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편] 마이너리티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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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한편] 마이너리티 리포트
  • 강재선
  • 승인 2002.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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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고기집 딸 K. 생각해보면 예쁘장하고 친절했던 그녀. 그러나, 아이큐 검사에서, 다음 중 과일이 아닌 것은, 이라는 질문에 ‘모러라는 단어를 선택했던 그녀는, 그 작은 사회의 철저한 주변인이었다. 고만한 또래의 남자애들이 그렇듯이 그녀와의 사소한 스킨쉽에도 치를 떨며 학을 떼는 오바를 서슴지 않았는데 K랑 결혼하라는 말에 치고 박고 싸운 웃기는 놈들도 있었다. 그녀는 늘 희미하게 웃었던 것 같다.

그런 그녀와의 친분은 비밀스럽게 시작된다. 어느 날 그녀는 부모님이 고깃집을 한다며 나의 패거리들을 꼬신다. 부모님의 융숭한 접대 속에 ‘국수’를 먹고, 가게 2층의 집을 구경한다. 그 때. 내 인생의 역사적인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는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방문을 잠그고 우리들에게 포르노를 틀어 주었던 거다! 그때의 정신적 충력이란!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잠시 후 속이 메슥거리는, 멍한 상태로 귀가를 한다. 그 후 그녀는 자주 ‘국수’를 제안했고 우리는 한 두 번 정도 ‘국수’를 먹어야만 했다. 우리가 그녀를 멀리 하면서 그녀의 협박이 시작되었는데 공개적인 협박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당황한 어린이들답게 강력히 우리의 ‘전과’를 부인했고, 그녀는 사회구성원들의 야유 속에 다시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혼자가 되었다. 패거리들은 그 때의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는...K의 가냘픈 협박은 일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다…-_-; 아가사의 예지영상이 용도폐기된 것처럼.

영화의 무대는 2054년의 워싱턴. 돌연변이 예지자에 의존한 치안 시스템의 활약으로 범죄가 완벽하게 예방된다. 많은 분들이 보셨을 테니 줄거리는 그만. ‘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필립 K.딕의 단편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시중 절찬리 판매중)는 싸늘하고 명철하게 생존본능과 명분, 자유와 치안, 프리크라임의 패러독스를 제기한다.

그럼 영화는… 스필버그답게 행복한 가족을 위한 마무리를 준비하고, 환상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미래학자들의 리서치에 기초해 디자인됐다는 개인 통신장비, 운송수단 등의 소도구는 양적, 질적으로 너무 풍성한 나머지 천연덕스럽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대중이 원하는 자극을 충족시키는 스필버그의 용의주도함이 놀랍다. 감독의 엽기적인 조크는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초등학교 동창모임. 나는 K의 안부가 궁금했다. 재미있는 건, 모두가 K를 보고싶어 했다는 거다. 아마 K는 결혼해서 애도 낳고 남편이랑 ‘국수’도 자주 먹겠지. 언젠가 만나게 되면 ‘국수’나 한 그릇 때려야겠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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