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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故 노무현의 위대한 유산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06.02 23:40

 

존중할 가치를 지녔던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쓰는 일보다 비통한 심정이 또 있을까?

노무현! 그는 시기심이 많고 너그럽지 못한 인간들이 파놓은 비열한 늪에 빠져 결국 헤어나지 못하자 혹독하게 자기의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졸랐다.

지난 30년 우리 정치사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과 개성과 코드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의미는 간단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어느 날 버릇없는 돈키호테처럼 나타났지만 실은 언제나 작정한 돈키호테였다.

1981년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을 계기로 안락했던 변호사가 인권 변호사의 길을 택하면서 평범한 서민들의 가난한 맨발과 놀랍도록 보호받지 못하는 삶의 내부를 방사선처럼 투시하기 시작했다.

1988년 김영삼의 배려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은 5공 청문회에서 아주 간단하면서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논거를 외과용 메스처럼 잡아 전두환의 5공 환부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투박한 정치 신인은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지만 노무현은 대부분의 정치인과 달리 특별한 정치적 가면을 쓰지 않았다. 1990년 3당 합당을 야합이라고 거친 몸짓으로 김영삼 면전에서 항의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후 고향 부산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치적 보스에 대들었다는 이유로 시베리아 찬바람보다 더한 냉대를 받았다. 부산에서 우리 사회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보스 정치를 타파하자고 목이 쉬도록 외치며 4번이나 선거에 나와 뻔한 결과를 보여준 것에 대해 사람들은 바보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노무현을 존중한 이유는 조선일보와 공개결투를 해낸 최초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1991년 풋내기 시절에 감히 조선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것이다.

5공 청문회에서 자신들의 대부인 전두환에게 대든데 대한 보복으로 조선일보는 노무현의 프로필을 왜곡‧조작한 것이었다. 웬만한 정치인이면 참았던 굴욕을 노무현은 타협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조선일보라는 더러운 피땀을 긁어모아 지은 견고한 성벽을 호미로 쪼아대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때 각종 쿠데타에서 공을 세워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을 훈구세력이라 했다. 전두환의 5공 정권에서 최대의 훈구세력은 조선일보였다. 한때 조선일보는 동아일보 다음으로 박정희의 유신에 대하여 의미있는 저항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두환이 등장하자 누구보다 앞장서 괴성을 지르고 5‧18 광주 폭압을 극찬했다. 조선일보는 수구 권력이 두드리는 대로 소리를 내는 피아노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반대자들의 영혼을 파괴했다. 덕분에 조선일보는 5공이 지난 뒤 동아일보조차 넘볼 수 없는 언론 권력을 거머쥐었다.

조선일보는 그때부터 일개 언론사가 아니었다. 조선일보라는 언론은 흔히 말하는 권력의 나팔수가 아니라 권력을 언론의 머슴처럼 부리는 권력을 휘둘렀다. 더 이상 ‘밤의 대통령’이 아니라 문민정부 김영삼도 국민정부 김대중도 이 교만한 ‘낮까지 점령한 대통령’ 앞에선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무장한 골리앗처럼 완강한 훈구파 조선일보에게 맨손의 노무현이 ‘맞짱’ 뜬 것은 ‘버릇없는’ 정도를 넘어 완전히 ‘정신나간’ 돈키호테였다. 무기라고는 단지 단호하고 날카롭고 열정적인 논리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이런 노무현은 순응적인 서민의 사랑이 아닌 반항적인 서민이 보내준 환호로 대통령에 당선하였다. 이 일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사건일 것이다.

노무현에게 얼마동안 거리낌 없는 표현으로 구체적으로 공격당한 조선일보는 노무현이 봉하마을로 내려가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활한 칼날을 세웠다. 조선일보는 권력이 조종하는 끈에 매달려 춤추는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격정적인 노무현이 미처 숨기지 못한 아킬레스의 건을 향해 조선일보는 자신이 조종하는 끈에 매달린 검찰에게 총공격을 명령했다. 그러자 검찰은 군사작전처럼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조선일보의 입맛을 맞추었다.

이데올로기적 덧칠과 편견의 칼날로 노무현을 무자비하게 보복한 작태는 조선일보에게는 겨울에 눈이 오고 물통에 물을 담는 것만큼 자연스런 일이었다.

조선시대 견고한 훈구세력이 발칙하게 생각했던 천재 개혁가 조광조의 목을 원했듯, 반항아의 머리를 단두대에 처박아야 속 시원한 우리 시대 훈구세력이 노무현에게 벌인 추잡한 복수극을 우리는 방금 생생히 보았다.

조선일보의 제작‧각본‧연출에 따른 검찰이 주연한 실화극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천박했던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그릴파이처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훈장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어
이런 체제에서는
천재들에게 십자가를 걸어주지 않지.
아니, 천재들을 십자가에 매달지.“

노무현! 당신은 격정적인 바보처럼 살다간 비극적인 천재였습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이 남기고 간 위대한 유산인 호미로 당신이 미처 부수지 못한 조선일보의 성벽을 거세게 쪼아대는 일이야말로 당신의 명복을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운 노무현 님! 당신의 영전에 전태일 열사의 유언인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를 되뇌어 봅니다.

   
 
   
 

 

송필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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