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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너무도 가벼운 목숨평등과 정의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단어인가?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01.25 01:48

“약자의 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없다.”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진보학자 하워드 진의 절절한 명언이다.

새해 벽두인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이 과격한 시위를 한다고 경찰이 초강경 진압을 하면서 경찰관 한 명과 철거 반대 시위하던 5명의 고귀한 목숨이 뜨거운 불 속에서 숯덩이가 되었다. 시위를 시작한지 불과 25시간 만 이었다.

목숨을 빼앗은 아수라장 같은 진압을 두고 정부와 경찰은 유익하고 불가피하다고 하고 시민단체들과 많은 시민들은 무자비하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조‧중‧동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서민 경제를 몰락시켰다고 공격했다.

사실 노무현 정부 때 경제 성장은 괄목할 만 했으나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켜 비판을 받을 만 했다. 그런 조‧중‧동이 노무현 정부보다 훨씬 더 심하게 부자를 위한 외곬 정책에 골몰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번 참사의 도화선이 된 철거와 재개발을 통한 경제적 혜택은 땅을 가진 ‘강부자’와 건설업자들을 위한 것이지 그곳에서 겨우 입에 풀칠해온 세입자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같은 경제적 하층민은 물론이고 웬만한 중산층까지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서민들은 어지간한 생활은 누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아예 버리고 있다.

철거를 거부하면 용역 깡패들에게 쇠파이프 폭력을 당해야하는 철거민들의 선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난하여 차별받는 그들에게 권력의 이성에 호소해 생존권을 보장받으라고 훈수 두는 사람은 한없이 순진한 사람일 것이다.

군사독재시절부터 그래왔듯이 지금도 수구언론들은 ‘비폭력‧평화적 방법'이라는 논리 잣대로 과격시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난하고 있다. 언제나 권력과 금력의 폭력에 이리저리 터지기만 하는 서민들의 과격한 저항을 두고 폭력의 화신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너무도 설득력이 없다.

시위에서 화염병이 등장하고 안하고를 두고 '폭력·비폭력'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개념은 분명 어폐가 있다.

인간의 행위에서 무엇이 폭력이고 비폭력인가 규정하는 것은 무를 자르듯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위대의 화염병에만 폭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층 더 본질적인 폭력은 화염병을 유도하는 사회 제도와 금권의 폭력 그리고 어폐있는 개념을 확대하고 왜곡하는 언론의 폭력이다.

또한 ‘유전무죄·무전유죄’를 유발하는 우리나라 법조계 관행 또한 수구언론 못지않은 본질적 폭력의 한 단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고질적인 정치적·사회적 악폐에는 애써 눈을 감고, 거기에 저항하는 서민들의 화염병에서만 폭력을 본다면 그것은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적 생각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힘 있는 자가 양보한 것은 민중의 폭력투쟁 결과이지, 자비의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기득권자들은 민중이 흘린 피만큼만 자비를 베풀었다. 인간은 역사에서 평등과 정의를 그렇게 실현한 것이다.

지금은 수구세력에 빌붙어 그 입장을 대변하는 입에 담기조차 싫은 저급한 자들(이재오, 김문수 따위와 뉴라이트라 자처하는 수많은 변절자들)도 과거에는 가장 폭력적인 단체를 이끈 전력을 가지고 있음을 반드시 눈여겨봐야 한다.

30여 넌 전 장편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착한 사람이 살아가기 힘들었던 1970년대의 산업화로 황폐한 철거민들의 하층 삶과 애환 보여주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작가 조세희가 고발한 그 당시 사회병리현상이 전혀 고쳐지지 않자, 조세희 선생은 용산 참사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영해 자신이 쓴 ‘난쏘공’을 떠올리며 우리의 기억에 가물거리는 사회적 평등과 정의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셨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현재의 일로 나한테 다가오는데, 인간에게 주는 충격이 30년 전의 것보다 어제의 것이 몇 배나 위력적이고 더 컸다.”

“어떤 인간이, ‘난쏘공’을 쓴 때 30년 전에, 우리가 잠을 잘 때, 우리의 도시 한 쪽에서 한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을 가만 놔두는 것도 폭력이라고 그랬다.”

“법을 이야기하고 폭력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한 인간들이 처할 수 있는 절망,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한국에서 부족한 건 집이 아니라 지혜다.”

“이 모든 사람들이 옥상에서 떨어졌을 때, 마지막 힘을 다해서 버티다가 죽음의 길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그 불 속에서 다 탈 때, 얼마나 뜨거웠겠나?”

“법이라는 말 그 이전에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일이다.”

이번 참사를 통해 수구들이 입에 담지 못하게 하는 ‘평등과 정의’를 올해의 담론으로 끌어올려보자.

너무도 가벼운 목숨이 된 고인들에게 삼가 명복을 빕니다.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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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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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뚜버기총각 2009-01-28 10:11:45

    고귀한 생명이 쓰러졌다...
    문제는 이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가 그림자처럼 햇볕을 받지 못한다면, 내 옆에 친구, 누이, 동생이 또다시 쓰러질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삭제

    • fasd 2009-01-28 06:24:17

      잘잘못을 따지더라도 일단 사람목숨부터 생각하고 진압했어야 했는데
      그게 빠졌고 진압이 먼저였음..ㅡ.ㅡ;;;
      그리고 경찰 간부들은 밑에 있는 경찰들 목숨은 생각도 안하고 불날생각도 못했나
      파이어맨도 아니고 왜 아까운 특공대 한명을 ㅡ.ㅡ;;;
      연쇄살인범도 얼굴 가려주고 인권보호다 어쩌고 하는게 ..웃길지경임..ㅋㅋ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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