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2만원짜리 회정식과 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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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2만원짜리 회정식과 건치
  • 전양호
  • 승인 2008.08.19 17:0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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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9- 전양호(경희 00졸, 건치 정책연구회 연구원)

 

2만원짜리 회정식과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다음 회의부터 나오라는 어느 선배의 성의 없는 꼬임…

약 1년 여 동안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생각없이 지내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내세워서 방탕하게 지내기도 지쳤던지, 아니면 누가 좀 꼬셔주기만을 기다렸던 건지 난 그냥 그렇게 정책연구회를 시작했다.

나뭇잎으로 한강을 건너신다는 정세환 교수님, 나의 정치적 멘토이신 김철신 교수님, 한창 영국 유학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정신이 없으셨던 류재인 박사님…. 당시 정책연구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주력 멤버였다.

지금도 현격한 가방끈 차이와 짧은 지식으로 인해 헤매고 다니기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특히 조금 익숙해진다 싶으면 찾아와서 도대체 알 수 없는 언어들로 내 머릿속을 멍하게 만들곤 했던 곽정민·양승욱 선생님이나, 가끔씩 술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건치의 높으신 분들은 면허 딴지 1년 갓 넘은 학사 출신 치과의사를 기 죽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치과의사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김철신 선생님이 바로 내 위밖에 안 되다니….

암튼, 정책연구회에서 내가 주로 했던 일은 복사, 회의 및 토론회 준비, 뒷풀이 장소 잡기 등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한 여러 가지가 대부분이었다. 일명 전대리….

류재인 선생님이 영국 유학을 떠난 이후 실질적으로 정책연구회에서 일을 할 사람은 정세환 교수님, 김철신 선생님, 나 이렇게 세 명으로 줄어들게 됐고 정 교수님이 강릉으로 떠나기 전 약 1년정도는 그런 시스템이 유지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은 적었지만 그 때만큼 일도 많이 하고 나름 즐거웠던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시스템은 단순했다. 정 교수님이 일감을 가져와서 전체적인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김철신 선생님이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고 내가 나머지 잡무를 처리하고….

무슨 회사같긴 하지만 이 세상에 분업만큼 능률이 높은 작업형태도 없다. 사실 이 동네가 워낙 말들이 많아서 이견도 많고 토론도 많은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업진행 방식이 가능했던 건 순전히 정 교수님 덕분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혼자 처리하는 게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이해와 동의의 과정을 거치고 나름대로 역량에 맞는 일감을 던져주시는 일처리 방식은 정 교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고 그게 바로 우리의 가장 큰 힘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2년정도 지난 후 위기(?)가 찾아왔다. 하는 일이나 건치에 대한 싫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근 1년 여 동안 건치에 발을 끊었다. 개인적인 혼란스러움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건치의 지향점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 그냥 관성에 젖어 제 멋에 겨워 하는건 아닌지….

뭐 나름대로는 고민 열라 많이 했었는데 약 1년 여 간의 지방 생활 후 다시 건치에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그냥 다른 치과의사들이랑 취미도 없는 자동차, 골프 얘기하는 것보다는 건치에 나와서 마음에 맞는 사람이랑 웃고 떠드는 게 훨씬 즐겁다는 거… 바로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정책연구회로 시작해 어느덧 8년째… 이제는 어떤 글을 써도 성명서가 돼버리고, 무슨 일이든 보건의료 사안으로 연결시켜버리는 깔대기적 정신 상태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오랜만에 전화 건 절친했던 후배의 경계하는 듯한 목소리… 동료 치과의사들과의 대화자리에서 건치라고 규정지워지는 모습들… 나 자신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이미 나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변화돼 있었고, 거기에는 언제나 건치가 개입되어 있었다.

암튼 이미 버린 몸… 건치에 뼈를 묻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가오 상하지 않을 정도는 해야하는데…걱정이다. 할 일은 많고 사람은 없고….

어디 2만원짜리 회정식에 넘어와 줄 착한 후배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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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진 2008-08-22 17:13:48
제대로 가오가 사는데요.

김의동 2008-08-21 11:16:30
죽이는데...ㅋㅋ 민트향기 회원들은 다 어디로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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