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요? 죽을 때까지 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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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요? 죽을 때까지 탈 것 같아요"
  • 김병주
  • 승인 2010.01.2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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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산악자전거 매니아 오민제 동부지회장

 

산악자전거를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두 번째 이사할 때였어요. 열쇠 집 사장을 불렀는데 산악자전거 복장으로 왔더라고요. 지리산을 가는 길이라고. ‘이런 것도 있구나’ 싶었죠.”

▲ 오민제 동부지회장
어릴 때부터 유난히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다는 오민제(41·여수모아치과) 회원. 드라이버 같은 걸 가지고 놀기 좋아했던 그가 치의학을 전공한 건 순전히 형의 권유 때문이었다.

“한때는 카레이서가 꿈이었죠. 중간에 몇 번 알아보기도 했죠. 돈이 많이 들어 포기하긴 했지만….”

그런 기질이 있던 그에게 산악자전거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았다. 동호회에 발을 디딘 건 2003년께였다.

“처음엔 아예 못 올라가고 차에 타고 가기도 했죠. 심지어 60살 되신 아주머니들도 거뜬히 산에 오르곤 하는데.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매일같이 1시간 30분씩 개인연습을 시작했다. 하루 25㎞ 정도의 거리였다. 부지런히 근력을 기르지 않으면 종종 경련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1972년 미국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산악자전거는, 나중에 유럽으로 전파돼 유럽에서는 경주가 꽤 활성화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께 가수 김세환씨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전거 역사가 100년이 넘는 일본과 비교해서 동호회가 출현한 것이 2000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최근 산악자전거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자전거란 게 묘한 것이었다. 특히 한번 산악자전거 매력에 빠지다 보니, 도통 다른 건 눈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여름철엔 새벽 5시에 문을 차고 나서기도 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사람이 무엇에 혹하면 이런 정도일까. 집안 방문을 밀치고서, 아연 눈앞 벌어진 광경에 그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전거포도 아니고 아예 안방 하나가 통째로 자전거만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엔 베란다 전체를 꾸몄죠. 2006년 현재 아파트로 이사하면서부터는 아내한테 아예 방 하나를 쓰겠다고 말했죠.”

이름 모를 용품에 각종 정비 공구까지…. 심지어 자전거 1대에 기천만원을 오르내린다니, 이쯤 되면 호사가나 누리는 안락이라고 한들 할 말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산악자전거에 푹 빠진 그이지만, 나름대로의 원칙 같은 것도 있단다. 곧 시합에 집착하지 않고 타는 것 그 자체를 즐긴다는 것. 생활에 절대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원칙이라면 원칙. 자전거가 좋다지만 그렇다고 삶에 가장 우선이 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 학생회 시절부터 줄곧 함께 해온 아내 역시 그 점은 인정한다고. 

대관령, 오대산, 가리왕산, 울진 검마산, 영남 알프스 자락, 제주도 작은 오름들, 서울 남한산성, 지리산 형제봉, 광양 백운산…. 어쩌면 산악자전거가 아니었으면 평생 생각지도 못해 봤을 곳이다. 그중 MTB에게 있어서는 성지와 같은 곳, 가리왕산 280㎞ 랠리는 잊지 못한 기억이다. 무박 2일, 컷 오프는 36시간이었다. 보통의 경기 역시 토요일 새벽 4시에 출발해 일요일 오후 5시까지 이뤄진다. 

“밟아도 밟아도 끝이 없는 길이었죠. 도중에 비가 오기도 하고. 결국 전원이 낙오하고 말았어요. 그래도 비 오는 날 자전거 탈 때가 가장 기분 좋죠. 숲의 고요함도 느낄 수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고….”

10여년의 광주생활을 마치고 고향 순천에 정착했지만, 막상 마음을 다스리느라 초반엔 고민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2007년엔 몇몇 분들과 함께 여수에 병원을 개원하다보니 시간적 여유는 훨씬 없어졌다. 병원 업무를 챙기다보면 새벽 2~3시를 넘기는 것도 일쑤다. 그럴수록 자전거는 벗이자 위로였다.

“직장생활로서 다 할 수 없는 것이 있어요. 7년째인데, 산악자전거를 하지 안았더라면 아마 더 비만해졌을 거예요. 자연과 교감하면서 여기저기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죠. 오히려 생활의 정신적 여유를 갖는다고 할까요?”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비유하는 오 지회장. 산악자전거를 통해 얻을 것은 또 무엇일까?

“어쩌면 인생과 똑같아요. 목이 마르고 호흡은 가프지만, 정상을 오를 땐 남모를 성취감 같은 게 있어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고. 완주도 하고 실패도 하고, 자연 앞에 인간은 하찮은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죠.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끊기지 않는 자전거 예찬에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제까지라고요?  아마 죽을 때까지 탈 것 같아요.”

# 이 글은 건치 광주전남지부(회장 김기현) 2009년 소식지에 게제된 글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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