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치과이야기] 치과의사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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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치과이야기] 치과의사의 두 얼굴
  • 강신익
  • 승인 2004.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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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대한 치료 행위는 금전과 교환되는 서비스 상품이다. 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은 스스로 지불해야만 한다.
그래서 병원은 하나의 시장이다. 자본주의라 부르는 이러한 시스템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의 병원들도 모두 이와 같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먼저 병원을 부르는 이름만 살펴보더라도 최초의 병원이 지금과 같은 금전과 용역의 교환관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병원을 이르는 hospital이라는 말이 ‘호의’를 베푸는 곳이라는 뜻에서 출발한 것이란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많은 병원들을 hotel, dispensary, infirmary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말들은 최초의 병원이 여행자나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보살펴주는 곳이었던 역사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혜적 전통은 모든 것을 금전적 교환가치로만 평가하는 자본주의적 논리와 가치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었을까? 서양의 치과의사들은 이 상반된 가치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첫 번째 그림은 19세기 말 미국의 한 도시에서 성업 중이던 치과의 건물 전경이다. 통증 없이 이를 뽑아주며 잘 들어맞는 틀니를 만든다는 문구 옆에는 야간 진료에 대한 안내와, 무료로 견적을 내 주며 치료비도 저렴하다는 문구가 나란히 붙어 있다. 1920년대에 이르면 이와 같은 치과들이 여러 도시에 체인점을 두고 성업했다 한다.

 

 

두 번째 그림은 같은 시기 어떤 농촌의 치과 풍경인데, 여기서는 이를 뽑고 해 넣는 일 말고도 닭, 돼지, 소, 말, 노새와 같은 가축과 짐승의 가죽, 쇠기름, 밀랍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 두 건물 속에서 일하는 치과의사는 영락없이 물건과 서비스의 거래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인의 모습일 것 같다.

 

 

 

 그러나 세 번째 그림에서 우리는 당시 치과의사들의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 뉴욕주 로체스터 치과의사회는 1901년 빈곤층 어린이를 위한 무료진료소를 개설해 운영에 들어간다. 그러나 재정형편도 좋지 않았고, 회원들이 돌아가며 진료에 참가하기 때문에 진료의 연속성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지역의 재력가 죠지 이스트만은 이 무료진료소를 공립학교에 이전 설치하는데 필요한 재정지원을 약속하면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모든 진료는 상설 진료소에서 실시하고 상임 치과의사를 둔다. 둘째, 시 당국은 학교의 예방구강보건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한다. 셋째, 지역의 시민 10명에게 향후 5년간 매년 1,000달러의 기부금을 거둔다. 이 계획은 1915년 결실을 맺어 이스트만이 기부한 40만 달러로 건물을 확보해 이스트만 치과 진료소 Eastman Dental Dispensary를 설립한다.

세 번째 그림은 그 진료소의 모습이다. 이 진료소는 곧 치과의사의 교육을 담당하는 인턴수련병원이 되어 봉사와 교육의 기능을 함께 떠맡게 된다. 이후 뉴욕(Guggenheim Clinic)과 보스톤(Forsythe Clinic)에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치과진료소를 세웠고 지금까지도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상인으로 치과의사는 어떻게든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벌고자 할 것이다.(그림1, 그림2) 그리고 그런 모습을 무조건 비난할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 자신들이 확보한 지식과 부를 지역사회에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치과의사라는 직업의 지위와 명예는 지켜낼 수 없을 것이다.

강신익(인제대 의사학 및 의료윤리학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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