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의료민영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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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료민영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 금민
  • 승인 2009.06.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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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행동하는 의사회에서 발행하는 웹진 '행동하는 의사들'(http://www.khpa.org/board/zboard.php?id=news_letter)에 실린 글의 전문이다.

의료서비스의 민영화(Privatization)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심지어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을 90%까지 제고해야 하며 난치병의 경우는 100%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영리병원은 절대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자신들의 주장과 민주주의의 문제의 연관에 대하여 명확한 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의 문제는 복지의 문제일 뿐이고, 민주주의의 문제는 아니다. 은연중에 많은 사람들은 복지와 민주주의는 그야 당연히 깊은 관계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복지가 민주주의의 전제조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에 반하여, 이 글의 주장은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야말로 민주주의, 곧 정치적 국민주권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사회연대의 복지관과 보편적 복지의 이념

복지와 민주주의의 직접적 연관성을 부인하는 생각 속에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수립한 사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복지의 가치가 축소되도록 만들었던 낡은 관념, 즉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관, 영국의 구빈법 이래로의 전통적인 복지관이 은폐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의 원리이며, 곧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근거한 평등한 참정권의 문제이지만, 이에 반하여 복지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원리이며, 따라서 보편적인 자격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회구성원의 '특수한 처지'와 관련된 문제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복지가 각각 '평등의 원리'와 '연대의 원리', '보편적 자격'의 문제와 '특수한 처지'의 문제로서 상호 구별되며, 비록 상호 보완적이지만 그 원리에 있어서 결코 동일하지 않은 영역으로 파악되는 한에서,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된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수급자의 '특수한 처지'가 아니라 민주주의, 곧 국민주권의 원리처럼 오직 국민 또는 사회구성원이라는 '보편적인 자격'에 근거한 복지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로서 복지를 파악하는 관점조차 사회적 연대의 수준과 대상을 가장 높고 넓게 잡을 때조차 보편적 복지의 이념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기초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보편적 복지론과 사회연대의 복지론, 양자는 원리상 차별적이다. 이와 같은 차별성은 복지 재원을 얼마만큼 마련할 것인가, 또는 어떤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 그 이전에 존재하는 차별성일 것이다.
 
우리가 복지를 빈곤이나 질병, 실업 등과 같은 개별적 사회구성원의 '특수한 처지'에 대한 사회적 연대의 문제로 이해할 경우, 이와 같은 ‘연대의 복지관’은 시장이 잘 기능하고 사회적 부의 생산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며 분배의 공정성이 보장된다면 공공적 복지 영역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다지 상충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국민 모두의 '좋은 삶'은 일차적으로 시장의 문제가 될 것이며, 복지제도는 원리상 잔여화(residualized) 된다. 복지가 필수불가결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 제도가 잔여화 되어도 되는 것인가의 문제를 통하여 사회 연대의 복지관과 보편적 복지 이념의 원리적인 차별성이 잘 드러난다. 사회 연대의 복지 이념은 시혜성과 선별성을 벗어날 수 없으며, 복지나 공공서비스를 시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권리로서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든다.

반면에, 보편적 복지관에 입각할 경우, 복지는 국민주권의 전제조건이 되며 무조건적으로 충족시켜야 하는 국가정당성의 조건이 된다. 곧 보편적 복지관은 복지를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으로 파악한다.
 
보편적 복지관에 따르자면, 비록 선거 절차와 같은 민주주의의 형식적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의 성격과 질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공공 서비스는 상업화(commercialization)되어 복지국가가 잔여화한 상태, 곧 복지가 시민으로서의 지위 때문에 주어지는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수혜 요건을 갖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혜가 된 상태를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기만이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축소되고 제한된 정부와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의 맞쌍과 등치되며, 선거 실시 여부로 축소, 환원될 뿐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민주주의를 정치 영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포괄적인 시민권의 문제, 곧 사회권을 경유한 국민 자격의 포괄적인 수준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달리 말하자면, 보편적 복지야말로 더 많은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정치 영역으로만 한정하는 낡은 민주주의 관념을 넘어선 대안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 시대적 요청
 
물론 우리가 복지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각각의 복지관이 어떤 원리에 근거했는가라는 문제 수준으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왜, 어떤 이유로 해서, 그와 같은 복지 이념이 필요하며, 그것은 과연 시대적 요청에 부합되는가를 아울러 따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지난 12년간 한국 사회가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 없는 성장', 사회양극화의 시대를 거쳐 왔으며, 작년 이래로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를 경유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시대, 시장으로부터의 낙오자가 쌓여 가는 시대에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이념은 이 시대에 적합한 요청, 시대적 요청이 된다.

