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세상보기] 남편의 친구는 내친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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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세상보기] 남편의 친구는 내친구가 아·니·다
  • 장현주
  • 승인 2002.07.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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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 지내는 남자 후배가 얼마 전 늦장가를 들었다. 장가들기 전 그 녀석은 동아리 모임, 선후배 동문모임, 같이 활동하는 건치 선생님들, 그리고 술자리에서 꽃피운 끈끈한 연대로 맺어진 우리 부부에게도 열심히 제 여자친구를 선뵈고 다니는 눈치였다. 기특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소리 소문도 없이 연애하다가 갑자기 청첩장을 보내는 만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어디 한 둘 이었던가.

오로지 예비신랑의 지인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런 저런 모임에 나와 웃는 낯으로 어울려주는 그녀 같은 사람을 우리는 인간성 좋은 사람이라고 부른다(물론 그녀는 얼굴도 예쁘다).

한가지 덧붙여 밝혀둘 것은 나도 상당히 인간성 좋은 여자 축에 든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도 그리고 결혼 후에도 남편의 중 고등학교 동창, 동아리 선후배들, 남편이 근무하던 보건소의 직원들, 공보의 친구들 등등 숱한 모임에 깍두기처럼 동석하며 웃는 낯으로 어울렸던 것이었다. 그 뿐이랴. 예고 없이 울리는 오밤중의 전화벨 소리에도 한 점 당황함 없이 의연하게 대처하며 주안상을 차려내곤 하였다.

자조적으로 들리는가?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남편 때문에 알게된 이런 저런 인연들로 인해, 맹세하건대 내 삶도 훨씬 풍요로워 졌다고 말할 수 있다. 어색한 몇 번의 만남이 지난 후에는 나 스스로 그런 자리를 즐기게도 되고 남편의 친구를 내 친구처럼 남편의 선후배를 내 선후배처럼 생각하게도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툭하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자전거 타러가자, 놀러가자, 뭐 먹으러 가자하며 우리를 불러내던 또 다른 후배부부가 어느 날인가도 전화를 걸어 여행을 가자고 바람을 넣었다. 마침 남편은 다른 볼일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지라 나 혼자 갈 것을 권유했는데, 같이 어울리기도 여러 번 했던 차라 굳이 남편이 안 간다고 거절할 이유는 없는 듯 보였다. 그래도 마음 한켠 왠지 모를 찜찜함을 남긴 채로 그럼 나만 가야되겠네 라고 얘기한 순간 수화기 너머로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그래요? 그럼 … 나중에 다시 전화할께요” 여행은 무산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남편의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없었던 일이 될 뻔했던 그 후배부부와의 여행은 결국 이루어졌다. 여행은 좋았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나의 잠언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추가되었다.
‘남편의 친구는 내 친구가 아니다’

흔히 여자들은 사회성과 조직성이 떨어진다고 얘기들한다. 특히 결혼과 동시에 가정으로 일터를 배정받은 전업주부들의 경우에는 결혼후 5년만 지나도 가족이외의 인간관계들은 멀어지가 십상이고 공동작업을 매개로 한 새로운 관계를 맺기도 어려워진다. 또 시댁 식구나 남편과 자식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이 익숙한 아줌마들, 특히 나같이 인간성 좋은(!) 아줌마들은 남편의 관계망을 자신의 그것으로 혼동한 나머지 나처럼 뒤늦게야 뒤통수가 아파옴을 느끼기도 하리라. 요즘서야 나는 깨닫는다. 우정도 사랑만큼이나 가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에 연애사가 빠질 수 없듯이 우정에도 둘만의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그후로 내가 남편으로 인해 얽어진 모든 인간관계를 보이코트 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여전히 나는 새로운 만남과 접대를 즐긴다. 그러나 이전처럼 남편의 관계망을 나의 그것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으며, 어느새 놓쳐버린 나의 인맥들을 챙기려고 조금 더 노력할 뿐이다. 최소한 부부싸움하고 집을 뛰쳐나왔을 때 아무 부끄러움 없이 숙식과 위로를 제공받을 수 있는 친구, 내가 경제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조건 없는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신용을 얻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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