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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유지는 민족통일 입니다.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9.08.21 12:20

 

김대중 선생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시대 정치사에서 가장 우뚝한 거목이신 당신이 기어코 눈을 감으셨군요.

제가 선생님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때였습니다. 저는 정치 문회한인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서울로 치면 한강변에 해당하는 수성천변에서 선거유세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대학 다니던 큰 형이 당신의 유세에 간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 가족이 김대중 유세에 가 발각되면 엄청난 불이익을 받는다고 절대 유세장에 가지 말라고 엄한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형님 따라 몰래 유세장에 간 것입니다.

수성천변을 꽉 메운 인원이 3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대구 인구가 1백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경이적인 열기였습니다. 대구가 지금은 가장 지독한 정치적 낙후지역이지만, 그 때만해도 대구 시민에게 박정희 독재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부정선거를 치르고 당선한 박정희는 당신의 무게감에 짓눌린 나머지 선거를 없애고 영구집권하기 위해 1972년 10월 유신이라는 폭거를 단행했습니다. 해외에 있던 당신께서 귀국을 하지 못하고 망명객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 한 호텔에서 중앙정보부에 납치를 당하여 구사일생을 경험하고 서울로 압송되어 왔습니다. 박정희는 당신의 목숨까지 노렸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당신께선 박정희 독재에 맞선 민주투사로 세계적 이목을 받았습니다.

저는 1975년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해 4월 박정희는 인혁당이라는 사건을 조작하여 대구의 양심적 지식인 8명을 가혹하게 고문하여 터진 창자를 움켜쥐고 재판받게 했습니다. 대법원은 박정희의 뜻에 맞춰 사형선고를 내렸고 선고 22시간 만에 박정희는 이분들을 형장의 이슬로 보냈습니다. 이 사법 살인으로 박정희의 잔인함이 세계만방에 알려졌습니다.

수많은 젊은이와 양심적 지식인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박정희의 살인적 탄압에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건 행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행진의 중심에는 항상 당신이 계셨습니다. 당연히 박정희는 당신을 투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시 젊은이들처럼 유신의 이런 본질에 대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유신에 대항하는 행동을 하기에는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대신에 당신이 보이신 ‘행동하는 양심’을 제 의식의 사표(師表)로 깊이 간직하며 이제껏 살아왔습니다.

1979년 10월, 당신을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대하던 박정희는 자신이 만든 파멸의 길에서 퇴폐적이고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러자 민주화의 봄이 올 듯 했으나 포악한 전두환의 군홧발은 민주화를 요구한 광주항쟁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습니다.

민중의 정당한 항쟁을 소요와 사태로 몰아 그 배후조종 인물로 당신을 지목해 내란혐의를 뒤집어 씌워 사형수로 만들었습니다. 피맺힌 80년 5월의 광주를 어떻게 글로 나타낼 수 있으며 이 통탄함을 어찌 기억에서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절대 권력을 움켜쥔 박정희와 전두환은 당신을 갖은 방법을 동원해 탄압하고 매도했습니다. 납치·감금·투옥·가택연금 같은 폭력적인 방법은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께 저지른 악의적이고 인격모독적인 유언비어 날조는 호남차별과 남남분열을 가속시킨 역사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악이었습니다.

보이는 물질적 폭력은 치유가 가능하지만 당신께 ‘빨갱이’라는 덧칠을 한 정신적 세뇌 공작은 호남인을 모욕하고 민족의 통일 세력을 말살한 치유가 어려운 폭력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과 그 과정에서 보여준 교훈을 일일이 회고하기엔 너무 짧은 지면입니다. 87년 양김 단일화 실패에 따른 군부출신 집권은 당신께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97년 당신의 대통령 당선은 이 땅의 민주화를 성숙시키고 광주항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리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면하신 김대중 선생님이시여! 당신께선 제게 2가지 큰 의미를 남겨주신 분입니다.

첫째, 당신께선 우리 현대 정치 지도자 가운데 가장 지성적인 면모를 보여주셨습니다. 폭넓은 지식, 정연한 논리, 비범한 언변을 바탕으로 행동한 양심은 우리 시대 귀감이었습니다. 가볍고 척박한 우리 정치 마당에 당신과 같은 무게있는 정치가가 떠난 것이 몹시 안타깝습니다.

둘째, 민족통일에 대해 한결같은 정치적 자세는 당신께서 남기신 참으로 위대한 유산입니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반공지상주의를 표방하는 남한에서 민족의 화해와 상생의 초석을 다진 ‘6‧15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낸 것은 ‘김대중’ 당신이었기에 가능한 과업이었습니다.

당신이 막상 떠나시고 나니 그 빈공간이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통일에 일말의 성의도 보이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에 내린 큰 꾸짖음이 당신의 안타까운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당신이란 햇볕을 보며 정치적 의미를 깨달은 우리 세대는 당신의 유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가 통일을 이루도록 당신의 영전에 굳게 다짐합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송필경 논설위원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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