을 전공으로 제주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6년 봄, 영리병원의 성공적 유치를 목표로 하는 제주보건의료 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하는데 공공의료 강화 부분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영리병원 유치를 위한 보완적 성격에 불과한 것이라 썩 내키지 않아서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러 간 자리였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나 받았다. 제주에서 '인생역전'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냐는 것이었다. 말은 들어봤지만 왜 그런 질문을 던지는지 잘 모르겠기에 무슨 뜻인지 설명을 요청했다.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인생역전이란 제주도 내 병원에서 3-4달 후면 돌아가실 거라는 사망선고를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울에 큰 병원 찾아 갔다가 멀쩡하게 살아서 공항에 번듯하게 나타난 사례를 말하는 것이다. 제주에서 제일 번화한 길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둘 중 하나는 가까운 일가친척 중 그런 사례가 다 있다."  

제주 실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지 말라는 소리를 점잖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악한 의료 인프라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 영리병원을 허용해서라도 좋은 병원을 유치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할 말이 없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있었던 제주도 의료의 모습을 다소 과장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었기에 여기에 토를 달기가 어려웠다.  

지금 제주에서는 국내 영리병원 허용을 비롯한 온갖 의료민영화의 핵심 조치들이 시범적으로 추진되고 있거나 곧 추진될 예정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명분은 열악한 의료 인프라 개선과 의료관광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로 요약할 수 있다. 수많은 ‘인생역전’ 탓에 이러한 논리가 제주에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며 먹혀들고 있다. 다른 지면을 통해 수차례 ‘영리병원을 통한 의료관광 활성화’ 주장의 허구성과 ‘제주에 국내 영리병원 허용이 실질적 의료 인프라 개선 효과 없이’ 일부 소규모 전문 병·의원들이 갈망하는 자본조달 기전의 합법화를 위해 악용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기에 이 글에서 그 문제를 반복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글에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한 국가권력이 ‘의료민영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의료 인프라가 제일 취약하고 경제전망이 어두운 지역을 악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좋은 의료 인프라에 대한 지역주민의 열망을 약한 고리 삼아 끊어내고, 국내 영리병원 허용을 ‘전국화’하여 의료민영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참여정부 이래 의료민영화 추진론자들의 전략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정말 나쁜 짓이다.  

서울 출장길에 종종 접하는 장면이 있다. 김포행 비행기에 탑승하다 보면 연이은 몇 자리에 커튼이 쳐진 경우를 볼 수 있다. 몇 번의 경험을 거친 후 알게 된 사실인데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을 찾아가는 중증환자가 누워있다는 표식이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진료의뢰서를 만지작거리는 보호자가 있거나, 환자를 대동하는 젊은 의사가 보인다. 나 같은 사람, 즉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책임 있는 의료정책 전문가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장면을 대하고 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떠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열 받는 것은 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추진 세력의 교활함이다. 국내 영리병원 허용을 통해 제주가 얻을 것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영리병원’은 명품병원이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까지 적용되니 더없이 좋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 엉터리 논리로 혹세무민하는 이들의 행동에는 솔직히 할 말을 잃게 된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의료민영화를 주장할 수도 있고, 제도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절차와 형식에 충실해야 한다. 더 이상 바라지도 않는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열악한 조건에 처한 사람들을 이용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더욱 안 된다.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은 국내 영리병원 허용을 테스트하려거든 차라리 서울 한복판에서 하라. 그것도 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열성 지지자들이 제일 많이 사는 강남구와 서초구에서 말이다.

 

박형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제주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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