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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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프리즘>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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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제출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국회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무엇이 쟁점인가?

먼저, 여당이 당론으로 정한 정부안은 기금의 주식 및 부동산 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시키는 제3조 제3항의 삭제를 제안하고 있다. 동 조항이 삭제되면 그 동안 예외적으로만 인정되었던 주식 및 부동산 투자가 원칙적으로 가능해진다.

국민연금 등 일부 연기금들이 이미 예외조항을 이용하여 주식 및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언 듯 보기에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야당은 이번 개정안을 섣불리 통과시켜주지 않고 있다. 몇 가지 중요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주식 및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원칙적으로 허용되면 이들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다. 둘째, 각종 연기금이 정부에 실질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 연기금의 대규모 부실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연기금의 여유자산을 인위적인 증시부양, 내수 진작을 위한 SOC 투자, 의결권행사를 통한 민간기업 지배 등에 이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야당은 몇 가지 전제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제3조 제3항의 삭제에 반대하고 있다. 전제조건으로서 투자위원회와 자산운용 전담부서 설치, 투자윤리규정 제정, 자산운용지침의 수립 등을 제시하고 있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 사항들이다.

그러나 야당은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을 한 가지 더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고 수익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하자는 것이다. 연금을 통해 정부가 민간기업을 지배하는 연금사회주의가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국제기준에도 맞지 않다. 먼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의결권 없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기업지배구조위험이 매우 높고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의결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식에 투자하는 한 의결권은 반드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의결권행사를 금지시킨다면 주식에 전혀 투자하지 않는 것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야당이 제시한 안에 따르면 수익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안건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의결권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안건을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고 자칫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되어 전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의결권행사를 인정하면서도 연금사회주의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개별기업에 대한 투자한도 설정과 연기금 자체의 지배구조 개선이다. 선진 각국의 대형연기금들은 자산운용지침을 통해 스스로 개별기업에 대한 투자상한을 설정하고 있다. 예컨대, 개별기업이 발행한 총발행주식수의 5%까지만 해당 기업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연금사회주의를 우려해서가 아니라 유동성 저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등 우리나라의 연기금들도 그 투자규모가 증대하면 자연스럽게 유동성 확보차원에서 투자상한을 설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자상한 설정은 부수적으로 연금사회주의의 의혹을 가라앉히는데 일조할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발행주식의 5%로도 민간기업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연기금 자체의 지배구조 개선과 의결권행사절차의 투명성 확보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금운용위원회의 민간위원비중 과반수 확보, 민간위원장 선임, 추천위원회의 민간위원비중 과반수 확보, 의결권 행사에 대한 기준, 조직, 절차의 공시, 의결권 행사내역의 공개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 국회에는 기금관리기본법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상정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연금의 지배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도록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대폭 수정하고 기금관리기본법의 통과를 이에 연계시켜야 할 것이다.

김우찬(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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