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료 대폭 인상·국가재정 확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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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 대폭 인상·국가재정 확충 필요
  • 이상이
  • 승인 2010.01.2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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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4) 건강보험…보편주의 건강보험을 향한 노력, 회고와 전망

▲ 이상이 교수
필자는 요즘 ‘역동적 복지 국가’ 운동에 골몰해 있다. 그저 관심을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이것을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담론을 확산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런 필자에게 국민건강보험은 역동적 복지 국가 운동을 위한 큰 자산이다. 역동적 복지 국가 논리의 핵심에는 ‘보편주의’ 원칙이 놓여 있는데, 국민건강보험이 우리나라의 모든 복지 제도 중에서 이 원칙을 가장 잘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사회보험은 보편주의에 근거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은 전체 국민의 30% 이상, 고용보험은 전체 대상자의 50% 정도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는 보편주의 원칙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국민건강보험은 의료급여(보호) 대상자를 제외한 전체 국민을 제도적으로 포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외형상 보편주의를 잘 구현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은 아쉽게도 실질적 의미에서는 보편주의에 미달이다.

국가의 책임 강화 역행

첫째, 국민건강보험은 외형상 전 국민이 법정 가입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지역 가입자의 30% 정도가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고 있고, 일부 저소득 계층은 장기간 보험료를 내지 못하여 사각지대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의 절대 빈곤율이 약 8%이고, 상대 빈곤율이 16% 정도라는 사실에 비춰 볼 때, 이러한 사각지대는 구조적인 문제다. 즉 건강보험료를 납부할 능력이 없는 빈곤 계층에게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제도를 설계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급여(보호) 대상자를 최소한 절대 빈곤율 수준으로 크게 늘리고, 건강보험료 납부가 여의치 않은 상대 빈곤 가구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빌려 주는 제도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거꾸로 참여 정부 당시부터 의료급여 혜택을 받아 오던 일부 차상위 빈곤 계층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도로 떠넘기는 조치를 취했다. ‘모든 국민의 실질적 포괄’이라는 보편주의와 국가 책임의 강화에 역행해 거꾸로 가는 것이다.

둘째, 국민건강보험은 외형상의 보편주의에도 불구하고, 의료 서비스 이용 시에 발생하는 전체 의료비 중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는 의료비를 의미하는 ‘보장성’ 수준이 62%에 불과하여, 유럽 선진국에 비해서는 20~30% 포인트 정도 낮은 실정이다.

의료 이용 시점에서 환자 본인 부담이 여전히 높다는 것은 경제적 이유로 저소득 계층의 의료 이용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질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도 의료 이용의 불평등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려서 조속한 시일 내에 선진국 수준으로 ‘보장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정부의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공적 의료보장의 강화보다는 민간 의료보험의 활성화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 결과 작년에는 최근 10년 동안 최초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전년 대비 2% 포인트 정도 줄어들었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통한 실질적 보편주의 추구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대폭 인상’ 필요

필자는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이 실질적 보편주의를 구현하여 모범이 되도록 함으로써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도 실질적 보편주의로 개편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보육과 요양 등의 사회 서비스도 실질적 보편주의 방식으로 제도화되도록 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실질적 보편주의가 가능하려면, 정부가 기존의 신자유주의를 정책 노선을 버리고 건강보험료의 대폭적 인상에 나서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사회복지 목적세의 신설 등을 통해 건강보험과 국가재정의 규모를 선진국 수준으로 크게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렇게 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영리 법인 병원의 도입과 민간 의료보험의 활성화를 통해 의료 제도를 금융 자본의 투자처로 만드는 방식, 즉 의료 민영화를 간단없이 추진하고 있다.

의료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반대로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자본과 시장의 역할 강화를 보장해 주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의 굴곡 많은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현재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이 어느 지점에 놓여있고, 장차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실질적 보편주의 의료보장을 달성하느냐

VS 부분적 의료보장 시장주의 모델로 퇴보하느냐

1977년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에서 실시된 법정 의료보험은 전체 인구의 8.6%에게만 의료보장 혜택을 제공하였는데, 이로 인해 의료보험이 없는 대다수 국민들은 의료 이용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이는 의료보험 제도가 노동자와 시민 사회의 사회권 확보 투쟁에서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1980년대 들어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 정권 하에서 단계적 확충을 이어 오던 의료보험은 87년의 민주 항쟁을 거치면서 발전의 결정적 추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법정 의료보험 도입 12년 만인 1989년에 ‘전 국민 의료보험’이 달성되었다.

그러나 조합주의 의료보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동, 농민, 시민 사회의 통합 의료보험 쟁취 투쟁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문민정부 내내 사회적 쟁점을 형성하였다.

1997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가 통합 의료보험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였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짐으로써 노동 및 시민 사회의 사회권 쟁취 투쟁으로 간단없이 전개되었던 통합 의료보험을 위한 10년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던 바, 2000년 7월 출범한 국민건강보험이 그것이다.

우리는 1990년대 10년 동안은 통합 의료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획득을 위해 투쟁했었고, 2000년대 10년 동안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과 의료 민영화로부터의 국민건강보험 사수를 위해 투쟁해 왔다.

출범 이후 2007년까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꾸준히 높아졌는데, 이 기간에 40%후반에서 60%초반까지 약 15% 포인트에 달하는 보장성의 증가가 있었다.

이는 시민사회의 사회권 확보를 위한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였으나 복지의 제도적 확충에 온정적이었던 지난 정부 10년의 노력도 한 몫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참여 정부 들어, 국민건강보험을 둘러싸고 기이한 분열적 양상이 전개되었다. 한쪽은 보장성 강화를, 다른 한쪽은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참여 정부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참여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여 의료 산업화란 이름으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였는데,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외국인 영리 법인 병원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으며, 보험업법을 개정하여 생명 보험 회사도 ‘실손’ 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보험업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명박 정부의 본격적 신자유주의 노선 하에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은 중대 질병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고, 이외의 질환들에 대해서는 민간 의료보험의 역할을 활성화하는 방식을 추진하려 한다.

이로써 정부의 책임을 줄이고, ‘자본과 시장’의 역할을 키우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이미 미국에서 실패한 것이다.

노인 인구의 폭발적 증가, 고가 의료 기술의 발달, 국민 소득 증가 등에 따른 국민의료비의 급증은 우리나라 건강보험 의료 제도에서 심각한 위협이자 도전 과제다.

이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은 의료 민영화를 저지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서 의료 재정의 공공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의료 전달 체계를 효과적으로 정비하고, 전국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을 고루 높이며,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최대한 ‘포괄적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실질적 보편주의 의료보장을 달성하느냐, 아니면 부분적인 의료보장의 시장주의 모델로 퇴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결국, 국민의 손에 달려있고, 이것이 우리가 실질적 보편주의 국민건강보험의 쟁취를 위한 국민운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상이(제주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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