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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구긴 미국 베트남 '경제원천봉쇄'[기획연재] 제1장 역사진실관-(15),(16)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12.29 11:24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15
『1965년부터 사용한 폭탄 양은 제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사용한 총 폭탄 양을 합한 것의 1.5배를 사용하였다. 고작해야 미국의 뉴멕시코주만 한 나라에.

베트남 사람들은 1m2당 폭탄 하나가 떨어졌다고 한다. 지상에는 살 수가 없어 두더지처럼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찌 터널 같은 땅굴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땅굴에서 생활하고 애도 낳고 학교도 다녔다.

한국전쟁에서 생겨난 새로운 군사용어가 ‘초토화 작전’이었고 베트남에서 더 나아가 ‘융단폭격’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융단을 깔듯이 폭격을 했다는 것이다.』

   
 
  ▲ 융단 폭격하는 미군 전략폭격기.  
 

융단폭격은 특정한 목표를 겨냥하지 않고 일정 지역 전체에 폭탄을 무차별 투하하는 것을 말한다. 전체 지역을 마치 융단을 깔아 버리듯 한다고 해서 융단폭격이라고 한다. 비용은 많이 들고 효율은 낮았다. 위험요소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융단폭격을 한 것은 분명 고의적인 학살인 것이다.

한 국가나 민족이 다른 인종에게 자행한 학살행위를 제노사이드(genocide)라 한다. 법률학자 라파엘 렌킴(Raphael Lenkim)이 국제법에서 집단 학살을 범죄로 선언할 것을 제안하면서 1944년 처음 사용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처럼 베트남전쟁도 미국의 제노사이드임은 명백하다.


16
『베트남에서 7,200억 달러의 전비를 썼다. 미국을 이긴 대가를 베트남은 톡톡히 치러냈다. 미국은 27년간 경제적으로 봉쇄(embargo 정책) 하였다. 그래서 경제적 파행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에 오토바이가 많은 이유는 엠바고의 후유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동차를 거의 들여올 수 없었다. 엠바고가 풀리자 베트남은 쌀 수입국에서 쌀 수출국으로 전환하였다.』

   
 
  ▲ 베트남 거리 어디에서나 오토바이가 넘친다.  
 
그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이 10억 달러 정도였다. 미국은 이런 천문학적 돈을 전쟁으로 낭비하자 경제위기를 맞이했다.

미국이 1971년 달러를 평가절하하고 그때까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던 금태환 중지 조치를 취하자, 국제통화체계가 크게 동요하고 국제 금융 혼란이 닥쳤다. 베트남의 승리가 세계질서를 흔들 결과를 낳았다.

엠바고는 요즘 일반적으로 보도금지를 뜻하는 매스컴 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원래는 한 나라가 상대편 나라의 항구에 상업용 선박이 드나드는 것을 금지하도록 법으로 명령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자존심을 마구 구긴 대가로 베트남은 철저하게 경제봉쇄를 당했다.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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