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활동기
상태바
[여행] 베트남평화의료연대 활동기
  • 최세은
  • 승인 2009.08.06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글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2009년 39호 소식지에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편집자)

베트남 평화의료연대 진료단 일정 7박 8일(것도 빼곡히 채운!!). 그리고 일주일동안 감행한 베트남에서 캄보디아에 걸친 여행. 정신차릴 새도 없이 쌩~하고 지나가버린 그닥 길지 않은 15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내 자리로 돌아와 진료실 구석에 앉아 수백장의 사진들을 정리하며 보낸 15일은, 여느 때보다도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쌓아놓은 숙제들을 해결하듯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던 생각들을 주워 담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듣고 보았던 모든 일들을 단 하나라도 잊지 않고 바로 새기고 싶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평연 진료단의 일정은 여전히 제각기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사진찍기 좋아하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지라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하나만으로 들떠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좋은 사람들 만나서 좋은 얘기 나누고 마음 따뜻해져서 돌아오기를 설레이며 고대하고 있었음이다. 

하지만 막상 그 곳에서 마주친 것은 평소엔 생각하기조차 힘들었던 것들, 전쟁, 학살, 죽음과 폭력, 잔혹함과 그 앞에서 나약하기만 한 인간이었다. 힘들 때면 버릇처럼 얘기하는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조차도 무참해질 정도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에서의 일정이 끝난 후 여행을 겸해 건너간 캄보디아.

그 곳에서 내가 만난 건 수년 전부터 한번이라도 보고싶다고 안달냈던 “앙코르 사원”뿐만이 아니었다.
사원 중간 중간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리다가 “원딸러, 원딸러” 혹은, “예쁜 언니! 일딸러~”를 외치며 쫓아다니던 조그맣고 깡마른 맨발의 아이들, 아이들은 교과서와 교복 살 돈이 없어 공짜 학교조차도 다니지 못한다.

지뢰 때문에 한쪽 팔, 다리, 턱을 잃고 사원 앞에서 모금함을 놓고 앉아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이들, 어느 곳에서도 일을 할 수가 없어 박물관이나 사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기부금을 받아 살아간다고 했다.

32년간의 독재와 내전을 겪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공중보건이나 복지정책 같은 건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얘기다. 병원이 있으되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 한 스위스 의사가 지은 자야바르만 아동병원 앞에는 아침 6시부터 수백명이 줄을 서 있다. 공짜로 약을 주고 치료해 주는 단 한군데의 병원이기 때문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폭력과 전쟁과 죽음의 역사였다. 
70년대 이후 지속된 내전과 ‘킬링필드’로 알려진 크메르 루주군의 대규모 학살, 그 때 매설된 수천만 개의 대인지뢰는 캄보디아 인구수 보다도 많고, 베트남전 10년 동안 미국이 무차별로 투하한 폭탄의 양은 2차 대전 때 보다도 많다.

2009년 2월에서야 폴포트 정권이 국제전범재판의 심판대에 서게 됐지만, 그보다 먼저인 미군의 “묻혀진” 학살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98년 이후 공식적인 전쟁은 없지만 이곳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집 앞마당과 농사지을 땅에 묻혀있는 불발탄과 지뢰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그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생명을 잃어가는 땅. 같은 공간의 한편에 자리 잡은, 앙코르라는 거대한 관광자원을 삼키기 위한 대규모의 외국자본, 관광객들, 부패한 독재정권 사이에서 도움이 필요한 조그만 목숨들이 벌레처럼 사라져가고 있었다.

과거를 닫고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자고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유가 있다.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그 안에서 반복되는 잘못과 끊임없이 희생당하는 힘없는 사람들... 그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내 무기력증에 빠져있다가 그래도 희망을 찾아서 기억을 하나씩 돌려본다. 어쩔 수 없는 힘의 논리라든가 인간의 폭력성이라든가 그런 이야기로 결론을 낸다면 그건 너무 비극적이다. 
 

내가 기억에서 끄집어낸 건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루하루가 전쟁통 같아도 사람들은 제 할 일을 찾아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의사소통이 되고 감정의 교류가 되는 것이 사람이었고, 물건 하나 사주지 않아도 옆에 와서 함께 걸으며 눈 맞추고 한번 씨익 웃어주는 그 곳 아이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처음 보는 외국 사람에게 자기 얘기를 들려주고, 사진기를 들이대면 포즈까지 잡아가며 신나하는 사람들이 정겨웠다.  잘 가라고 손짓으로 하는 인사에서도 진심으로 “행복하세요”라고 빌어주는 사람들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러고는 가만히 평연 진료단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이 한사람 한사람이 하고자 하는, 하고 있는 일은 지금 당장 큰 변화를 일으킬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바꾸고 있을 게 분명하다. 희망을 씨앗에 빗대는 이유가 그런 거겠지. 그들이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던 베트남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 눈빛을 기억하면서 성장해 간다면 우리가 그 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미래도 바뀔 것이다. 사람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여행의 막바지에서 만난 2개월차 배낭여행객과 함께 자야바르만 아동병원에서 열리는 음악회 - 호사스럽게 음악회라니~ 하겠지만 병원의 설립자인 Dr. Beat가 공짜로 연주하고 원하는 만큼의 기부금을 받는 일종의 도네이션행사다. - 에 갔다가 얘기를 나누 던 중이었다. 열변을 토하며 의료 시스템이 어쩌니 독재정권에 부패가 어쩌니 하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느냐는 질문에 도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의료활동이니 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겠지만 글쟁이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겠냐고 묻는 그 사람에게, 좋은 글로 좋은 사람 만들면 되지, 그게 훨씬 가치있는 일 아니냐고 툭 뱉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드는 찝찝함을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하면 더 잘나고 커보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이 생각코 하는 일에 더 가치있고 덜 중요한 일이라는 게 있을리가 없다. 각자 다른 능력을 이용하고 자기 자리를 지켜내고 자기 역할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큰 일 하는’ 거다.

사람을 보고 절망했지만, 또다시 사람에게서 희망을 얻는다.
함께 부비대고 땀흘리고 열정을 쏟아가며 힘을 내던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마음 가득한 따뜻함을 전염병처럼 퍼뜨리고 다녔던 사람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서 아름다웠던 사람들,
비록 작아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힘이 될 희망을 주고 온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또다른 누군가에게 웃음이 되고 있을 좋은 사람들.
그 얼굴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담기면서 동시에 가슴이 찡하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