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꽃과 나무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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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꽃과 나무의 나라
  • 장현주
  • 승인 2002.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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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 천리포 수목원

 

방문한 날은 마침 장마비가 퍼붓고 있던 일요일이었다. 약속을 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날이 수목원 개원 기념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방문자도 안 받고 직원들도 쉰다는데 우리 때문에 일부러 나와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문을 닫는다던 오늘도 어느 초등학교의 식물반 아이들이 인솔 교사와 함께 안내자의 설명을 듣느라 한창이었다. 쏟아졌다 뜸해졌다 하는 빗줄기에도 아랑곳없이 우산을 쓴 채로 안내자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는 아이들... “이 풀은 금어초예요. 자 이 꽃 아래 부분을 이렇게 쥐었다 놨다하면 꽃이 뻐끔뻐끔 붕어 입처럼 움직이는 거 보이죠? 금어초의 어자는 물고기 어자 예요.” 아이들이 신기해한다.

사무실 앞에는 자그마한 논이 있고 벼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논 앞에는 아담한 연못이 있고 군데군데 수련이 떠있는데 급수를 위해 이전에 논이 있던 자리에 물을 대서 조성한 것이란다. 지금도 그 작은 논에다 직원들이 오리 농법으로 직접 무공해로 벼를 재배한다. 연못가에는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고 수목원의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곳곳에 좁은 오솔길이 미로처럼 숨어있다. 아기자기하다.

천리포 수목원의 폐쇄성

천리포 수목원은 천리포 해수욕장과 바로 인접해 있어 사람들로 붐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니 사실을 얘기하자면 민간인(?)의 수목원 방문은 상당히 까다롭다. 일단 방문일시가 제한되어있다. 평일은 입장이 안되고 토요일 오후, 일요일만 가능하다. 또 일반 관람객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학계나 관계 등의 식물전문가가 아닌 담에는 후원회원이 되는 수밖에 없다. 후원회원의 가족이나 회원이 동반하는 2인까지는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자격을 간신히 얻었다 하더라도 전체 수목원을 항상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리포 수목원의 전체 규모는 총 18만평으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지만 개방되는 것은 사무실을 중심으로 한 중심수목원 2만평이고 수목원 전체가 개방되는 것은 일년에 두 번 봄과 가을의 회원의 날 이틀 뿐이다. 세계수목학회로부터 12번째로 인정받은 ‘국제의 아름다운 수목원’ 중 하나지만 서울의 광릉수목원보다도, 대중적인 자연 휴양림들보다도 이름이 더 낯선 것은 이런 천리포 수목원의 폐쇄성 때문이다.

그럼 천리포 수목원이 이런 폐쇄성을 고집스레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수목원 문화라는 것이 없는 우리 나라에는 생소한 것이겠지만 일찍부터 대규모 수목원을 갖추고 있었던 서양사회에서 수목원의 후원회원 즉 멤버쉽을 갖는다는 것은 일종의 가장 격조 높은 상류층의 사교문화에 편입된다는 의미였다던데 천리포 수목원의 폐쇄성도 이런 귀족취향 때문인 걸까?

수목원의 전 소유자 민병갈씨의 일대기를 알기 전까지는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 민병갈

천리포 수목원을 이 땅에 일군 것은 민병갈이라는 한 개인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귀화한국인으로서 올해 4월8일 만 81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땅을 구입했다가 개인적 관심으로 수목원을 조성하게 된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주까지 암과 투병하면서도 수목원의 운영비를 직접 마련하기 위해 직장에 출근했을 정도로 그는 수목원과 나무들을 아꼈다.

수목원을 진작에 개방했더라면 아마도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이라는 이름 값 때문에라도 엄청난 입장수입을 거뒀을 테고, 병든 노구를 이끌고 출근투쟁(?)을 벌일 일도 없었으련만 그는 자신의 평생을 기울여 가꾼 풀과 나무들을 자기 몸보다 더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그는 생전에 수목원의 모기와 벌레조차도 잡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는 떠나고 그가 일군 수목원은 우리에게 남았다. 운영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한적 개방을 하게됐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민간인(?)들은 그 덕을 보게 된 셈이다.

우리 곁에 있는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은 현재 세계적으로 12개 수목원만이 지정되어있고 천리포 수목원이 12번째로 지정을 받았다. 반드시 규모가 커야만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 받는 것은 아니다. 수목원의 고유한 특색이 있어야 하고 보유한 식물의 종 다양성도 고려된다. 천리포 수목원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수목원도 많이 있지만 그 모두가 다 지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천리포 수목원은 목련나무에 관해서는 독보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종을 보유하고 있지요. 호랑가시나무 류도 꽤 많은데 돌아가신 민병갈 원장님께서 좋아하시던 나무들이었지요. 또 수목원도 작지만 특색이 있습니다.

일단 수목원내에 차가 다니는 도로가 없구요 , 건물들도 전통 한옥들입니다. 한옥은 수목원 설립당시 서울에서 원형을 그대로 뜯어온 것들입니다. 나무에 매다는 표찰도 세계적으로 가장 잘되어있는 수목원 중에 하납니다. 여기를 방문한 외국의 수목원 관계자들도 놀랄 정도니까요. 너무 잘되어있어서 훔쳐가기도 좋겠다나요? 아마도 이런 점들 때문에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국에는 자그마치 6억평이 넘는 규모의 수목원도 있지만 거기는 지정을 받지 못했지요. 규모가 크다고 지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목원의 현 이사장 이규현씨의 말이다.

“아니 수목원의 나무도 훔쳐 가는 사람이 있나요?”
“식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 그런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오히려 전문가 그룹들을 인솔하고 난 후에 가끔 없어진 것을 발견하곤 하는데요. 전문가이기 때문에 귀한 것을 알아보는 거겠죠. 그렇다고 당신들이 훔쳐갔느냐고 뭐라 하기는 곤란해요. 알아서 행동해주길 바랄 뿐이죠. 허허”

어쩔 수 없다는 듯 사람 좋아 보이는 그는 웃어넘겼지만, 새로운 품종을 수입해서 수목원의 새 식구로 받아들이는 지난한 과정과 비용에 대해서 듣고 나니 없어진 품종을 발견할 때마다 얼마나 속이 쓰릴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수입 신청하는데 드는 번거로움과 비용이야 그러려니 한다지만 긴 검역절차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수입한 수종의 70%가 죽어나간다니 이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수목원의 가치

그저 나무와 풀을 좋아하는 일반인의 관심이야 당연히 나무들의 아름다운 열매와 꽃, 늠름한 자태와 오랜만에 들이키는 신선한 공기 같은 것들이겠으나 수목원의 본래목적은 사실 종들의 보존이다. 수목원에서는 모든 식물의 역사와 상태가 기록되고 증식이 이루어진다. 몇 년 전에도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종자보존의 중요성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지만 수목원의 다양한 수종들은 식물연구와 교육, 그리고 보유 식물을 이용한 응용연구의 훌륭한 자원이 되어준다.

일례로 얼마 전 임업시험연구장에서 천리포 수목원의 주목을 이용해 항암제의 추출에 성공한 적이 있었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수목원에서는 이러한 수목원의 기능에 대해 알리고 일반인들에게 자연보호, 생명존중사상 등을 심어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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