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강선생의 월드컵 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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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강선생의 월드컵 관전기
  • 강재선
  • 승인 2002.07.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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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거리에서

 

한달 간의 일상탈출
인터넷을 열심히 살피면서 상대팀의 전력과 전술을 분석한다. 또한 요주의 인물들과 잘생긴 선수들을 알아두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와 특정 선수의 팬클럽에도 들러봐야 하고, 유수한 세계 스포츠 잡지와 신문의 헤드라인도 봐 줘야 한다. 가끔 재방송도 봐준다. 바쁜 하루하루다.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하고 태극기도 둘러주고 거리로 나가며, 평상시에는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정보를 통해 맘에 드는 팀을 선정하고 경기를 지켜보다 보면 두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때론 재미없고 때론 실망하지만, 막판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아, 이 증상은 더욱 심해져 부쩍 많아진 동네꼬마들의 공놀이에 나도 공을 차고 싶다….

대~한 민 국!! 짝짝 짝 짝짝!!
이번 월드컵의 최대의 히트상품, 바로 붉은 악마의 응원 구호다. 다른 유수한 가수들의 공식 음반을 제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가장 간단하지만 강렬한 구호들. 훗날 역사책에서 구전가요라고 전해질 지도 모르겠다.
하이텔 통신모임에서 시작되었다는 민간 응원 단체 붉은 악마가 온 국민의 붉은 악마라는 극대화된 다양성을 바탕으로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새로운 응원문화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극찬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서구에서의 축구응원은 지역간 봉건 영주의 영토 싸움에서 비롯된 탓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파괴적 성향을 보이며, 월드컵은 늘 축제로 시작해서 경기를 거듭할수록 총성 없는 전쟁의 양상을 보였다. 19세기 대영제국 시절,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보급되었던 축구의 역사는 또다른 전쟁의 보고서이기도 하니, 비폭력적 거리응원이 신기할 수밖에.
우리 자신도 놀랐던 거리응원의 열기가 축구사랑만으로 설명될 수 없듯이, 서구의 스포츠 민족주의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선수들의 선전 덕에 뿌리깊은 패배주의가 한풀 꺾인 것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억눌려 있었던 자신감과 자기발견이 맞물린 상승작용이 폭발적인 자기표현의 장을 급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건 아닌지.
대화창구가 단절되었던 개인 밀실의 문화는 그렇게 거리로 흘러들었고 나도 거리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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