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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진료단 잘 다녀왔습니다[방문기] 베트남평화의료연대 10기 진료단을 마치고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03.28 17:31

 

지난 3월 14일에서 22일까지 ‘베트남평화의료연대’는 베트남 진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진료단원은 베트남에 갔다 오면 누구나 심한 열병을 앓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 가슴에 새겨주는 진한 감동의 여운으로 말입니다.

베트남을 다녀올 때 마다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 방문 역시 심장을 떨게 하는 영혼을 만났습니다. 3월 18일 밀라이 기념관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나라 청룡부대가 아주 잔인하게 학살한 하미 마을의 위령탑을 참배하고 그 학살에서 살아남은 할머니를 만난 것입니다.

할머니는 하미 위령탑 바로 맞은 편 마을에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동네 사시다가 1968년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에 목숨은 어찌 간신히 건졌지만 두 발목을 잃으셨습니다. 온 가족 중에 당시 다낭에 머슴살이 간 아들 하나만 학살에 비켜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우리 답사조가 집을 방문하니 할머니는 우리를 불편한 걸음에도 활짝 웃음으로 구수정 선생을 비롯한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무언가 큰 소리로 다급하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은 논에서 일하는 아들 내외에게 빨리 집에 와 귀중한 손님을 접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드님과 며느리님이 하던 일을 멈추고 허겁지겁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들에게 탄산수를 내놓았습니다. 베트남의 이 깡촌에서는 귀한 대접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갸름한 얼굴, 순백의 머리칼, 부드러운 주름, 선한 눈매, 이가 없어 합죽하지만 미소를 머금은 입술…모진 세월을 기어코 견뎌내신 모습치고는 너무나 곱운 얼굴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들이 학살 전인 37세 때의 사진을 보여주시는 데 다소곳한 미인이셨습니다. 돌아가신 제 엄마의 갸름한 얼굴과 이가 하나도 없는 합죽한 입모습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시멘트 마당에 모두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두 무릎을 세우고 앉으셨습니다. 그제야 할머니의 두 발목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쪽은 발이 없고 복숭아 뼈 아래 부분이 납작하게 발목보다 넓어져 있어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무릎 아래가 절단되어 있어 플라스틱 발목을 끼우고 계셨습니다.

   
 
  ▲ 좌측부터 구수정 선생, 하미 할머니, 베트남 통역인 시내  
 

할머니는 중부지방 사투리를 심하게 하셔서 베트남 통역인 ‘시내’가 구수정 선생께 통역해주면 구수정 선생이 우리에게 다시 통역해 주었습니다.

(‘시내’는 본명이 Nguyen Ngoc Tuyen 이며 이를 한자로 쓰면 阮玉泉, 마지막 이름인 시냇물을 뜻하는 泉을 우리말로 옮겨 ‘시내’라 불렀습니다. 시내는 호이안에서 태어나 다낭에서 자랐다기에 이 지방 사투리에 정통하다고 합니다.)

할머니 집 앞에는 20m 넘게 보이는 야자나무가 몇 그루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나무를 가리키며 ‘내 손자가 있으면 저 나무에 올라 야자를 따 너희들에게 줄 것인데 손자가 공부하러 도시에 나가 그럴 수 없으니’란 말씀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우리를 제대로 대접 못하는 것을 그리 안타까워했습니다.

약 20분간의 만남에서 할머니의 표정은 수도 없이 바뀌었습니다. 슬픔 원망 그리고 따뜻한 용서의 표정 말입니다.

‘왜 그 한국군인들이 우리 온 동네 사람과 내 가족을 다 죽이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란 원망의 얼굴에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습니다. 그러나 금방 웃눈 얼굴로 바꾸어 ‘너희들의 잘못은 아니야. 그럼 아니지. 너희들은 여기 자주 놀러와. 다음에는 내가 잘해 줄께’

   
 
  ▲ 진료단 뺨을 합죽한 입술로 어루만져주시는 하미 할머니  
 

헤어질 때 무슨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꼭 껴안아주시면서 합죽한 입술로 우리 뺨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다가 기어코 카메라 뷰파인드에 눈물을 얼룩지우고 말았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 숙소에서 베트남이 자랑하는 탄타오 시인을 모시고 강연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 만남에서 할머니가 우리 뺨에 대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구수정 선생의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제가 아까 통역을 하면서 오늘 저희가 만난 할머니가 저희를 보시면서 “또이꽈”, ‘또이꽈’란 말씀을 계속 하셨어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너희들이 이 멀리까지 찾아오니 불쌍해서 어떡해. 너무 불쌍해. 불쌍해." 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탄타오 선생님께 전달해드렸는데요. ‘또아꽈’의 의미에 대해서 탄타오 선생님이 더 깊게 설명해주시고 싶데요.

이것은 불쌍하다라는 표현이 맞지만, 여기 이 중부지방의 사람들이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표현할 때 ‘또이꽈’ ‘또이꽈’라고 표현한다는 거예요. 이 표현 속에는 불쌍한 것 보다는 할머니의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탄타오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전쟁전선에 나갔을 때 지금 여기 있는 여러분보다 더 어린 병사이었을 겁니다. 그 때 이 중부지방 가난한 마을에 가면 저 같은 병사를 재워주고 밥 먹여주는 어머니들이 계셨는데 그때 저희만 보면 ‘또이꽈’ ‘또이꽈’하셨어요.

너무 젊은 나이에 전쟁에 나가는 우리들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 말에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는 애정의 표현이예요. 저는 이제 세월이 지나 늙었지만 그 말의 어감. 그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에 이처럼 따뜻한 체온이 담긴 말이 얼마나 있을까요? 증오를 넘어선 순수한 용서를 가득 담은 영혼을 느꼈습니다. 이런 영혼은 베트남이 아닌 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어 저는 가고 간 베트남에 또 갈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또이꽈’란 말만큼 마음을 듬뿍 담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고맙다’란 말입니다. 어느 국어학자가 ‘감사’란 말은 정중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고 ‘고맙’이란 말은 그냥 구어체로 쓴다고 하였는데 이런 해석은 무식의 극치입니다.

물론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비슷한 말로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는 사전의 정의는 거의 같습니다.

‘또이꽈’가 불쌍하다를 넘어 진한 사랑을 담고 있듯이 ‘고맙다’도 서로 주고받는(give & take)란 범주를 넘어 어머니 마음 같은 사랑을 담은 말입니다.

옆 집 철수와 영희가 어릴 때는 비행을 저지르고 이웃 부모 속까지 썩이더니 커서는 의젓한 신사숙녀가 됐다는 소문을 들을 때 어머니들께서는 ‘잘 자랐다구. 그래,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남의 잘된 모습이나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고맙다’란 표현을 옛 어른들은 쓰신 것입니다. ‘고맙다’는 어머니 마음처럼 한없이 깊고 따뜻한 말인 것입니다.

이번 방문으로 베트남 진료단은 10주년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베트남에서 진료를 베푸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베트남 역사의 진실과 감동을 배우고 왔습니다. 건치의 절대적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건치 가족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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