물론 사회 연대의 복지관에 입각하더라도, 연대의 대상이 넓어지고 필요한 연대성의 수준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경제위기의 시대를 통하여 사회 연대의 복지관이 그 요구에 있어서 보편적 복지관으로 발전 전개될 객관적 계기가 주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연대의 복지 이념이 강한 연대성의 주장으로만 머물며 복지 원리와 민주주의 원리의 상동성(相同性)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사회연대적 복지론과 시장주의적 복지론의 싸움은 얼마만큼의 복지가 필요한가에 대한 양의 문제를 둘러싼 싸움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의료민영화는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
 
다시 이 글의 문제 제기가 시작된 곳, 의료민영화로 돌아가서 논의를 전개해 보자. 의료민영화(Privatization)는 공공서비스인 의료를 재정체계와 서비스 공급체계의 양면에서 영리화(commercialization)하는 것이다. 이때 복지 제도의 민영화 또는 사영화는 소유관계의 측면만이 아니라 민간위탁(contracting out)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아울러 의료의 경우 민영화 보다 재정체계와 공급체계의 영리화가 한국에서의 논란의 핵심을 더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명박 정부는 후보 시에 공약을 통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완화 또는 폐지’를 통해 의료서비스의 재정체계를 민간의료보험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했으나 국민 여론이 좋지 않아 포기했으며, 2008년 11월의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질병정보를 금융위원회가 열람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역시 비판적 여론으로 포기한 바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6월 한나라당 단독국회를 통해 해당 조항이 포함된 채 처리될 공산도 있다.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영리화 정책은 이 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 의료기관 경영지원사업(MSO)을 활성화하는 법안 등이 그것이다. 주식회사 형태의 영리병원의 본격적 허용도 중단된 것이 아니라 11월까지 준비 중인 상태이다.
 
의료공급체계의 영리화의 문제점은 지금까지의 비영리 법인형태가 영리 법인으로 바뀔 경우, 의료로 번 돈이 의료서비스 질의 향상에 재투자되는 대신에 배당으로 분배되어 흘러 나간다는 것, 즉 다른 돈벌이 수단과 다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재정체계의 경우에는 이 보다 좀 더 심각하고 직접적인 문제점을 낳는다. 즉 의료서비스가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이 아니라 보험계약자라는 시장적 지위에 의해서 공여되게 된다는 문제점이다. 영리화는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의 이념과 정반대의 사회를 지향한다. 의료 서비스가 더 이상 시민권과 연관된 공공재가 아니라 시장재, 더욱이 아무런 공공적 제약이 없는 시장재로 바뀌는 것이다.
 
사태가 이와 같이 전개되면, 공공 서비스와 적극적 시민권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게 되며, 시민성은 송두리채 상업화된다. 시민 자격은 시장행위자 자격으로 축소되고 양자가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오직 선거와 같은 절차의 문제로 환원된다. 이 지점에서 절박하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은 바로 다음이다.

이와 같은 상태가 된다면 과연 1987년의 성과물인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권마저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까? 사회권의 보장이 시장의 문제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도 기타 자유권은 여전히 지켜질 수 있다는 관념이 얼마나 순진한가는 이명박 정부가 취하고 있는 '법과 질서' 정책이 얼마만큼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분명하지 않은가! 경제위기의 시대에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 이념의 부정은 단순히 사회적 권리에 대한 부정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저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사회적 권리의 부정은 정치적 자유권의 부정을 포함하게 되고, 자유권에 대한 포괄적인 침해를 통해서만 '법과 질서'가 유지된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적 권리의 부정, 곧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위기와 해법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는 이중적이다. 경제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가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도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복지제도의 축소, 잔여화, 영리화 현상이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자유권의 침해 현상도 나타난다. 해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와 같은 이중적 위기에서 사태 전체를 뒤집을 아르키메데스의 점은 무엇일까?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 이념이 그것일 수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이다. 그것은 사회권을 주권의 일환으로 파악함으로써 가장 넓은 의미의 국민주권 개념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자유권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시민권의 침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는 경제의 전환, 곧 새로운 경제성장 방식의 수립에 대한 요구와 일맥상통 한다. 복지에 기초한 성장, 국민 모두의 '좋은 삶'을 목표로 하는 성장은 지금까지의 신자유주의 경제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경제운영 방식을 요구한다.
 
의료민영화, 그것은 단순히 복지축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 현상이다. 대안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성의 강화가 아니다. 대안은 사회적 재편을 통해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일이다. 병든 자에 대한 휴머니즘, 따뜻한 연대를 넘어서서 복지를 민주주의 원리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한다.

어떠한 사회구성원도 오직 그 역시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자격에만 근거하여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회만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민(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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