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는 하나’임을 재확인한 통일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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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우리는 하나’임을 재확인한 통일마당
  • 편집국
  • 승인 200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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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8.15 민종통일대회 참관기

 

북녘 동포를 맞는 설레는 마음

해방 이후 57년만에 처음으로 역사적인 8·15민족통일대회가 서울에서 14일부터 16일까지 개최되었다.

나를 비롯한 6명의 보건의료계 대표단은 14일 오후 혜화동에 있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사무실에 모여 이번에 북한에 전달할 ‘남북보건의료 협력을 위한 제안서’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북측 의료계 대표단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마침내 오후 5시. “드디어 북측 형제들을 만나게 되는구나”. 그러나 북한 대표단이 내려오지 않고 있다는 방송이 계속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번 사건은 남한측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대규모로 환영대회를 하기로 했는데, 정부가 대폭 축소시켰다다는 것이다. 북측 참가단은 “남측 대표단을 열렬히 환영했는데, 남측에서는 너무 썰렁하지 않느냐”는 섭섭함을 표시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자 7시반까지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주최측에서 6시30분경 북한 대표단 없는 반쪽짜리 환영공연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공연 보겠다고 찾아 온 것도 아닌데…”하는 불편한 심정으로 공연을 보고 있던 6시40분경 드디어 북측 대표단이 들어왔다. 북측 대표단은 주석단(핵심 대표들 10명 정도), 각 부문 대표(55명), 공연팀(40명 정도), 취재팀(10명 정도) 등 총 116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이 들어올 때 박수로 환영하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북측 대표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나누면서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 대화하기가 이렇게 어려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걸…

공연이 끝나고, 만찬이 이어졌다. 우리 보건의료팀은 북측 기자단과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고, 백세주와 함께 화기애애한 남북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분들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촬영기자들인 리흥진, 리근영씨와 북 민화협 홍보과장인 김상호씨였다. 이들은 특수한 위치여서 그랬겠지만 남한의 ‘여인천하’니, ‘용의 눈물’ 등을 다 알고 있었고 나보다 남한 탤런트를 더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군대 문제 이야기 하다가 이회창씨 아들 이야기가 나오니까 “거 키가 179cm인데 45kg은 조금 심한거 아니야요?” 하여서 우리도 놀랐다. 서로 자녀들 이야기도 하고, 북한의 이혼율이 몇 퍼센트인지, 자녀들이 있는지 등등. 대화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쉽게 가까워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식적인 만찬행사가 이어졌다.

강원룡 목사는 인사말에서 “서독이 동독을 포용한다는 이른바 ‘동방정책’을 편 지 22년만에 통일이 되었는데, 그 기간동안 갈등이 되는 사건이 무려 5만 7천 건이 있었지만, 그런 갈등을 넘어서 일관된 통일 정책을 펴 통일에 성공했다”고 말하면서 “최근 (아마도 서해교전을 의미하는 듯)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지만 이런 작은 일들을 넘어서서, 일관된 화해의 정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북측의 시인은 ‘단숨에 가자’라는 시를 읊었는데, 고은 시인을 연상케 하는 그는 선동적인 목소리로 “한 시간밖에 안되는 거리를 왜 우리가 못 왔던가, 직장 출퇴근 시간밖에 안되고, 학생이 수업 한시간 하는 동안밖에 안되는 그 짧은 거리를 왜 우리는 못왔던갚 하며 부르짖듯 시를 읊었다.

우리 힘으로 자주통일 이뤄야

8월 15일 행사는 아침 10시 30분이 조금 넘어서야 시작되었다.

남북 주석단에 이어, 북측의 대표단과 북측 공연팀이 입장하였고, 단일기가 남측 여성 3명과 북측 여성 3명에 의해 입장되었다. 대형 단일기가 입장할 때 또 다시 가슴이 뭉클하면서 ‘통일이 되면 저 기를 국기로 삼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도 남과 북에서 번갈아 가면서 보았고, 남과 북의 대표들이 번갈아 가며 인사말을 하였다. 일관된 목소리는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받아 화해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자”는 것과 “자주적인 입장에서 우리끼리 통일의 길로 매진하자”는 것이었다.

11시 반경 북측의 공연이 시작됐다.

양산도, 달빛아래서, 쌍채북춤, 사냥꾼춤, 물동이춤, 손북춤, 장고춤 등이 이어졌는데, 북한 여성들은 마치 조선시대 여성들을 보는 듯 가냘프면서도 매력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북측 공연팀이 모두 나와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합창했고, 남북, 남녀노소, 소속단체 할 것없이 모두 기립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합창하였다. 이들의 합창이 끝난 뒤 ‘조국통일’을 연호하며 장내는 온통 통일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연호를 하던 나도 어느덧 콧날이 시큰해졌다.

남측 공연이 진행될 때는 배경화면으로 6·15 정상회담 당시의 화면이 나오고, 이산가족들의 상봉장면들이 나왔다. 너무 늙어버린 아버지를 만난 아들,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우리 민족은 이렇게 분단의 아픔을 간직해야 했나? 왜 강대국들은 우리에게 한번 묻지도 않고,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나? 이들은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길래 남과 북으로 갈라져 평생을 한과 슬픔을 품고 살아야만 했던가?

지금이야말로 이제는 외세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힘으로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야만 저런 슬픔과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나 미국이, 또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설마 우리 민족을 위해서 통일의 길을 터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언제 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이제 자주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작은 장애물을 넘어서 화합과 대동단결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정부대로, 각 분야는 각 분야별로 접촉을 하면서 상호간의 의견차이를 좁혀나가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남북의 보건의료인들이 서로 만나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서홍관(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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