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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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월드
  • 강재선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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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이 영화의 번역된 한글 제목은 ‘판타스틱 소녀백서’이다. 정말 코웃음이 나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여학생들의 자지러지는 웃음과 괴성으로 가득찬 헐리우드 청춘영화인 척 하는 마케팅이란….
이 영화에 나오는 10대 소녀, 이니드와 레베카는 외모나 인기, 파티 따위로 고민하지 않으며 획일화된 또래문화에 가차없이 조소를 보낸다. 그들은 염증 나는 집단문화에 녹아 들거나 자격지심에 허우적대는 대신, 매사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들만의 유희를 궁리하는 당돌한 아웃사이더이다.

‘고스트 월드’는 95년 선댄스 영화제 대상을 받았던 미국의 테리 지고프 감독이 언더그라운드 만화 ‘고스트 월드’의 작가 대니얼 클라우즈와 함께 각색해 만든 작품으로, 제작에 할리우드의 괴짜 존 말코비치까지 합류하며 비주류의 감성을 맘껏 과시한 독특한 감성의 10대 영화.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딛고 선 땅은 끊임없이 불도저에 밀리고, 복구와 개작의 과정을 거친다”는 클라우즈는,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화되는 현대의 도시와 문화를 과거의 ‘유령(에 다름없는)세상’으로 표현했으며, 패스트푸드와 쇼핑몰, 대량 생산되는 유행 등 획일적인 문화에 잠식당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회부적응자’의 쓸쓸한 행보를 담았다.

졸업후, 독립을 원하는 레베카(스칼렛 요한슨)는 일자리를 구하지만 이니드(도라 버치)는 졸업을 인정받기 위해 계절학기 미술 보충수업을 듣게 된다. 길이 달라지자, 탄탄하던 두 친구의 연대전선에 이상이 생기고 이니드는 시모어(스티브 부세미)라는 아저씨한테 끊임없이 찝적대기 시작한다.

치킨 체인점 본부에서 19년째 대리로 일하고, 중년이 되도록 애인도 없는 시모어는 겉보기엔 낙오자에 가깝지만, 세상에 몇 장 없다는 원판 레코드를 수집하며 시류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유지하는 모습은 이니드와 닮은 꼴이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쉽게 변하는 ‘가짜’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짜배기’를 찾고 싶은 고집과 그 때문에 감수해야 할 소통 불능의 외로움을 갖는다는 점에서.

‘유령세상’의 주류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도 적응하지도 못하며 같은 곳을 맴도는 소녀들은 끊임없이 인종차별, 속물주의, 근엄주의, 물질주의를 비꼬지만 대책없는 세상의 출구를 찾지 못한 뒷모습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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