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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이 중국 감옥에 있을 때 쓴 시[기획연재] 제3장_감옥전시관(4)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06.09 14:16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4

   
 
  ▲ 감옥벽에 쓴 낙서(?)  
 
『여기는 그 당시 감옥의 모습을 있던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갇혔던 사람들이 벽면에 굉장히 많은 문구를 남겼다. 저것은 호찌민이 중국 감옥에 있을 때 쓴 시이다.

“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으나, 정신은 결코 감옥에 구속되지 않네.(身體在獄中 精神在獄外)”, “조국을 위해 바친 피는 금보다 귀하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여기는 감옥안 낙서들까지 재현한 것이다.』

1941년 여름 호찌민은 중국 충칭(重慶)으로 장제스(蔣介石)를 만나러 갔다. 목적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장제스의 항일투쟁에 베트남이 무언가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호찌민이 신분증도 없이 가명(그는 일생 동안 수십 개의 가명을 썼다. 바로 이때 그가 죽는 날까지 사용한 호찌민을 처음으로 썼다)으로 중국에 들어 가다가 국민당군에 체포되었다. 장제스의 국민당은 일본과 전쟁을 치르면서도 마오의 공산당과도 싸우고 있었다.

국민당은 은밀하게 공산주의자를 탄압하고 있었다. 호찌민을 간첩혐의로 체포했던 것이다. 호찌민은 감옥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는데 종종 사슬에 묶여서 반은 얼고 반은 굶주린 상태였다.

그는 젊어서부터 고된 훈련을 쌓았는데 그것이 감옥살이 14개월 동안의 가혹한 고통을 견디어내는 데 많은 힘이 되었던 것이다.

감옥에서도 그는 밖으로 가끔 편지를 내보내었다. 이것들은 신문 여백에 쌀뜨물로 글을 쓴 것이었다(요딩크를 바르면 쌀뜨물로 쓴 글자가 갈색으로 나타난다).

‘옥중일기’로 알려지는 시 134편을 썼다. 사실 일기라기보다도 감상문이다. 어떤 것은 서술적으로 썼고 어떤 것은 추상적으로 썼다. 시는 베트남어가 아닌 한문으로 썼다.

아마 중국인 간수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한문 지식을 닦고 예술을 익히기 위한 훈련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출간된 책표지의 시가 바로 이 시다.

“이 몸은 비록
  옥중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결코
  감옥에 구속되지 않네
  큰일을 하려면
  정신을 더욱 크게 가져야지 
  身體在獄中, 精神在獄外.
  欲成大事業, 精神更要大”
  김남주 번역시집 ‘은박지에 새긴 사랑’에서

캄캄한 감옥에서도 호찌민은 언제나 낙관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호찌민은 시인으로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명인의 칭호를 받았다.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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