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과 대한민국의 닮은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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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대한민국의 닮은 역사는?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11.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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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제1장 역사진실관-(7,8)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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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쓴 최초의 책은 대기자(大記者)이자 한양대 교수를 역임한 이영희 선생의 ‘베트남전쟁’이다. 이 책에는 ‘베트남전쟁은 30년 전쟁이다’라고 쓰여 있다. 미국과 한국군이 참전한 기간은 1965년에서 1973년까지이다. 약 8년간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베트남전쟁을 30년 전쟁이라 부른다. 베트남전쟁이 30년 전쟁인 이유는 이렇다.


닉슨 당시 부통령은 1952년 베트남전장에 이미 시찰을 나왔다. 학자들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제1차1952년 닉슨 부통령의 베트남 시찰 인도차이나전쟁)을 쌍둥이 전쟁으로 부른다. 우리는 베트남전쟁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딱 2일 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6·25 전쟁에 관한 결정이라는 명령문을 낸다. 여기에 보면 한국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제목은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에 관한 트루먼의 결정’인데 여기 보면 한국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근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2가지 사항은 첫째, 베트남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군사적 물질적 모든 지원을 증강하고 지원한다. 둘째, 베트남에 미국 군사고문단을 파견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 이유는 그동안 미국은 베트남에 대해서 그렇게 전략적 중요성을 못 느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것은 보면서, ‘아! 정말 아시아가 위험하구나’라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중국하고 딱 붙어있고 인도차이나의 중심이었다. 그때서야 베트남이 무너지면 인도차이나 전역이 무너질 것이다. 인도차이나가 무너지면 아시아 전역이 무너질 것이다. 아시아가 무너지면 유럽이 무너질 것이라는 ‘도미노 이론’에 빠져 있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전략적 차원에서는 쌍둥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1950년 6월 27일 트루먼의 결정에 의해서 1950년 7월, 딱 2달 만에 미국 군사원조단이 베트남에 오게 된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 깊은 연관성이 있다.


대리전이라는 개념이 사실 이때 나온다. 1945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이 프랑스를 지원한 항목들을 보면 1950년 미국은 프랑스 전비의 19.5%를 부담하고 있다. 전쟁의 막바지였던 1954년 미국은 프랑스 전비의 73.9%를 부담했다. 이것 말고도 무기를 지원한다. 탱크와 장갑차 1400여 대, 350대의 전투기,  390척의 군함, 1만 6천대의 차량, 17만 5천구의 총을 지원했다.

 이 시기를 학자들은 미국의 베트남전쟁의 간접적 개입기로 보고 있다. 프랑스를 앞세운 대리전을 통해 미국이 베트남을 점령하려고 했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베트남전쟁은 1945년부터 시작한 30년 전쟁이다.』

우리와 베트남은 천하패자 중국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에 시달림을 끊임없이 받으면서도 독립을 유지하고, 그럼에도 중국의 문화를 흡수하는 데는 아주 모범생이었다. 근대 이전에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문화적 교류를 주고받은 나라가 독립국가를 유지한 예는 우리와 베트남뿐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중국에 흡수당하거나 점령당하였다. 중국을 점령한 몽골족이나 만주족이 오히려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고스란히 흡수당했고, 아니면 티베트처럼 무력으로 점령당하고 있다. 작은 나라로서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 우리와 베트남은 아주 유사하다.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에 침탈을 받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산물로 남북이 찢어진 것을 보면 어쩌면 이렇게 닮을 수가 있는가 하는 연민에 북받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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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우리와 베트남은 일본이 패망하면서 해방을 한다. 이 시기에 베트남 역사와 우리 역사는 닮은 점이 많다. 베트남은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만든다. 100년간의 프랑스 지배와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 단 20일 만에 독립정부를 세워낸다. 한국은 한 달 만에 건준(건국준비위원회)을 발족하여 ‘조선민주공화국’을 세운다. 오랜 식민기간을 거친 나라 중에 한 달 만에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세계사에서 굉장히 드문 일이다. 결혼을 해서 일가를 이루는데도 이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초토화된 상황에서 순수한 민족의 역량으로 독립국가를 세운 나라는 베트남과 한국 외에 또 있을까 싶다. 근데 바로 이 기간은 외세의 개입이 전혀 없었던 무공해 공간이었다. 외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한국과 베트남은 자신의 힘으로 정권을 세울 수 있었던 역량을 가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곧이어 한국의 북부에는 소련이, 남부에는 미군이 들어온다. 한국에서 미 군정이 섰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미 군정 3년 만에 이승만 정권을 세운다. 이 과정과 똑같은 일이 베트남에서도 벌어진다. 남부에는 영국군이 들어오고 북부에는 장개석 군대가 들어온다. 결국에는 프랑스가 들어온다. 미국은 베트남 남부에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 정권을 세운다. 


미국은 한국에는 이승만을 들여왔듯이 베트남에는 응오 딘 지엠(한국에서는 고 딘 디엠으로 잘못 부름)을 들여와 남부에 베트남 공화국을 세운다. 응오 딘 지엠을 들여온 미국은 그를 “동양의 처칠이다. 민주화의 화신이다. 베트남의 이승만이다.”라고 칭찬한다. 그리고 남부에 베트남 공화국을 세운다. 그래서 베트남은 북부에는 호찌민 정권이, 남부에는 지엠 정권이 들어서는 분단국이 된다.


두 정권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전쟁을 이해하는 핵심(키 워드)이다. 호찌민 정권 각료 33인 전원이 항불(프랑스에 대한 투쟁) 경력을 갖고 있다. 대부분 악명 높은 뽈로 콘다오 섬에 투옥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호찌민은 각료들의 총 감옥생활이 228년이나 되어 “우리는 모두 동창생이다.”라고 하였다. 반면 응오 딘 지엠 정권 각료 중에 항불 경력을 가진 사람이 단 1명도 없었다. 어떤 정권이 더 민주적 정권인지는 몰라도 누가 더 민족적 정권이었나는 알 수 있다.』

1945년부터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는 미국의 적극 개입이라는 점을 공유하고 있지만, 호찌민 정권이 걸어간 모범적인 길은 아무래도 우리 남북한 모두 배워야 할 교훈인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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