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꿈] '감정없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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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꿈] '감정없는 전쟁'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09.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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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제1장 역사진실관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전쟁박물관 앞에선 대구베트남우정회 회원들 『전쟁박물관은 1976년 지은 것이다. 1976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1976년은 프랑스 지배 100년 그리고 미국과 30년 전쟁을 치르고 난 첫해이다. 이 건물은 통일 베트남 정부가 세운 최초의 건물이다. 길고 가혹한 식민지배와 전쟁이 끝난 이때의 상황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루 세 끼 죽도 먹기 힘든 상황에서 통일 베트남 정부가 지었다.

또한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저지른 최대의 민간인 학살인 ‘미 라이 학살’을 기억하는 미 라이 박물관 역시 1976년 세워진다. 그리고 ‘머나먼 쏭바강’에 나오는 ‘바강’이 흐르는 푸엔 성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서 있다. 이것도 1976년 세워진다. 전쟁기간 중에 마을에서 강제로 쫓겨난 주민들이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서 최초로 세운 건조물이 ‘한국군 증오비’이다. 베트남의 현재가 어떻든 베트남을 단절적으로 보면 안 된다.』

▲ 전쟁박물관 앞에 선 대구베트남우정회 회원들.


베트남은 1852년 처음으로 프랑스에 침공 당해 서서히 식민지가 되어 갔다. 1941년 대동아전쟁 때 일본에게 점령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가 다시 들어와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여기에 대항하여 호찌민 정부는 프랑스와 9년 동안 전쟁을 치르며 1954년 프랑스를 굴복시킨다.

1954년 조인한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베트남은 총선거를 실시하여 새로운 정부를 만든다고 하였다. 호찌민 정권이 들어설 것이 확실하자 미국은 남쪽에 괴뢰정부를 세워 자유선거를 거부하고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시킨다.

남쪽 지엠 정권이 지극히 부패하고 가혹하자 양심세력들은 스스로 모여 베트콩을 결성하고 남쪽 괴뢰정권에 저항하였다. 베트콩은 1960년 민족해방전선의 군사조직이 되어 남베트남 지엠 정권을 무너뜨리려 하자 1965년 미국이 직접 군사 개입한다. 

베트남전쟁에서 B-52 전폭기를 주축으로 한 미공군기는 12만 번이나 전략폭격을 하여 이 전쟁을 ‘감정 없는 전쟁’이라 부른다. 차갑고 끔찍한 방법으로 민간인을 포함하여 400만 명 이상이 죽었으며 부상자와 난민은 몇 명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그 수는 아마 수천 만 명에 달할 것으로 짐작된다.

국토의 파괴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측이 무더기로 쏟아 부은 폭탄으로 베트남의 국토는 초토화되었고, 특히 고엽제 등의 화학약품에 의한 피해는 그 후유증이 3세까지 미칠 정도로 잔인한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저지른 미국의 전쟁은 집단 대학살(genocide), 환경파괴(ecocide) 그리고 생물파괴(biocide)란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  』안의 글들은 구수정 선생의 해설을 녹취·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덧붙여 보았다.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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