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탐방 주립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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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탐방 주립병원
  • 이동호
  • 승인 2008.07.2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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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친구들 이야기] 21

 

한 때는 사회주의국가였다가 지금은 왕국의 이름으로 총리 일인 독재를 강화해 가고 있는 나라, 정당과 정파는 여럿 있지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정당은 없는 이 나라의 의료제도를 조금이나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회주의의 잔재인지 이 나라의 모든 의료인력들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다. 의사들은 일단 국가나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소속이 되어 일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방문했던 바탐방 주립병원의 의사들도 역시 지방정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공부원 신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병원들은 시내 어디서나 눈에 잘 띕니다. 수많은 개인병원의 의사들은 그래서 오전에는 소속된 보건소나 주립병원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자신의 개인병원에서 환자를 봅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수입은 개인병원을 통해 벌어들이겠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루어 짐작이 되듯 공공의료의 수준은 점점 더 사적인 의료에 비해 낙후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립병원에서는 대충 시간만 때우다가 자기 병원에서는 아주 열심히 환자를 봅니다. 의료수가가 열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공립병원들은 진료수입으로는 병원을 운영할 수 없고 국가의 재정도 열악한 상황이라 바탐방주립병원도 거의 모든 재정을 기부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각 병실입구에는 기부자의 이름을 딴 병실 이름표를 붙여놓았고 의료장비마다 기부한 국가와 단체의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저희들이 방문했을 때, 병원행정책임자는 노골적으로 저희들에게 기부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을 둘러보는 일종의 '입장료'인 셈이지요. 저희들을 이 곳에 소개시켜주신 원불교 교무님의 완곡한 거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순간 매우 당황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사라고 합니다.

병원관계자의 안내로 일반병실과 함께 외과병동을 둘러보았습니다. 4인~8인실의 병실은 환자들로 가득했습니다. 병실이 청결했는지 불결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의 청결노력은 하겠지만 캄보디아인들의 생활환경을 고려할 때, 우리수준의 병원청결을 기대한다는 게 애초에 무리인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가족들이 함께 병실에서 기거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대충 짐작이 가실 겁니다. 외과병동의 병실과 바로 붙어 있는 화장실을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입구부터 바닥은 젖어 있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이런 곳에서 또다른 병을 옮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것입니다.

교무님으로부터 병원의 환경과 진료수준에 대한 사전정보를 조금 듣고 갔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한 바탐방주립병원의 실태는 상상했던 것보다는 나아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캄보디아가 안고 있는 총체적이고 기본적인 문제인 전문의료인력의 절대적 부족과 의약품, 의료장비의 절대적인 부족상황은 이곳 바탐방주립병원에서도 여실히 확인되었습니다.

병으로 인해 쇠약해보이는 중환자들은 겨우 수액주사만 꽂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다리를 절단한 외상환자는 그저 붕대만 감고 누워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편안히 누워 쉴 수 있는 병실이 제공된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지요.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로 상징되는 76년부터 79년까지의 크메르루즈에 의한 민주캄푸치아정권 시기는 역사를 적어도 수백년을 되돌려 놓은 암흑기였습니다. 이 시기동안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의사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베트남의 침공에 의해 폴포트가 물러갔을 때, 캄보디아 안에는 의사가 불과 몇 십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 27년도 지난 과거가 되었지만 캄보디아는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학교육을 담당할 인력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의사양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안되는 의과대학의 수준도 형편없습니다. 졸업장을 받아도 의사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많은 의사들은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돌아옵니다. 과연 그들이 가난한 캄보디아국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까?

저희들이 치과의사라는 사실을 전해들었는지 병원관계자는 저희들을 치과진료실로 안내해주었습니다. 아마 마음속으로 장비 하나라도 기부해줄지 모른다고 기대했겠지요.

독립된 작은 건물에 마련된 치과는 2개의 진료실에 각각 1대의 치료의자가 있었습니다.  젊은 치과의사와 남자 간호사, 그리고 여자진료보조원(치위생사?)이 지키고 있었는데 대기 환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유닛체어와 충전기구 등 진료장비의 수준은 물론 예상대로 낙후되어 있었고요, 우리나라 70년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근관치료(신경치료)에 사용하는 작은 기구들이 스테인레스 통에 담겨져 있는 걸로 봐서는 나름대로 기구소독을 철저히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압멸균소독기도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실제 진료장면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치과의사와 짧은 대화를 통해 대략 하루에 10명 내외의 환자를 보고 있으며 아말감과 레진을 이용한 충전치료, 그리고 신경치료와 발치와 같은 간단한 외과수술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탐방주립병원의 치과진료실만 보고서 캄보디아의 치과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치과의사들도 공공병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모두 예외없이 개인병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개인병원의 장비나 재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지요. 캄보디아에는 비교적 저렴한 중국산 유닛체어나 그보다 조금 우수한 태국산 유닛체어들이 많이 수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면허를 가진 치과의사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편이어서 캄보디아의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치아그림을 간판으로 내건 거리의 치과들은 거의 모두 야매(돌팔이)치과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교무님에 의하면 바탐방 시내에도 드디어 정식 면허를 가진 제법 큰 치과의원이 최근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진료실을 둘러보고 직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좀처럼 단체사진을 남기지 않는데 왠지 여기서는 한 장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활짝 미소를 지어보인 남자간호사의 표정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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