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국민들의 반발에 직면한 의사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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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국민들의 반발에 직면한 의사 윤리
  • 편집국
  • 승인 2002.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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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는 없고 집단이기주의만 남았나?

 

의협의 어이없는 징계 결정
지난달 9일 대한의사협회(회장 신상진. 이하 의협)가 윤리위원회를 열어 김용익, 조홍준 교수의 징계를 확정한 파문이 시민사회단체와 일반 국민들의 반발을 넘어 의료계까지 확산되고 있다. 대한의료윤리교육학회(이하 윤리학회) 부회장인 황상익 교수가 회장인 맹강호 교수의 윤리위 참석과 징계찬성에 반발해 부회장직에서 전격 사퇴해버린 것이 그것.

사실 “실패한 의약분업을 입안·추진하는데 깊이 개입했다”는 이유로 의협이 두 교수에 대해 징계결정을 내린 것은 의협 윤리위에서도 그동안 “회원의 정책적 판단은 심의 대상이 아니다”며 태도 표명을 미루어 올 정도(한겨레신문 10월10일자 사설 참조)로 불합리한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의협 윤리위에서 뒤늦게 징계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달 27일 진행된 의사결의대회에 불참하겠다는 대한개원의협회(이하 대개협)의 강경한 태도에 떠밀렸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결국 의협은 개인의 정책적 소신에 대해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는 대내외적인 비판에 직면해 징계를 망설여오다 대개협의 최후통첩에 떠밀려 징계를 강행함으로써, “2년 이내에만 징계할 수 있다”는 자신의 정관규정마저 스스로 뒤집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이고 말았다.

국민들의 비난, 집단이기주의
이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과 국민들의 비난은 한가지이다.

의협은 “임의조제 등 약국의 불법진료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전직 경찰관 2명을 공개 채용해 사전교육을 실시한 뒤 약국 감시활동에 투입하겠다”(2002년 5월 8일)고 밝히기도 했고, 또한 “보험급여 허위청구 등 비윤리적 행위로 의사 집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극소수 회원들을 윤리위원회에서 강력히 징계하는 등 의료계 자정운동에 나설 방침”이라며 “이를 위해 대한변호사협회가 갖고 있는 수준의 자체 징계권을 달라”고 정부에 촉구(2001년 4월 2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협은 이러한 입장표명과는 달리 불법진료와 부당청구, 파렴치한 탈세 등 의사집단 내부의 고질적 병폐를 자체적으로 고발하기 위해 ‘고발센터’ 혹은 ‘적발단’을 운영하거나, 윤리위를 통한 자체 징계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의협은 오히려 ‘국민들과 함께 하는 의사상’ 정립을 위해 노력했던 두 교수에게는 ‘조자룡 헌 창 쓰듯’ 거리낌없이 과감한 징계를 행사해 버렸다.

때문에, 국민들이 의협의 이런 행태들에 대해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이 이런 지경에까지 몰리게 되었을까?

 

전문가 윤리의 부재
인제 의대 강신익 교수는 의사들이 이러한 행태를 보이게 된 원인을 의사 집단의 ‘전문가 윤리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사실 서구에서 먼저 확립된 전문가집단(Professionnal, 의사, 변호사, 성직자 등)의 의미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익(이타적 서비스)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아 자신들의 고유한 ‘배타적 권리’를 독점적으로 부여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서구에서 의사집단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전문직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공식적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전문적 학술잡지를 간행하며, 자율적 결사에 의한 윤리규정을 갖게 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전문직으로서의 배타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들인 자정노력은 매우 각별한 것이었다.

그러면 이들은 과연 전문직으로서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기울였을까? 이를 우리 치과의사들이 전문직으로서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사실 서구의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치과의사는 독립된 전문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장장이나 이발사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면서 아픈 이를 치료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게 되고,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거나 도제제도 속에서 외과술을 익힌 의사들 중 치과의술을 연구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의사와 외과의사, 이발외과의사, 이발사, 대장장이,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던 집단들이 나름대로 치과의술을 행하고 있었다.

