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조금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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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조금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 김유성
  • 승인 2008.11.11 20:1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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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17 - 김유성(전남 88졸, 건치 인천지부 감사)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덧 입동을 지나 겨울로 접어든다. 차가워진 날씨 속에 ‘2008년’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저물어간다. 올해는 건치의 전신인 ‘청년치과의사회’가 창립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치과대학을 졸업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건치는 ‘청치’와 ‘연세민치’가 통합되어 이듬해에 창립되었기에 내년이 20주년이만, 내게는 올해가 20주년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인연 때문이다.

나를 건치와 처음 인연 맺게 한 것은 한 장의 엽서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보건지소로 날아든 한 장의 엽서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엽서는 ‘청치 광전지부 창립 준비모임’을 알리는 내용이었는데, 평소에 공감하던 내용이었던지라 광주에 올라가서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대학시절 특별히 ‘운동’이라는 것을 해보지 못한 나였지만, 그 시기에 광주에서 대학을 다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를 늘 생각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 날 이후 어찌어찌 하다 보니 20년을 건치와 함께 살아왔다.

광주가 나의 정치적인 고향이라면, 인천은 나의 삶의 터전이다. 공중보건의를 마친 후, 광전지부에 대한 미안함을 뒤로 하고 91년에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개원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인천에서 건치활동을 하려면 푸른치과를 찾아가면 된다’는 조언에 따라 인천 푸른치과를 찾아갔다.

그 당시 인천지부는 건치의 조직표 상에는 없는 자발적인 모임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동안에는 1주일에 한 번씩 점심을 먹었던 모양인데, 마침 그 날이 저녁모임으로 전환되는 첫날이었다. 인천에서의 건치활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매주 화요일 모임이 이제는 인천건치의 18년 역사가 되었고, 그 역사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었다.

20년 동안 건치활동을 해오면서 자주 들었던 질문 중의 하나가 “치과의사로 편하게 살면 될 텐데 왜 운동을 하느냐?”는 애정 어린 질문이었다. 그 때마다 내 대답은 단순했다. 세상이 조금만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씩만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선행위보다는 모두가 모여서 법이나 제도를 바꾸어야 더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고. 그래서 건치활동을 하고 있다고...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살다보니 어느덧 훌쩍 20년이 흘렀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건치활동을 하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세월이 흘러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 내 나이 40대 중반, 하지만 건치는 팔팔한 20살의 청년. 내 나이를 잊고 건치의 나이에 맞춰서 청년처럼 살고 싶다. 그러다보면 건치가 40살 불혹의 나이가 되는 날도 볼 수 있겠지. 건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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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버기 총각 2008-11-14 11:43:22
인천지부에서 체육대회를 할때 마지막까지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샘님이 기억나는군요.

2008-11-12 10:28:45
유성이형을 시작으로,,,,드디어,,,인천지부 시작을 알리나 봅니다........유성이형의 바람대로,,,세상이 조금씩 더 좋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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