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바람직한 약가제도의 정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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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바람직한 약가제도의 정착을 위하여
  • 편집국
  • 승인 200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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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 참조가격제 둘러싼 논란

 

미국의 오만: 참조가격제는 안된다?

지난 8일 열린 2002년 제3차 한미 통상현안 점검회의에서 미국이 우리 정부에 의약품에 대한 참조가격제 도입의 전면백지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서(3면 기사 참조), 지난달 11일 이태복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 6개월만에 경질되면서 불거진 “의약품의 참조가격제와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로비의혹”에 대한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태복 장관은 건강보험안정대책을 추진하면서 이의 일환으로 의약품 최저실거래가제와 참조가격제 등 약가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왔는데,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끊임없는 압력과 로비로 인해 그만 전격 경질되었다는 것.

물론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 심완섭)는 지난달 24일 이태복 전 장관 퇴진 로비설과 관련하여 “회원사들을 대표해 다양한 의견을 (한국)정부에 제출한 바 있으나, 다국적 제약사들을 대신해 미국 등 외국정부가 한국 정부에 서신(!)을 통해 장관경질을 위한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을 비롯한 모든 정부는 국가간 협조와 이견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통상관련 서신을 주고받고 있으며, WTO로 상징되는 지구촌 국가 경제시대에 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국제관계”라고 밝혀, 직접적인 서신을 통한 장관교체 요구를 제외한 로비설 전체에 대한 부정은 하고 있지 않다.

복지부 장관 경질의 배후

이러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압력과 로비에 대한 실체는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의 국회 대정부 질문과 정책질의 과정을 통해 그 일단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홍신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과 다국적제약사는 참조가격제 시행을 유보시키기 위해 지난 1년간 이태복, 김원길 전장관 등을 방문하거나 공문 등을 통해 무려 21차례나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올 3월 11일에는 “토머스 하버드 주한미국대사가 이 전 장관을 방문하여 약가산정 기준 등 보험급여기준 논의를 위해 국내외 제약기업이 참여하는 워킹그룹의 구성”을 요구해, 지난 5월 복지부내 구성된 약가실무회의에 주한 미대사관과 다국적 제약사 사장들이 참석하여 최근까지 3차례의 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올 6월 11일에는 존 헌트먼 미국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이 전 장관을 직접 방문하여 “기준 약가를 정할 때 관련 업체들의 참여”를 요구했으나 이 전 장관이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압력과 로비는 실제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난달 26일 이태복 전 장관의 출석 없이 진행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진상조사에서 김원길 전 장관의 답변인 “(참조가격제 등은) 통상의 문제이지, 압력의 문제가 아니다”에서도 확인되듯이 여기에는 해석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약가 인하의 쟁점, ‘참조가격제’

그러면 왜 이태복 전 장관은 전임 김원길 장관시절 백지화된 참조가격제의 강력 시행을 추진하였고, 이에 대해 미국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장관 퇴진 압력 의혹을 받으면서까지 이 제도의 시행을 막으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이태복 전 장관은 지난달 11일 이임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떠나며’라는 성명을 통해 자신이 추진한 참조가격제 도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즉,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건강보험재정 대책과 관련 “국민의 공정한 고통분담을 위해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고, 의료계의 보험수가를 인하한 만큼 이제 마지막 차례는 (약가 인하를 통한) 국내외 제약사의 고통분담이었다”고 하여, ‘약가 거품을 제거하는 것’이 보험재정안정의 최우선 과제이므로 의약품 최저실거래가제와 참조가격제 등을 장관 재임시 강력하게 추진하여 왔다는 것이다.

사실 참조가격제는 같은 성분의 약이나 같은 효능을 가지고 있는 약들을 동일군으로 분류하여 처방시 동일한 약가를 보험급여하는 대신 이를 초과하는 가격의 약(고가약)을 선택한 소비자들에게는 초과분만큼 직접 부담하게 하는 것을 통해 저가의 약처방을 유도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고가약(브랜드약)을 생산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제도로 작용할 공산이 크고, 제네릭 제품(카피약)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대부분 국내 제약회사)들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 제도의 시행을 강력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과 스웨덴 등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고, 미국에서조차 이 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참조가격제는 만병통치약인가?

