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정책 논설•시론
[시론] 욕만 먹는 대통령, 욕만 해대는 언론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4.05 00:00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편견에 사로잡혀 결국은 파탄에 이르는 비극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아고는 자기보다 못한 자에게 요직을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인사 불이익에 앙심을 품고 상관인 오셀로 장군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이아고는 온갖 간계를 꾸며 오셀로가 “내 아내 데스데모나는 부정하다”는 선입견을 갖게 만들었다. 이 대전제가 오셀로의 머리 속에 들어앉자 아내의 모든 행동을 부정하게만 바라본다. 이아고가 아무런 소전제를 갖다 붙여도 오셀로의 머리에는 아내가 부정하다는 대전제를 뒷받침하는 명제로 차곡차곡 쌓인다.

데스데모나가 아무리 순결을 호소해도 오셀로의 의심은 더욱 깊어갈 뿐이었다. 오셀로는 의심이 절정에 이르자 순결하고 아름다운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여 버린다. 죽여 버리고 나서야 오셀로는 자신이 이아고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자결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기 얼마 전 대구 지하철에서 방화가 일어나 수 백 명의 무고한 시민이 생명을 잃었다. 유족들이 무엇보다 분노한 것은 수습 총지휘를 맡고 있는 대구시장이 ‘사고 현장 보존’이라는 기본 원칙을 무시한 채 하루만에 현장감식을 끝내고 물 청소를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망자와 실종자의 신원확인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유품이 상당량 없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유족들은 대구 시장에게 거칠게 항의하며 사고 현장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농성장에는 대구 시장에 대한 비난 현수막은 없고 ‘노무현은 각성하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대통령에 당선했으니까 책임지라는 투였다. 노무현에 대한 선입견이 섬짓하기만 했다.

대통령 취임 후 대구의 유력한 신문에 이런 칼럼이 실렸다. “냉혹한 독재자의 이미지를 지녔던 아돌프 히틀러도 눈물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눈물이 많아 보인다. 사흘전 청와대에서 있은 동티모르 순직·실종자 유족들과의 아침식사 자리에서도 또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히틀러의 언론 인식과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닮아 있다. 히틀러는 신문을 뻔뻔스럽고 무책임하며 정부가 하는 일에는 트집이나 잡고 발목 잡는 존재로 인식했다.” 보수언론은 어처구니없는 삼단논법으로 노무현에 대한 부정적 명제를 독자들에게 차곡차곡 심었다.

변변치 못한 학벌에다 아무런 정치 계보도 갖지 못한 노무현이 화려한 학력에다 막강한 정당의 총재를 물리친 것을 ‘분에 넘치는’ 승리라 본 것이다. 운동권과 가까웠고 더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공개적으로 공격한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보수언론은 적대감 이상의 증오심을 드러냈다. 보수정치인들은 ‘초라해 보이는 상대에게 졌다는 굴욕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주류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이 당선되자마자 마냥 ‘씹었다’. 보수언론과 정치인은 손을 꼭 잡고 노무현의 직설적인 표현과 거친 말투를 트집잡아 끊임없이 발목잡기에 열중했다. “노무현은 대통령감이 아니다”는 대전제를 깔고 나서 아무런 소전제를 갖다 붙여 선입견을 확대 재생산한 것이다. 그래놓고 야당과 언론은 1년 내내 욕만 먹는 대통령이라고 비아냥거렸고, 이에 여당은 1년 내내 욕만 해대는 야당과 언론이라고 비난했다.

사사로운 앙심은 편견을 낳고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어 갈등과 증오를 부추긴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이런 감정이 폭발한 필연적 결과이다. 선거법 위반 따위의 법률적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 다시 말해 정책대결이라는 이성은 없고 비아냥거리는 감정만 난무한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오셀로』에서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있다.
“인간은 저울과 마찬가지로 한쪽에 이성의 저울판을 가지고 있어. 욕정의 저울과 균형을 취해주지 않는다면 비열한 본능에 사로잡혀 비참한 최후를 당하고 말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성이라는 것이 욕정의 폭풍이며 육욕의 유혹이며 방종한 색욕 등을 식혀주거든.”

보수언론이 앞장서 나팔불고 193명의 정치인이 발의한 감정적 탄핵에 대해 국민의 75%는 “탄핵이 부당하다”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이런 이성적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캄캄한 터널에서 한줄기 촛불이 되고 있으니 우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으리라.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저작권자 © 건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송필경 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상호명: (주)건치신문사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54길 21, 제1호 3층  |  대표전화 : 02)588-6946  |  팩스 : 02)588-6943
대표자: 전민용  |  청소년관리책임자: 윤은미  |  정보관리책임자 : 김철신  |  사업자등록번호 : 214-86-74634  |  발행인 : 전민용  |  편집인 : 김철신
Copyright © 2019 건치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