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꿈] 베트남에 핀 비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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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꿈] 베트남에 핀 비극의 역사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08.1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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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부 베트남 여성이 본 전쟁 - (9)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 베트남 전쟁박물관 中 미라이 학살 전시관
어떤 책이든 저자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그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투이의 일기는 더욱 그러하다. 알아두어야 할 개념과 사건들이 있게 마련이고, 베트남 현대사를 장식하고 있는 몇 가지 비극적인 역사를 반드시 짚고 나아가야 투이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투이가 일기를 쓴 1968년은 베트남에서 진원을 한 파장이 전 세계로 물결쳤다. 베트남 설날인 1월 31일에 터진 설날대공세에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전사들은 잠시나마 미국 대사관을 점령했다.

이를 TV 생중계로 지켜본 미국 국민들은 경악을 했다. 베트남 인민의 불굴의 의지를 보면서 전쟁에서 줄곧 이기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거짓말을 확인한 것이다. 반전운동의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고 존슨 당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68년 6월 5일에는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였다. 암살 배경은 케네디가 베트남전쟁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이 되면 베트남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약하였기 때문이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 미국의 힘에 도전하여 군대를 일으킨 아시아의 가련한 나라 전쟁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억압받는 제3세계에게서는 해방에 대한 영감이 불타올랐다. '아니다'라는 외침이 거세게 일어났다.

유럽에서는 정치와 사상과 성에 관계되는 모든 금기를 깨뜨리는 1968년 혁명이 깃발을 올린 것이었다.

여론의 궁지에 몰린 미군은 악에 받혀 베트남 인민을 무차별로 살상하는 군사전략으로 맞섰다. 베트남 중부지방 손 미(Son Mi) 마을에서 일어난 '미 라이(My Lai) 학살'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킬링 필드'였다.

1968년 3월 16일 미군 80명이, 베트남인들은 '손 미' 마을이라 부르지만 미군 작전명이 '미 라이'라 부르는 마을에서 17명의 임산부와 어린아이 173명 그리고 부녀자와 노인들을 포함한 504명을 겁탈하고 학살한 후 마을을 불태운 사건이 일어났다.

건장한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미 라이 학살'은 미국의 파괴와 살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야만이었다.

투이의 일기가 끝난 1970년은 사악한 대통령 닉슨과 그보다 더 사악한 닉슨의 오른팔 키신저 국무장관은 여론에 떠밀려 베트남전쟁을 끝낸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실상 북베트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베트남 산하에 발악적인 융단 폭격을 감행하였다.

(계속)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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