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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야기] 불의 바다에 핀 연꽃Lotus in a Sea of Fire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11.15 00:00

   
▲ 불의 바다에 핀 연꽃-틱꽝득 스님
1963년, 내가 비록 초등학교 2학년 때였지만 당시 기억에 남는 해외 토픽이 베트남 승려 분신과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이었다. 사실 승려 분신 사건에 대한 기억은 케네디 암살 사건처럼 분명하지 않았지만 나중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후에 베트남 승려 분신이 어렴풋이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베트남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인 셈이다.

1945년, 미국은 한반도를 분단한 후 남한에 이승만을 내세워 재미를 봤다. 미국은 1955년 베트남을 분단시킨 후 남베트남에 이승만과 여러모로 닮은 응오 딘 지엠(Ngo Dinh Diem)을 대통령으로 앉혔다. 민족주의자로 자처한 지엠은 철저한 친미 반공주의자이며 겉은 반프랑스 탈을 썼지만 프랑스 식민에 협력했던 인사들로 정부를 꾸렸다. 이승만처럼 교활한 지엠은 박정희와 전두환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하게 통치하였고 또한 그 부패는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베트남은 인구의 8할 이상이 불교를 믿는 불교국가이다. 그러나 지엠과 고위층들은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탓에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였다. 지엠은 인구의 1할 정도에 불과한 카톨릭교도들에게 군과 정부의 요직을 맡겼다. 이들은 곧 불교를 탄압하는데, 많은 사찰을 폐쇄하고 승려를 해산시키려 했다. 이것은 예부터 지식인으로 정권의 부패를 비판하던 불교 지도자들에 보복하려는 성격이 짙었다.

1963년 5월 8일 후에(Hue)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경축하는 불교도들의 시가행진이 당국에 의해 저지를 당하자 평화스런 행진이 반정부 시위로 변했다. 지엠은 군대를 투입하여 진압하려 했지만 질서를 회복하기는커녕 오히려 폭력을 유발시켜 시위대 중 몇 명이 정부군의 발포로 사망했다. 게다가 군의 발포에 항의하는 많은 승려와 활동가들을 체포하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비폭력 불교도 집회에서 군인이 살상한 것은 유엔 총회의 의제가 되었다. 베트남 문제가 유엔의 문제로 제기된 첫 케이스이다.

살인마저 저지르는 불교억압정책으로 불교세력은 미국의 괴뢰인 지엠정권과 사이가 더욱 벌어져 갔다. 사이공을 비롯한 각지에서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분노한 젊은 승려들은 무기를 들고 민족해방전선(베트콩)에 합류했다.

바로 이때 베트남 민족통일 전쟁의 의미를 전 세계 언론에 불을 지핀 사건이 바로 1963년 6월 11일 불교승려의 분신이었다. 원로 불교승려인 틱 쾅 득(Thich Quang Duc) 스님이 사이공거리에서 분신을 하자 불교도의 비폭력 반정부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거의 매일같이 사이공 시내 한복판에서 분신자살하는 승려의 모습이 보도되었고, 오랜 세월 불교 윤리가 몸에 밴 베트남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지엠 대통령의 친동생이자 비밀경찰 총수인 응오 딘 누의 부인 '마담 누'는 온갖 사치를 누리면서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까지 휘둘러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그런 '마담 누'가 승려들의 분신을 보고 "그래봐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바비큐들"이라는 독설을 외신기자들에게 퍼부은 것이다. 결정적인 악수였다. 이 망발은 보도를 타고 전 세계 언론을 경악시켰고, 이를 전해들은 분노한 시민들과 학생으로 구성된 데모대가 매일같이 사이공을 휩쓸었다.

보다못한 미국은 지엠 정권을 밀어주는 게 헛일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미국은 그것이 베트남에서 자신의 앞날의 이익에 역작용을 일으킬 것을 크게 우려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이 면밀하게 배후 조종한 쿠데타 소용돌이 속에 디엠과 누 형제는 11월1일 살해된다. 베트남전쟁 개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케네디도 11월 22일 겨우 1000일의 임기만 채운 채 암살되고 말았다.

