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이야기] 4살 우진이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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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이야기] 4살 우진이의 결정
  • 박미라
  • 승인 2009.10.1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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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 아파요?”

치과 체어에 앉자마자 나의 어린이 환자가 묻는다. 그의 관심사는 아픔이다. 당장 아프지 않기를, 앞으로도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처음 나를 만난 날, 우진이는 겁에 질려있었다. 아마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까지는 4살에서 겪는 가장 큰 사고 과정이 아니었을까 상상한다.

이런 아이에게 나는 이별통보를 했다. 다음 화요일까지만 이 병원에서 일한다고 말이다. 그러니 오늘 치료를 마쳤으면 하고 나도, 그도 바란다.

쉬운 치료는 간단히 마쳤다. 벌써 4번째 만나는 것이니 서로 친해지기도 했고 반복되는 치료다보니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의 치료는 좀 어렵다. 가장 쉬운 치료부터 시작하며 친해지려했기 때문에 마지막 치료는 넘어야할 산의 정상과 같다. 신경분포가 많은 앞니치료를 하려 표면마취를 하고 마취주사를 주입해야 하는 치료.

마취주사가 앞니의 뿌리 쪽 점막을 관통하는 순간 이전과 다른 고통(눈에 보이는 마취주사기의 시각적 고통, 어금니보다 더 아픈 감각적 고통)을 호소하며 아이는 움찔 움직이며 울어버린다. 놀란 것이다.

놀라서 몸을 뒤척이는 아이를 달래며 체어를 일으킨다. ‘아. 내가 다음 화요일에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우진이는 다시 새로운 선생님과 친해져야하는데, 그 시간 또한 아이에게는 지금보다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는데…….’하는 생각이 스친다.

대화를 시작한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이미 썩어서 깨져나간 앞니는 더 까맣게 될 것이고, 더 깨질 것이고,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보일 것이고, 그러면 활짝 웃을 때 까만 앞니를 떠올리며 입을 가리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웃음이 줄어들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떠난 뒤 새로운 선생님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진이는 고민한다. 울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 아이 지금 4살로서는 어쩌면 너무나 힘든 결정을 강요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정은 해야 한다. 아이의 의사결정을 기다리고, 그에 필요한 정보와 시간을 제공한다. 아이는 넘치는 정보에 괴로워하고 있다.

결국 우진이는 결정을 내렸다. “선생님한테 치료 받을래요, 오늘” 머리, 마음 그리고 몸이 괴로워하다가 머리로 결정을 내리고 답을 했다. “그래, 우진이가 도와줘야 선생님이 치료 잘 할 수 있는 거 알지? 우리 다시 시작하자~”

치료를 시작하려는 찰나, 우진이의 몸이 반응하고 마음은 괴로워한다. 아이는 머리의 결정과 몸과 마음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음을 느끼고 에너지를 마구 소비하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늘 하기로 계획했던 치료는 절반만 진행하고 접었다. 우진이 어머니께 아이의 머릿속이 지금 매우 복잡할 것이라 말씀드렸고 어머니도 동감하셨다.(사실 이런 보호자를 만나는 일은 적다. 대부분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일이 너무 힘들다며 억지로라도 그날 진행해주기를 의사에게 강권한다.)

우진이는 진료실에서 나오며 나에게 인사를 하려했다. 그것도 배꼽인사로. 그런데, 아이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으며 무릎을 꿇어버렸다.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썼으면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을까?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거부할 수도 없고, 새로운 의사를 만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보다는 지금 알고 있는 사람이 편한데, 왜 자기 몸은 이러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 것으로 느껴졌다.

우진이는 나중에 이 경험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하다. 치과에서 치료보다 생각하느라 힘들었던 이 날을.

 

박미라(건치 서경지부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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