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친목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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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친목모임
  • 임동진
  • 승인 2008.09.09 1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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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12 - 임동진(조선 96졸, 임동진 치과)

 

대전, 우리말로는 한밭이라고들 한다. 지명으로 풀어보면 너른 평야라는 말인데 실제로도 갑천, 유등천, 대전천의 세 개 하천이 대전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그 주변으로 널찍한 평야가 있으며 계룡산, 계족산, 보문산, 장태산 등 여러 산들이 이 평야를 둘러쌓으면서 분지형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주택개발을 한다든지 하면 선사시대의 유물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아마도 과거 문명이 발달되기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곳에 군락을 이루며 터전을 잡고 도시가 형성 된 것 같다. 이런 너른 평야와 풍부한 물 등의 자연환경 때문인지 대전에 처음 온 사람들도 도시가 많이 여유롭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광주를 떠나본적이 없던 내가 대전에 머물게 된 것도 역시 대전이 주는 편안함과 여유로움 때문이었다. 처음 왔을 때 한가로이 갑천변에서 고기를 굽고 그늘 막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광주와는 사뭇 다른 여유가 느껴졌다. 그런 여유와 편안함에 반해 위로 올라가려던 발길을 멈추고 여기에 터를 잡은 것이다.

그런지도 벌써 올해로 딱 10년, 그동안 결혼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도 생기는 등 대전에서의 삶이 이젠 내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렸고 일생을 광주에 떠나본 적이 없는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대전사람’이 다 돼버렸다.
 
지인의 소개로 대전에 개업을 한 것도 아니고 친구 하나도 없이, 아무 연고도 없이 대전에 왔으니 대전에서의 초기 개업생활은 거의 외톨이 생활이었다.

그러다 학교 때 잠시 보았던 광주건치 선배들을 생각하고 여기저기 수소문으로 대전건치를 찾게 되었고 어떤 뚜렷한 이념이나 원대한 꿈으로 가입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조금 나누려는 단순한 의도와 낯선 곳에서 외로운 생활이 주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입을 했었다.

그리하여 참여하게 된 대전건치는 참 색다른 모습이었다. 대전에서 느낀 여유가 모임에서도 느껴진 다랄까? 몇 명 안 되는 회원들이 모여서 정치이야기며 문화이야기, 신변잡기 등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는 그런 친목모임과 유사한 모임이었다.

대전지역 내 치과대학이 없고 그때만 하더라도 대전에 새로 개업하는 젊은 치과의사들이 적어서인지 젊은 사람들은 없고 다들 어르신(?)들만 모여 계셨다. 그리고 한명 한명에게서 느껴지는 박학다식한 내공의 깊이는 이십대 애송이 원장을 주눅 들게 하기 충분하였다.

하지만 어떤 모임이든 동기와 목적이 뚜렷해야 모임이 지속되고 유지가 되는데 대전건치는 그런 동기나 목적이 뚜렷하지도, 활동이 활발한 것 같지도 않았다. 예전 학생 때 생각하던 그런 치과분야 운동보다는 시민사회단체 일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그저 약간의 진보를 추구하는 친목모임 같았다. 처음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려운 시절에도 열심히 일한 과거 선배들의 수많은 노력과 활동 그리고 열정이 녹아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로인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가득한 이곳이 참 편안해졌다.

이런 과거의 활동들과 정신적 유대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신적인 여유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어딘가 모르게 삶의 여유를 가지며 사는 선배들, 그렇지만 대전지역의 올바른 발전과 사회구성원 다수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선배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내 삶의 멘토로서 선배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써, 치과의사로써 그리고 사회인으로써 나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더 해볼 수 있었다.

지금 난 처음 대전에 왔을 때 만났던 선배들의 나이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항상 무언가에 쫒기며 사는 것 같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선배들은 저만치 앞에 있다.

엊그제도 건치모임이 있었다. 이날 역시 몇 안 되는 건치회원들이 모여 요새 돌아가는 세상이야기, 명박이 이야기, 만수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술만 조금 줄고 머리숱만 좀 줄었을 뿐이지 10년 전과 똑같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앞으로 10년 후에도 이 모임만은 지금 그대로의 편안한 모습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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