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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흰 옷[기획연재] 제3장_감옥전시관(1)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04.21 12:11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 지옥 같은 꼰 다오 감옥을 재현하고 있다  
 
본관인 전쟁범죄전시관 왼쪽에 감옥전시관이 있다. 자유·평등·박애를 부르짖은 프랑스가 지은 감옥과 자유의 보루라 일컫는 미국이 지은 감옥을 재현하고 있다.

일제의 서대문 형무소보다 훨씬 더 끔찍한 여기는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 모습일 것처럼 보였다. 이 잔혹한 소굴에서도 베트남 지사들은 맹렬히 애국의 에너지를 응축하였고 미래를 위한 웃음을 간직했다.

감옥에만 의지하여 통치하는 자에게는 베트남인들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부터 베트남에는 감옥이 많았다. 실제 학교 수보다 감옥의 수가 더 많았다. 1950년대 남베트남 정권이 반혁명을 전개한 수단은 먼저 베트민이 없애버렸던 프랑스의 지방통치체제를 다시 일으켜 만든 관료체제였다.

또 지엠정권은 특수경찰부대를 동원해 ‘용공주의자’에 대한 무차별 체포와 학살을 일삼았다. 더욱이 북베트남 병사로서 프랑스군과 싸우다가 제네바협정 후 고향으로 돌아온 6천여 명을 가려내기 위해 지엠은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1958년 말까지 4만 명의 정치범이 생겼으며 1955~57년간 1만2천여 명이 살해되었다. ‘빨갱이’란 죄명만 씌워지면 군사법정은 바로 죽였다.

1958년에도 제네바협정을 지킬 것과 통일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 위/남베트남에 있었던 감옥들 위치아래/사이공에 있었던 감옥들 위치  
 
커져가고 있었다. 지엠 정권은 이런 요구를 하는 6천 명을 체포하여 이들을 공산주의로 몰아 푸 로이(Phu Loi) ‘정치교육센터’에 감금하였다.

 지엠 정권은 이들이 먹는 음식에 독약을 뿌려 무려 1천여 명을 죽이고 4천여 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그리고 중태에 빠져 신음하는 사람을 총살하였다. 이것이 ‘푸 로이 대학살’이다.

‘자유수호’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미국과 지엠의 ‘레드 콤플렉스(반공주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잔인한 것이었다.

61년 말 정치범의 숫자는 15만 명에 다다랐다. 60년 사이공정권 스스로 인정한 정치범 숫자만도 5만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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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두대와 시체를 담는 통  
 
『우리에게 38선이 있었다면 베트남에도 17도선이 있었다. 여기 찍혀 있는 것이 분단선 이남 남베트남의 감옥을 표시한 것이다. 이걸 보면 남베트남 전역이 감옥이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이공에도 감옥이 많았다. 호찌민 시의 옛 이름 사이공은 지금처럼 그렇게 넓지 않았다. 이 작은 사이공에서도 감옥이 이렇게 많았다. 1980년대 우리나라 운동권에서 유행했던 「사이공의 흰 옷」 이란 책이 있다.

평범한 여고생이 대학에 들어가서 어떻게 반미 전사가 되는 가를 보여주는 자전전적 실화 소설이다. 이 주인공이 살은 쯔오하 감옥은 지금 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 호찌민 시 어딜 가든지 여기가 예전에 감옥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이공의 흰 옷」은 1960년 무렵 사이공(호찌민 시의 옛 이름)을 무대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응우웬 티 짜우의 자전적 일대기를 담은 이야기이다.

   
 
  ▲ 1986년 발간된「사이공의 흰 옷」  
 
시골 가난한 소작인의 딸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사이공으로 유학을 하면서 민족해방운동에 눈 떴다. 투쟁하고 옥고를 치르고 구찌터널로 들어가서 싸우면서 동지를 사랑하는 과정을 그린 글이다. 흰 옷의 주인공은 민족해방 후 공직생활을 하며 혁명동지였던 레 홍 뜨와 결혼하였다.

이 책에 보면 프랑스마저 칭찬한 ‘디엔 비엔 푸’ 승리조차 남베트남 학생들은 숨어서 배워야 했고 이것을 가르친 스승은 감옥에 가야 했다.

이 책이 나오자 베트남 시인 레 아인 수앙이 ‘흰 옷’이란 제목으로 그녀를 기리는 시를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에 번역되어 당시 학생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흰 옷이란 여학생의 제복인 흰 아오자이를 말한다.

흰 옷

한 다발의 삐라, 몇 장의 신문이
감쪽같이 감춰진 가방을 껴안고
행운의 빛을 전하는
작은 파랑새처럼
나는 깊은 잠에 빠진 사이공의 거리
여기저기를 날아다닌다.

복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평온한 밤도 아직 오지 않았다.
내일도 수업시간엔 눈꺼풀이 무겁겠지
그러나 나는 간다 내일도 또 내일도

그리고 어느 날 내 모습은
거리에서 사라졌다.
어머니의 슬픔과 친구들의 피눈물
사랑하는 사람과 가슴 에이는 회상을 뒤로 한 채

하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
사랑과 신뢰로 이어진 우리들의 삶
조국에게 동지에게 연인에게
굳게 맺은 나의 언약은 생명이 있는 한
변함이 없다.

죽음을 넘어 뇌옥의 쇠사슬을 끊고
암흑의 벽에
떨리는 손으로 쓴다 흰 옷의 시를
땀방울 흐르는 선혈 속에 뚜렷이
이 흰 옷 더욱 희게 언제까지나…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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