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밥먹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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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밥먹고 합시다
  • 김형성
  • 승인 2008.11.14 18:3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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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18 - 김형성(건치 사업국장)

 

시작은...

건치가 10주년을 했다는 이야기를 당시 조순자 간사님께 듣고, ‘근데, 뭐 어쩌라고..’생각한게 99년인지 98년인지 잘 기억은 안납니다만, 어쨌든 그 해 워싱턴 모 대학에서 만들었다는 ‘장애인 치과진료 지침서’ 해석본을 만들자고, 영어공부나 하면 된다는 선배와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매주 충남예산에서 서울을 오고가며 건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파트씩 나눠 해석도 하고 용어정리도 하는 듯 하더니, 점점 회의하러 가면 정작 책 얘기보다는 수불홍보니 구강보건주간이니 하는 사업이야기가 더 많아지더군요.

그러다가 구강보건주간의 건치 사업기획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유치원생을 모아 어린이 연극제에, 개그맨까지 나오는 거리 이벤트 사업까지, 온갖 사업들을 다 벌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부산에 간 박 모 선생은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했지만(결국 일은 다하면서), 묵묵히 눈길을 피하는 선배들의 묵살 앞에 술값 축내는 걸로 복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밥먹고 합시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난 나중에 후배들에게 건치활동 권유할 때 꼭 비싼 밥을 샀습니다.

홍성진 선생은 서교동 유명 중국집에서 누룽지탕을 사줬고(서른이 다 될 때까지 성진이는 누룽지탕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고...),

이경호 선생은 양곱창에, 63빌딩에서 양주도 사줬고(경호는 그렇게 높은 곳에서 술 마신 건 처음이라고...)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문경환 선생과는 굳이 삼겹살 먹겠다는 그에게 우격다짐으로 한우 등심을 사줬습니다.(함께 자리한 전양호 선생은 이 일로 내가 음식을 무척 가린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내가 먹으려고 그런 게 정말 아니란다, 양호야.)

그래서 그랬을까요. 첫 만남에서 골뱅이무침을 사준 후배는 바로 다음 모임부터는 안나오더군요. 흑흑

마을버스

그렇게 시작한 건치활동이 이제 딱 절반 10년을 맞았습니다. 건치는 스무살, 나는 열 살. 함께 술잔으로 밤을 지새우던 이들 모두 어디에 있는지 새어보면 그 세월이 짧지 않다고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 얼굴들이 떠오르니 갑자기 후회같은 것들이 밀려오는군요.

왜 그때 좀 더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는지, 왜 딱 잘라 말하지 못했는지, 왜 후회할 줄 알면서도 그리 모질게 굴었는지. 혹은 지금도 주변에 돌아보지 않는 자리마다 그런 후회할 것들이 낙엽마냥 우수수 떨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지요.

어느 날은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좋은 사람은 둘 째 치고 이리저리 관계 속에 얽혀 사는 일이 지긋지긋하고 피로하다고 느끼는 건 저 만은 아니겠지만요.

하지만 그나마 이만큼 사람 노릇하는 건 팔 할이 건치 몫이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모진 노릇이건 우유부단한 자리건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사람들 속에 끼어있다 보면 마치 만원버스에서 옆 사람에게 나의 균형을 조금씩 나눠 쓰러지지 않듯이 결국 다음 정거장까지는 무사히 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옆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면 그렇게 서운했던 걸까요.

버스가 점점 비어가는 것이 이제 목적지가 다다랐기 때문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마을버스로 바꿔 타는 한이 있더라도 혹시 내가 저기 운전석에 앉게 되더라도, 풍경으로 남기보다는 버스에 앉아서 그 끝을 궁금해 하는 것이 아직은 즐겁습니다.

추신

치과의사로 살아가는 것 치고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고 듣고 배우고 싸우고 헐뜯고 미워하고 욕하고 화해하고 후회하고 사랑하고 기억하고...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혹시 상처주거나 받으면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들을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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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2008-11-25 00:44:01
글이 슬퍼

홍성진 2008-11-18 18:15:30
그 나이먹도록 누룽지탕 처음 먹어보았죠. 고추짬뽕은 그때 이후로 먹어본 적이 없어요. 저도 벌써 건치에서 5살이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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