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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태어 났다는 이유만으로[기획연재] 제2장_전쟁범죄전시관(3),(4)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02.10 19:30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3

『미국의 종군기자 리차드 하머는 “미 원정군은 어디를 가나 베트남 사람들을 하등생물 보듯이 했다. 그래서 그들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마치 DDT(제초제)를 사용하여 벌레를 잡는  것과 똑같이 생각했다. 이들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는 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라고 썼다. 바로 이 전시관은 과연 그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리차드 하머의 글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은 ‘인간은 서로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양이에게 다른 고양이는 언제나 고양이지만, 인간은 다른 인간이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다. 때로는 ‘인간이란 종족에게 인간성이라는 개념은 언어집단이라는 경계, 때론 마을의 경계에서 끝나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서구 제국주의’는 이방인, 유색인, 원주민이라는 인간을 단지 ‘하등한 존재’이거나 때론 ‘반드시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 너무나 전쟁이 무서운 것은 처참한 시체를 보고도 아무 감동없이 감각이 마비된 채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다.  
 

   
 
  ▲ 어린 소년을 고문하고 헬기에 태운다.  
 
   
 
  ▲ 소년을 헬기에서 떨어뜨린다.  
 

 

 

 

 

 

 

 

 

 

 

   
 
  ▲ 미 라이 학살 전시관  
 
『여기는 미군 최대 학살인 미 라이(선 미)학살을 전시하고 있다. 미 라이 지역에 가면 미 라이 전시관이 따로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 라이하면 모른다. 베트남 지명으로는 선 미이다. 선은 산, 미는 아름답다는 뜻이니 산이 아름답다는 고장이다. 미 라이학살은 4개의 촌락에서 일어났다.

미군에게 베트남 촌락의 이름이 어려우니까 작전 지도에 따라 미 라이1, 미 라이2, 이런 식으로 불렀다. 학살을 수행하는 작전은 굉장히 계획적이고 규모있게 진행했다. 병사를 3개조로 짜서 역할 분담을 하여 작전지도를 보고 움직인 계획적인 과정이었다.

이 학살을 끝내고 미군은 본국에 “베트콩과 교전 과정에서 504명을 사살했고 아군측 희생자는 1명이다” 라고 보고했다. 그래서 이 학살에 참여했던 모든 병사는 1계급 특진하고 훈장을 받았다.

실제 504명의 면면을 보면 182명이 여성, 임산부 17명, 어린이 173명, 어린이 중에서 56명이 5개월 미만의 신생아, 60세 이상의 노인이 60명, 20세 이상의 남성이나 장년의 남성은 없었다.

내가 언젠가 ‘미 라이 가는 길은 조선 땅을 닮아 있다.’라고 쓴 적이 있다. 여기 정말 이상하다. 베트남에는 소나무가 없다. 그러나 미 라이에 들어가는 입구의 나무를 보면 소나무 같은 느낌이다. 보통 베트남 마을 입구에는 야자수가 서 있는데 이 마을 입구의 야자수는 마치 소나무처럼 생겨서 여기는 참 한국하고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총을 쏘면서 미군이 들어오는 장면, 형이 총 맞은 동생을 안고 구르는 장면. 결국 형제는 모두 죽는다.
여성이 단추를 채우는 장면. 바로 강간 직후의 사진이다. 뒤에 서 있는 어린 소녀도 강간당했다. 울고 있는 꼬마에게 엄마가 단추를 채워주고 있다.”
이런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바로 총살을 당하였다.

   
 
  ▲ 자신의 발을 쏜 흑인 병사  
 
병약한 할아버지가 미군이 쳐들어오자 반바지를 긴 바지로 갈아입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손님이 올 때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실례가 되기 때문이었다. 긴 바지를 갈아입고 방안에서 느리게 기어 나왔다. 방안에서 겨우 나오자 미군 병사가 할아버지 목덜미를 잡고 우물에 빠뜨린다.

할아버지가 우물로 안 떨어지려고 우물 벽을 잡자 흑인 병사가 할아버지의 손을 군홧발로 짓밟는다. 할아버지가 풍덩하며 빠지면서 우물물이 튀었다. 우물물의 세례를 받은 병사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흑인 병사는 바로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 발등에 총을 쏘았다.

이 병사가 미군 측이 주장하는 유일한 부상자였다. 나중에 미 라이 학살의 법적 증언대에서 “내가 이 마을에 들어갔을 때 단 한명의 베트콩도 없었다.”는 결정적 증언을 하여 법적 처벌을 받게 하였다. 미 라이 지휘자는 결국 무기 징역을 받았으나 3년 만에 특사를 받는다.

전 세계 어떤 학살도 해결된 것은 없었다. 법적 증언대로 가는 경우도 없었다. 그 뒤 미군의 학살은 보기 힘든다. 왜냐하면 미군을 대신해서 싸워줄 한국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 라이보다 더 잔혹한 학살이 한국군이 자행했다. 내가 직접 확인한 학살만도 80여 건이 넘는다.』

20세기 인류사에서 대표적인 야만적 사건이 바로 미 라이 학살사건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스스로 외친 윤리를 기만하는 도덕성의 파멸을 스스로 폭로하였다. 그들끼리 미국의 독립정신인 청교도 윤리를 지킨다 해도 힘없는 나라 백성을 마구 죽인 세상이 우리가 방금 살았던 20세기였다.

베트남의 순진한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미군의 공중 폭격실험 대상이 되어야 했으며 고엽제를 뒤집어써야 했는가?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토록 끔찍한 학살을 당해야 했는가?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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