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loves me, he loves me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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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oves me, he loves me not
  • 강재선
  • 승인 2003.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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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loves me,  he loves me not

삼각관계의 세 남녀가 나오는 <오!수정>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들은 같은 일을 겪었어도, 조금씩 다르게 기억한다.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하게 기억하기도 하고, 별거 아닌 부분이 조작되기도 하며,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 강조되기도 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감정과 기억의 객관성을 담보하기란 이리도 어려운 것이다. 다른 시선이란 그래서 중요하다.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핑크빛 하트로 가득 찬 아기자기한 포스터에 아멜리에로 알려진 오두리 또뚜가 특유의 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여주인공은 심장전문의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있다. 그가 전화를 안 해도, 약속을 안 지켜도, 그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면,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냇 킹 콜의 ‘러브’가 섬뜩해지기도 하고, 깜찍한 장난꾸러기 같은 오드리 또뚜가 무서워지기도 하는 이 영화는 제법 탄탄한 시나리오의 구조 위에서 관객과 일종의 게임을 벌인다.

그 게임은 관객이 익숙해져 있는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문법’을 영화적으로 관찰하고 비튼 것이어서 나름대로 재미를 준다. 내 20대의 한켠을 차지하는 짝사랑, 외사랑. 그 과정 속의 착각, 오해, 등등… 나의 절친한 친구들 몇몇은 이러한 너무도 주관적인 감정의 과정을 총칭하여 ‘삽질’이라 한다.

그는 나를 좋아하고 있어, 또는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어… 라는 상상력의 힘은 엄청난 것이어서 당시 엽기행각을 뒤돌아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열정이 대단해서 감탄스럽기도 하다.

내가 지나온 모든 감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상대방보다 관계 자체에, 사랑에 빠져 있는 내 자신에 더 매료되어 하늘을 날던 시절. 그렇게 방방 떠 있다가 달짝지근한 사랑의 공식이 실은 허구와 환상에 의존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바닥에 곤두박질쳐지던 시절. 미친 사랑이 내 이성을 꼬드기던 시절. 일련의 ‘삽질’ 후에는 항상 한 뼘쯤 자란 내가 뻘쭘하게 서 있다.

날이 하도 좋아서 로맨틱 코미디나 보고 우수에 젖어볼까 했는데, 스릴러를 보고 말았다.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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