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법인! 한국 의료체계 붕괴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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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법인! 한국 의료체계 붕괴 '출발점'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8.09.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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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건의료 진단과 해법]① 의료민영화의 본질과 함의

건강정책포럼(공동대표 감신, 조홍준, 이상이, 김윤, 신영전)이 지난 10일 오후 2시부터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국 보건의료 진단과 해법'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국민 건강권 보장을 위한 한국 보건의료의 바람직한 발전전략'을 주제로 열린 이날 정책토론회에는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민주당 전혜숙 의원,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등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관련 학계 전문가 등 1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먼저 감신 상임공동대표의 인사말이 있었으며, 이어 3개의 주제발표와 9명의 패널토론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주제 발표에서는 제주 의대 이상이 교수가 '의료민영화의 본질과 함의'를 서울 의대 이진석 교수가 '건강보험과 한국 보건의료의 발전전략'을, 부산 의대 윤태호 교수가 '의료서비스 분야의 성장과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패널 토론에는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민주당 전혜숙 의원, 참여연대 김연명 상임집행위원장, 경실련 이준영 보건의료의원,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기획실장 등이 참여해 주제발표 내용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밝혔다.

이날 패널토의에서는 신상진 의원이 '의료관광 찬성' 등 일부 이견을 나타내기는 했으나, 참가자 대부분이 주제발표 내용에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날 발표된 3개의 주제발표 내용을 리뷰해 본다.

 

▲ 이상이 교수
현 정부 의료민영화 '의지 확고'

이상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건강보험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논쟁이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것으로 운을 뗐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충은 국민의 요청이자, 올바른 제도 발전을 위한 시대적 과제임을 국내외적으로 양식 있는 모든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주장했는데, 이명박 정부의 의료시장주의자들만 거꾸로 가고 있다"면서 "결국 참여정부 기간동안 꾸준히 증가하던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이명박 정부 들어 확실히 곤두박질 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촛불정국 기간 의료민영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는 건강보험 민영화를 추진할 계획이 없다며 동문서답을 해 왔다"면서 "현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의료민영화'란?

이 교수에 따르면, 의료민영화는 '국가의료제도의 민영화' 또는 '국가의료제도의 자본주도 시장화'를 의미한다.

영화 '식코'에서 보았듯, 미국의 경우가 정확하게 이 개념에 부합하는 국가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다. 영국이나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 의료제도에서 일부 시장적 방식이 도입되고, 또는 일부 자본 투자가 일어났다고 해서 '의료민영화'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특정 부분이 공공으로 있던 것에서 민간으로 바뀌었다고 국가의료제도의 민영화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변화가 이뤄져야 의료민영화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이 교수는 "오늘날 모든 현대국가는 각기 수준에서 나름대로의 보건의료제도, 국가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다"면서 "각 국가간의 의료체계를 비교함으로써 한 국가의 의료제도가 가지는 총체적 특성을 구분할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료체계는 ▲의료자원의 개발 ▲조직 ▲서비스전달 ▲재정체계 ▲관리체계 등 5개의 하위요소로 구성돼 있다.

이를 크게 구분하자면, 의료자원을 개발해 의료서비스를 생산하고 필요로 하는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인 '의료제공체계'(Health Care Provision)과 의료서비스의 구매와 사용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해 필요한 때 적절하게 지출하도록 하고 이를 관리하는 '의료재정체계'(Health Care Financing)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 수준

먼저 우리나라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 수준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의료제공체계의 공공성은 병원 수 기준으로는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병상 수 기준으로는 18%에 불과하다. 이는 자유시장주의 의료체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공공병원 25%, 공공병상 33%)에도 크게 뒤진 수치다.

보통 유럽 선진국들은 사회의료보험형 대륙국가들의 경우 공공성 비율이 60% 이상이고 영국과 스웨덴 등 국영의료제도 국가들은 100%에 이른다.

이렇듯 의료제공체계에서 공공성 수준이 높기 때문에 영리법인 허용이 우리나라에 비해 그리 큰 파급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병원이 비영리 법인임에도 유럽의 비영리 지역병원들과는 형태가 많이 다르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 이 교수는 "우리나라 민간병원들은 외형적으로는 비영리법인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 수준

국민의료비는 국가 차원에서 연간 소비된 보건의료비의 총액을 말하는데, 국민의료비 구성의 공공성 정도를 국제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의 비율' 지표를 많이 사용한다.