   
▲ 숯 검댕이가 될 때까지 가부좌를 튼 좌세를 유지하고 있다.
틱 꽝 득 스님의 분신 자살만큼 강력하게 현대 불교의 사회적 정치적 특징을 드러내는 사건은 없다. 화염 속에서 죽어가며 좌선하고 있는 승려의 모습이 뉴스 통신사와 텔레비전이 보도하였고, 이어 36명의 다른 스님들과 1명의 재가 여성 신도가 자결함으로써, 지엠정권에 대한 그들의 고통과 저항의 메시지를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겼다. 그러나 이들 죽음의 불교적 의미를 대부분의 시청자와 논평가들이 놓치고 말았다.

승려가 정치적인 저항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을까? 이 스님들은 대중들의 감정을 대변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극단적인 일탈파들이었는가? 자기 몸을 바치는 것이 전통적인 수행의 하나였는가 아니면 정도를 벗어난 것인가?

폭압적인 지엠정권의 몰락을 재촉한 불교 운동의 젊은 지도자인 틱 낫 한(Thich Nhat Hanh), 현재 프랑스에서 국제 참여불교 운동의 지도자로 주목받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스님은 나중에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 공양은 서구 기독교적 도덕관념이 이해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언론들은 그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러나 그 본질에 있어서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항 행위도 아닙니다. 분신 전에 남긴 유서에서 그 스님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압제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대승불교에서 전통적으로 비구계를 받으려는 사람은 승가의 250계를 준수하겠다고 맹세하면서 작은 점 크기로 자신의 신체를 태운다. 이는 격렬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말한 맹세는 '그의 가슴과 마음의 모든 진지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더 큰 무게를 가질 것이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소신 공양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소신 공양은 대승불교도들에게 그들의 경전에서 가장 오래되고 성스러운 것 중의 하나인 「법화경(Lotus Sutra)」에 나오는 극적인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다. 23장에서 보살, 즉 깨달은 존재는 붓다에 대한 열렬한 희생으로 그의 손가락과 발가락, 팔을 태우고 그리고 끝내는 그의 신체 전부를 태운다. 그러므로 틱 꽝 득 스님과 다른 사람들의 희생은 대승불교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만이 온전히 헤아릴 수 있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의 자유와 평화를 되찾으려는 불교인들의 행동 동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불교인들이 정치적 목표와 종교적 목적을 하나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조건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공산주의자들과 연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불교계는 남이나 북, 또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주자는 데 있었다.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나오는 분신 장면
이러한 베트남 불교도들의 평화적인 메시지는 많은 서구인들을 감동시켰다. 중세시대 신학자 브루노 같은 사람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통닭구이를 만든 경험은 있어도, 자기들 역사에서 신념으로 스스로 몸을 불태우는 인물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의 살신성인의 정신은 우리에게도 계승되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탄생했던 것이다.

살신성인의 원조는 썽자오(僧肇 :384∼414)라는 중국 진(晉)나라의 승려이다. 그는 공사상(空思想)으로 대표되는 중국 선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중국 불교계의 최대 천재라고 불린다. 그는 왕의 노여움을 사(요즈음의 반정부 투쟁으로) 교수형을 당하는 데, 먼진 시 한수를 남기고 31세의 나이로 홀연히 사라진다. 그 시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대원무주(四大元無主)
오음본래공(五陰本來空)
장두임백인(將頭臨白刃)
유사참춘풍(猶似斬春風)

사대(地·水·火·風: 모든 물질을 조성하는 사대원소) 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음(자기 몸)은 본래 빈 것이다.
대가리를 흰 칼날에 갖다대어도
그것은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을 뿐이다.

몸 자체가 본래 빈(空) 것이므로 칼날이 내 모가지를 스쳐도 그것은 바람이 스치는 것과 같을 뿐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

경도대학 카지야마 유이찌 선생은 이렇게 평했다.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중관의 사상가들의 생애는 그들의 철학과 명상이 보여주고 있는 절대의 정숙과는 매우 다른 광란에 넘친 생애들이다. 그들의 변증은 그것이 전해주고 있는 공의 세계의 청명함에도 불구하고 불꽃과 같이 치열한 논리였던 것이다. 이 세계를 꿈과 환영(환상)으로 본 그들이 그들의 현실에서 본 것은 산림 속의 한적한 생활이 아니었으며, 추악한 인간세의 악몽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결코 중관사상의 본질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악몽의 아픔을 모르는 인간에게 어떻게 이 세계를 꿈과 환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민중의 추악한 악몽을 온 몸으로 불사른 베트남 스님 만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만세!
유사참춘풍! 관세음보살…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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