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감투 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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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감투 벼락
  • 윤종삼
  • 승인 2008.10.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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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14 - 윤종삼(단국 91졸, 윤종삼 치과)

 

두 살 된 아들을 둔 가장으로 서른 살에 시작한 늦깎이 나의 대학 생활은 한가하게 낭만을 즐긴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나대신 삶을 책임진 아내에게 미안해서라도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야했지만 당시 시대 상황은 나 같은 사람마저도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당시 군사정권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아우 같은 학우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무언가 짐을 진 듯 맘이 편치 않아 무언가 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대학 말년에 학우들과 ‘늘푸름’이란 모임을 통해 노동자 진료소를 만들고 여기저기 현장을 방문해 진료활동을 하거나 진지한 토론을 하는 등 치과의사로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모색도 하면서 정신없이 보내게 되었다.

처음 건치와 인연은 늘푸름에서 당시 건치중앙 회장이셨던 이문령 회장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때 충청지부 회장 김형돈 선생과 신명식 선생, 서성구 선생 등이 함께 참석했었다.
 
감히 가까이 하기 어려운 대단한 분들과 함께 하고 있구나, 또 함께 대화를 하면서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하지만 그때부터 내 인생은 꼬이기 시작할거라고 어찌 알았으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전에 병원을 개업하게 되었는데 자리 잡기도 전에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떠밀리 듯 곧바로 건치 충청지부 회장을 맞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소심했던 나는 학교 다닐 때도 그 흔한 줄반장 한번 못해 봤는데 이때부터 감투 벼락을 맞기 시작한 것이다.

이사 감사 집행위원장 등등은 빼고라도,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대전 보건의료단체 연대회의 의장, 대전복지포럼 회장, 대전시민환경연구소 이사장, 대전참여연대 공동의장, 하다못해 아들 초등학교 육성회장, 학교 운영위원장, 동네 조기축구회장까지 두루 하였으니 대학 졸업하고 거의 이십년 동안 뚜렷하게 한 일은 생각이 나지 않고 썼던 감투만 생각난다.
 
이 모두가 건치와의 몹쓸(?)인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올해 초 대전 참여연대 공동의장을 마지막으로 감투에서 벗어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참 메마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것도 내 팔자려니 하면서 그동안 메말랐던 감성을 일깨우고자 잘 구부러지지도 않는 손가락으로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요즘 기타 소리가 맑지 못한 걸 보니 뭔가 세월이 하 수상한가 보다.

감투라면 신물이 나지만 요즘 꼭 써보고 싶은 감투가 하나 있다.

‘도깨비 감투’를 쓰고 투명인간이 되어 요새 우리 국민들 힘들게 하는 놈들 뒤통수라고 한방씩 쥐어박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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