▲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 비중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1990년 37.4%에서 꾸준히 증가해 2005년 현재 53%에 이르고 있다. 이는 멕시코와 미국,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낮은 수치인데, OECD 국가들의 평균인 72.1%보다 무려 20%나 떨어져 있다.

영국과 스웨덴은 85%를 상회하는 수준이고, 프랑스와 독일은 77%를 상회하는데 비해, 미국은 45%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나은 것은 통계상으로 의료재정에서 공공성 수준이 8% 가량 높다는 것 뿐이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보면, 근본적인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 교수는 "우리가 미국보다 나은 것은 전체 국민을 포괄하는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를 가지고 있는 점"이라며 "사실은 전체 국민을 포괄하는 의료보장제도가 있는가 없는가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 의료제도의 힘 '전국민 의료보험'

▲ 주요국과 비교를 통해서 본 우리나라 국가의료제도의 위치
옆의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는 대만과 함께 4사분면에 위치해 있다. 의료재정의 공공성 비율이 그나마 50%를 3% 넘어서 4사분면에 있는 것이다. 여차 하면 미국과 같은 3사분면으로 이동해 버릴 것같다.

그러나 이 교수는 "3사분면에 가더라도 우리나라 국가의료제도는 미국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면서 "의료재정체계가 노인 등 일부 국민에 국한된 미국과는 달리 전체 국민이 국가의료보장체계 안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림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의료재정체계가 50%를 넘을 뿐이지, 공공병원 비중이 10%에도 못미치는 등 미국보다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연구하는 학자들 대부분은 미국과는 달리 한국 의료제도를 '의료민영화 체계'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민간의료기관이 압도적으로 의료서비스 제공을 주도하고 있고, 영리 추구 성향이 강해 '시장과 경쟁의 과잉'으로 인한 폐해가 있다는 수준으로 말할 뿐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한국 의료체계가 민영화체계로 간주되지 않는 것은 보편적 국민건강보험이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의료서비스 제공을 민간이 담당하든, 공공이 담당하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통제될 수만 있다면 나머지 차이는 무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교수는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민간의료기관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전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전제는 바로 '영리법인 병원'이 존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영리법인 허용되면, '최악 의료체계 국가'로 전락

그렇다면 과연 현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영리법인'이 허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영리법인이 허용돼도 국민건강보험이 민간중심의 의료제공체계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대답은 물론 아닐올시다 이다.

이 교수는 "민간병원이 압도적인 현 조건에서, 그렇지 않아도 영리추구 성향이 강한 민간병원들과 병원사업에 신규 진출하려는 대기업들이 영리법인을 설립하려 할 것"이라며 "한번 둑이 무너지면 영리법인은 급속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1990년대 초 삼성의료원과 현대아산병원 등 기존의 재벌병원들이 의료시장에 진행했던 당시 그랬던 것처럼 '병원의 영리 및 고급화 경쟁'을 주도하며 국민의료비를 폭등시킬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신규 진입한 영리병원들은 기존의 비영리법인이나 개인사업자 병원들까지 고급화와 과잉진료 경쟁으로 끌어들이게 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의료공급체계 전반이 이윤추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뱀파이어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피력했다.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이 재정적으로 견뎌낼 수 없게 되고, 보장성 수준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결국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 민간의료보험에게 의료법상의 '알선 금지' 조항이 해제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민간의료보험은 급성장하면서 우리나라 의료재정체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 교수는 "민간의료보험에게 이런 호조건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영리법인이 많이 생겨만 주고, '뱀파이어 효과'로 인해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더 떨어져주기만 하면, 민간보험회사들은 영리법인과 직접 계약을 맺을 것"이라며 "즉,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민간보험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영리법인 허용 시도 즉각 중단돼야

그렇다면 현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시급하게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영리법인 허용 시도 중단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 75%로 확대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 활성화 조치 포기 및 규제 법률 입법 3가지를 제시했다.

특히 보장성 확대에 대해 이 교수는 "53% 수준의 의료재정체계의 공공성 수준을 75%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사회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25조 원인 건강보험재정 규모를 당장 35조 원으로 늘리면 되는데, 이는 정부가 26조원 규모의 감세를 단행하는 것에 비하면 비교적 손쉬운 일에 해당한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민간의료보험과 관련 이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현재보다 최소 20% 이상 높아진 상태에서 민간의료보험이 건강보험을 일부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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