전문직 확보를 위한 자정노력
결국 이러한 무분별한 의료행위가 만연했던 상황에서 치과의사의 윤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했고, 교육수준이 높은 치과의사들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단체를 구성하고 윤리지침을 제정해 무자격자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이처럼 초기의 치과의사들이 치과의학의 전문화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치과의술이 갖는 경제적 매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돌팔이 시술자들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기 치과의사들은 윤리지침을 제정하는 등 자체의 자정노력을 통해 국민들 속에서 전문직으로의 위상을 확보해 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서구의 의사집단이 민간요법 등 여타의 치료술식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학(현대의학)과 ‘국민들을 위한 이타적 서비스의 제공’을 앞세워 전문가로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배타적 권리’를 국민들 속에서 인정받아간 반면,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일본과 미국에 의해 전통의학인 한의학과의 경쟁도 없이 그냥 위에서 주어진 전문가집단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집단으로서의 권리의식은 있어도 그에 뒤따르게 되는 전문가로서의 의무를 망각해 왔다”는 것이 강신익 교수의 지적이다.

즉, 우리나라 의사들은 자신들의 배타적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윤리강령과 지침 등을 통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서구의 의사들과는 달리 무조건적인 ‘배타적 권리’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의사파업의 교훈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로 강신익 교수는 2000년도의 의사파업을 들고 있다. 당시의 의사파업은 단순히 의약분업 실시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기보다는 그동안 축적되어온 왜곡된 의료체계의 모순 때문에 의사들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한 것이었다고 보아야만 한다.

이는 지금까지 정치권력과 밀착해온 의사집단(의협)이 왜곡된 의료체계의 개선을 위해 대정부투쟁을 최초로 벌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당시 의협이 투쟁의 방향을 잘못 선정하면서 오히려 국민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의협은 국민들의 편에 서서 왜곡된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대정부투쟁(공공의료의 확충과 건강보험제도의 개선 등)을 벌여나가야 했음에도 수가인상과 대체조제문제 등 직종이기주의적인 모습만 보여 국민들로부터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당하고 말았다.

만약 당시 의협이 저수가를 기반으로 형성된 건강보험제도로 약가마진을 통해 수입을 보충할 수밖에 없었던 왜곡된 의료체계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싸웠다면 아마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즉, 적정수가와 보장성확대를 기반으로 한 건강보험제도의 개선 등 국민들의 편에 서서 근본적인 의료제도의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투쟁방식도 일방적 파업이 아니라 일부에서 제안했던 ‘대국민 무료진료투쟁’을 벌여 국민들에게 정당성을 획득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사파업을 비난하는 시민사회단체들과 국민들을 ‘정부의 홍위병’과 ‘무책임한 언론 때문에 일어난 오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함으로써 그야말로 국민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들의 공감
의사들은 독불장군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대사회에서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의사들, 그리고 그들의 대표조직인 의협에서 2000년 의사파업 이후 최근의 징계파동에 이르기까지 보이고 있는 모습들은 진정한 전문가집단의 행동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성을 잃은,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독불장군’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가 되기 위해 우리는 10년을 투자했다”며 자신들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전문가집단의 ‘배타적 권리’를 독불장군식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의약분업사태에서도 경험했듯이 의사들이 배타적인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했을 때 나타나게 되는 국민들의 반응은 ‘외면’과 ‘왕따’ 뿐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의무가 따르지 않는 권리의 주장은 그 권리마저도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의사들은 ‘자율’을 만끽하고 있는 미국의 의사들을 동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의사들이 누리고 있는 그 ‘자율’ 속에는 강신익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는 동료들의 잘못을 끝까지 지적한다”고 하는 그들의 윤리지침이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앞에서 잠시 살펴보았듯이 그들이 확보한 전문가집단의 ‘배타적 권리’는 엄격한 자기규제와 내부규율을 통한 의무의 수행 속에서 국민들에게 인정받은 것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진정한 전문가집단의 권리확보는 국민들을 위한 엄격한 내부규제와 의무의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의사집단 내부의 엄격한 ‘전문가윤리’의 확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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