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벼랑 몰린 한의계 ‘전(戰)시 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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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벼랑 몰린 한의계 ‘전(戰)시 방불’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9.03.24 17: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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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방금지 시한 앞두고 ‘다수 개방’ 의료법 개정 추진…한의대생 점거농성 돌입

한의과전문의 소수정예 배출 실패로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한의계가 (가칭)‘가정한방전문의’ 도입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파국을 맞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김현수 이하 한의협)가 전국 회원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마련, 조만간 복지부에 제출할 ‘한의사 전문의제도 개선안’(이하 개선안)에 대해 전국한의과대학학생회연합(이하 전한련)이 반발하며, 집단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한의협은 ‘전문과목 표방금지’가 올해로 시한이 끝나게 됨에 따라 개선안 마련에 착수, 전국 지부를 5개 권역으로 나눠 간담회를 진행 후 지난 22일 최종 공청회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행사 당일 전한련 소속 한의대생들이 한의협 대강당을 점거, 집단농성에 돌입하며 공청회가 무산됐으며, 전한련은 전국 11개 한의대생들이 돌아가며 집단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의 취지 퇴색시킨 ‘누더기 개선안’

그렇다면 한의협이 마련한 개선안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한의대생들이 극단적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일까?

지난 21일 열린 서울·경기·제주·인천·강원지부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마지막 간담회에서 한의협 최방섭 부회장이 발표한 개선안을 살펴보면, 핵심적으로 4가지 조항을 담고 있다.

첫째는 경과규정을 인정해 기존의 모든 한의사에게 전문의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다는 것이다.

아마 기존에 임의수련을 받은 자에게는 곧장 전문의시험 응시자격을 주고, 받지 않은 자에게는 별도의 수련과정을 이수하면 응시자격을 주는 방향으로 개선안은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수련체계 이원화’ 인데, 임의수련을 안받은 자가 받아야 할 별도의 수련과정 마련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수련기관인 한방병원들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일정한 기준을 갖춘 한의원을 모자병원으로 지정해 별도의 수련교육을 진행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별도의 전문과목 신설이다. 현재는 8개 과목에서 전문의를 시행하고 있는데, 기존 한의사들이 전문의에 진입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문과목을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복지부 관계자도 “수련을 받지 않았는데, 기존 8개 과목 전문의로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신규과목을 개설해서 하는 것은 기존 전례(의과 가정전문의)도 있으니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의협은 더 나아가 마지막 개선안으로 ‘전문의 자격 복수취득 활성화’까지 담고 있다. 전문의가 된 이후 몇 년 후 다른 전문과목도 수련 받아 복수의 전문의 자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참의료실현을 위한 청년한의사회(이하 청한) 이은경 정책국장은 “전문의 자격 복수취득은 현재 의과에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한의협의 개선안은 모든 한의사에게 전문의 자격을 주기 위한 방안을 넘어 복수 전문의 자격까지 거론하는 등, “올바른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전제로 국민에게 양질의 한의과 진료를 제공한다”는 애초 전문의제도 취지 자체를 포기한 안에 다름 아니다.

또한 모자병원제 도입으로 일정 규모의 한의원도 수련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양질의 전문의 생산’이라는 ‘교육’의 의미도 퇴색시키고 있다.

한의사전문의제 왜 최악까지 왔나?

한의계도 지난 1999년 처음 전문의제를 시행할 때까지만 해도 ▲소수 배출(10% 이하) ▲경과조치 불인정(기득권 포기) ▲전문과목 표방금지 3가지 전제에 대한 합의를 이룬 바 있다.

그러나 매년 졸업생의 29%가 수련의가 되고, 전문의시험 합격률이 90%를 넘어서면서 지금까지 4차례의 시험을 치룬 결과  1,100여 명이 전문의로 배출됐다.

현재 한의사 수가 1만8천명에 약간 못미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전문의 수가 전체 한의사의 10%를 넘어서는 것은 순식간인 것이다.

게다가 내년부터 전문과목 표방이 가능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경영이 어려운 한의원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그러나 “모두에게 다 풀자”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 받게 없게 된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다름 아닌 ‘교수들의 집단 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

한의계 교수들은 ‘기득권 포기’라는 한의계 대합의를 깨고, 2001년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집단행동으로 결국 450여 명이 전문의 자격을 획득했으며, 이로 인해 한의계 내부의 분열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임의수련을 받고도 경과조치를 포기한 한의사들은 전문의시험 응시자격을 줄 것을 요구했고, 임의수련을 받지 않은 한의사들조차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하며 한의계 전체가 사분오열된 것이다.

한의계 교수들의 전문의 자격획득으로 현재 한의사전문의는 1500여 명이며, 벌써 전체 한의사의 9%에 육박한 상태다.

청한 이은경 정책국장은 “교수들의 전문의 자격 획득으로 전 한의계가 사분오열된 상태”라면서 “청한은 10% 이하의 소수 아니면, 90% 이상의 다수 배출이 돼야한다는 입장인데, 전자가 물건나간 상황에서 이제는 후자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전문과목 표방 대책과 관련 이 국장은 “치과는 과간 진료 구분이 뚜렷할 지 모르지만, 우리는 침구과만 해도 모든 진료가 가능하는 등 표방과목만 진료할 수 있게 하는 법 개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면서 “의과의 경우도 수가만 못받을 뿐이지 전문과목 외의 진료를 다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피력했다.

한편, 치과계의 경우도 현재 공직치과의사회가 다음달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다수개방안이 채택되지 않을 시 헌법소원을 추진하는 등 ‘부교수급 이상은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한 행동에 나설 계획이어서, 한의계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도 배제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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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2009-03-26 10:52:02
청한 이은경 정책국장 님의 이야기를 일부 오해하신 거 같습니다. 본인도 그렇게 말씀하시고요. 청한은 다수배출 입장이 아닙니다. 현재 공식 입장은 소수 배출이고 다만 10년 간의 전문의제 논의 과정과 소수배출 원칙이 깨진 현실에서 현재 청한 내에도 여러가지 입장들이 공존하게 되었고 현시점에서의 대안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물론 논의 이후에도 소수배출 원칙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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