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語) 달리자] 건치 10년, 예뻐져라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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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語) 달리자] 건치 10년, 예뻐져라 내 얼굴
  • 김철신
  • 승인 2008.12.22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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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대장정] 21 - 김철신(경희 97졸, 구강보건정책연구회 회장)

 

98년인 것 같은데, 건치사무실에 회의를 하러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특별히 무슨 선배가 꾀어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미 누가 꾀어낸다고 어찌될 나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마음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살짝 건드려준 누군가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진 특별한 자산이 있다면, 그 무엇인가를 건드려줄 이들이 주위에 참 많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학번과 달리 유난히 많았던, 그리고 능력과 상관없이 질긴 동기들과 선배들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건치에 회의한다고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구강보건정책연구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 있지 않습니까. 그 오래된 우리나라의 초상화에 입 꼬리 내려간 고집스런 표정의 영감얼굴들... 더구나 학교도 다른 이들이 잔뜩 앉아 움직일 생각은 안하고 그 초상화속의 표정으로 일을 합니다.

저에게는 복사와 자료정리, 그리고 조용히 듣고 앉아있기 같은 막중한 일들이 맡겨졌지요.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무슨 법안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 심각한 표정으로 한 두 달 모여 대더니 말입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사람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한사람이 들어왔는데 자기는 정책연구회의 회원이지 건치회원은 아니라고 합니다. 건치는 자기 삶의 지향이랑은 거리가 있다면서 말이지요...이런 선배들 가끔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 그때 생각했습니다. 저 멘트 뭔가 있어보일지도 모를 저 멘트, 난중에 후회 할 텐데... 물론 지금까지 좋은 술안주가 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사람 들어와서 같이 일했습니다.

“남북한 통일구강보건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 냈습니다. 몇 개 자료 모으더니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회의 때마다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설명해 댑니다. 그때 설명한 내용들 지금 돌아보면 틀린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나라의 거의 유일한 보고서입니다. 지금까지 여기저기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많은 내용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언젠가 이력서를 쓸 일이 있어서 정리하니 제법 그럴듯한 경력이 될 정도로 말입니다.

몇몇 후배들이 들어왔습니다. 당연히 자발적으로입니다. 이미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들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도 그랬겠지요.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살짝 건드려진 게지요... 제가 가진 특별한 자산 중의 두 번째는 그 무엇인가를 건드리고 싶은 사람들을 또 한 가진 것이지요...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저 원래 과묵하고자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안 되었습니다. 조그만 회의실에서 어찌 그리 짊어질 것들은 많은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건치에서 함께한 지난 10년 동안 저는 결혼을 하고, 개원을 했고, 아이를 낳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치과의사로서의 제 삶을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특별한 뜻이 있어서 건치와 함께 한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건치와 함께한 시간이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애쓴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이들처럼 말입니다.

나이가 드니 내가 큰 뜻을 품어 건치에 있었던 양 우기기도 합니다. 괜시리 실망한척, 뿌듯한 척도 하고... 그러나 그것은 나잇살의 증거일 뿐인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선택의 순간이 있고, 그 선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그 순간의 각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후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노력들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초상화속의 영감들은 왜 한결같이 눈은 무섭고, 입 꼬리는 처졌을 까요?

뭐 체면 때문에 웃지 않았을 수 있지만, 초상화를 그릴만한 영감들 대부분은 세상만사가 완전히 맘에 들지는 않았겠지요. 자기 뜻을 몰라주거나 곡해하는 사람이 많았겠지요.

그렇다고 돌아앉아 세상과 담쌓고 살기에는 관심이 너무 많았던 것 아닐까요?

세상에 대한 과중한 책임감과 진지함, 그리고 자신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함. 그냥 추측해 봅니다. 만약 이 영감들이 자기 모습을 한발 떨어져 지켜보았다면, 아니 요즘처럼 회의사진을 가끔씩 미니홈피에 올려서 보았다면, 쑥스러워 살며시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건치에서 얼마만큼 내 초상화가 그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한 가지는 입 꼬리가 내려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뚫어질듯 쳐다보는 눈빛만 가졌으면 합니다. 그것도 약간만 말입니다.

나랑 생각이 너무 다른 사람이 세상일을 다 결정하는 것, 짜증납니다. 내가 가진 분노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것, 슬픕니다.

내 무책임이 항상 과중하게 느껴지는 어처구니없는 피해의식도 화가 납니다.

솔직히 그런 것들 참아내고 성숙하게 처리하는 심리적 장치에 대해서는 포기했습니다.

그냥 뒷담화로 목이 쉴 때까지 떠들어대며 처리합니다. 이런 저급한 내적 분노의 처리방식에 대해서는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나 건치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 그려질 내 얼굴이 종국에는 웃는 얼굴이었으면 합니다.
과중한 책임감과 진지함도 때로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건치가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듯 한 간절한 절박함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진지함에 어색해하며 웃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내 입 꼬리 방향이 어느 쪽인지 항상 의식하며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미 건치와 함께 10년이 넘는 시간을 선택한 것이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제 몫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도 사람들 이름을 불러보고 싶네요, 구강보건정책연구회, 집행위원회, 그리고 각종 국과 회를 같이 한 선생님들 말이에요... 정곽정김김김소신류전박이이전홍정김조서강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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