따라서 이 전 장관의 경질과 참조가격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논란에서 미국과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자신의 이익만을 지켜내기 위해 남의 주권까지 왈가왈부하는 월권 행위들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강력한 반발까지 불러일으키면서까지 적극 추진해온 참조가격제가 “과연 약가인하를 위한, 더 나아가서는 바람직한 약가제도의 정착을 위한 만병통치약인갚하는 점이다. 사실 이미 참조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본다면 이 제도를 통해 일시적(6개월-1년)으로나마 약가를 떨어뜨리는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어 있고,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브랜드약과 제네랄약의 가격 차이가 큰 나라에서는 참조가격제가 더욱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참조가격제가 근본적으로 소비자(환자)들에 대한 패널티라는 점이다. 이는 그러지 않아도 의료보장제도가 취약하여 의료소비에 대한 본인부담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환자들의 본인부담을 더욱 높이는 것으로 재정안정을 위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과연 참조가격제를 통해 의약분업 시행이후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의사들의 고가약처방(이는 국내 카피약들에 대한 의사들의 불신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참조가격제의 성공조건

왜냐하면 참조가격제를 통한 저가약처방 유도는 소비자의 선택여부에 달려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의사들의 고가약 처방이 줄지 않고 환자들의 본인부담만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라는 행위의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환자들의 약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정보제공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환자 1인당 평균진료시간이 채 10분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해당 질병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도 환자들에게 거의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참조가격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과연 소신을 갖고 저가약을 선택할 수 있는 환자들이 얼마나 될까? 실제로 이미 참조가격제를 실시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에는 환자들에 대한 의사들의 정보제공의 의무를 다양한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했을시 100% 의사들의 책임으로 법적의무를 지우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의 환자 1인당 평균진료시간은 보통 20-30분까지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참조가격제가 성공하려면 현재의 의료문화부터 바꾸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즉,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의 권리를 인정하여 이들에 대한 의사들의 관련 정보제공의 의무가 반드시 부과되어야만 한다. 또한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대체조제와 성분명 처방에 대해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허심탄회한 논의를 통한 제도의 뒷받침도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의료문화에 대한 개선과 제도의 뒷받침이 없이 참조가격제를 실시한다면 이미 의약분업의 실시에서 보았듯 제도의 취지와는 상관없이 오히여 고가약의 처방으로 환자들의 본인부담금만 늘어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인식의 전환

지금까지 우리는 이태복 장관의 경질과 참조가격제를 둘러싼 논란들을 살펴보면서 하나의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조건들을 간략하게나마 분석해 보았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참조가격제가 바람직한 약가제도의 정착을 위한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살펴보았다. 사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제도에 대한 실시여부가 아니라 관련당사자간의 충분한 대화와 논의 속에서 이들 제도를 성공시킬 수 있는 제반 조건들에 대한 검토와 합의일 것이다.

그러면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참조가격제와 이를 포함한 바람직한 약가정책을 위해서 필요한 우리 의사들의 인식전환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몇 가지만 지적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우선 의약분업이후 늘어난 의사들의 고가약 처방이 궁극적으로 의사들의 행위료인 수가인하를 강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보험재정이라는 한정된 재원을 나누어가져야 하는 의사와 약사, 그리고 제약회사 등의 지분에서 제약회사들의 몫이 늘어나는 만큼 상대적으로 의사들의 행위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제는 의사들도 치료에 있어 비용효과적인 측면을 고려해야만 할 때가 온 것을 또한 인정해야만 하며, 환자들에 대한 정보제공 의무의 측면에서 처방전 2매 발행도 전향적인 검토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사실 의료의 영역에서 의사들에 의한 ‘정보의 독점과 비대칭성’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의사들의 정보의 독점을 통한 진료권의 보장은 사이비 의료인들로부터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여야만 한다. 의사들의 진료권, 그것은 천부적인 권리가 아니라 국민들의 건강권에 종속되는 행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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