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연구개발도 ‘철학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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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연구개발도 ‘철학 필요하다’
  • 이상구
  • 승인 2010.02.0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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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10) 보건의료 연구개발

‘해마다 급증하는’ 보건의료 연구비

지난 10년간의 연구 개발 정책을 회고하기 위해서는 연구비의 변화를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지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 연구비 경우,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가의 문제에 항상 당면하게 된다.

어디까지를 보건의료와 관련된 연구비의 영역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기초 및 임상 의학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한의학, 치의학, 보건학 등 보건의료 기술과 관련된 연구로 확대하여 보아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의약품, 의료 기기를 포함하는 의료 공학, 식품과 화장품 등의 보건 산업 기술 분야를 포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있다.

때문에 연간 보건의료 연구비가 얼마라는 것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위원장이며, 해당 분야의 장관 및 전문가들이 참석해 국가 연구비의 운용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과학위원회에서는 ‘바이오산업 분야를 포함한 생명 과학 분야’를 광의의 의미의 보건의료 연구 개발비로 분류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연평균 12.8% 이상 확대를 거듭해 온 국가 연구비는 2010년에는 13조 6천억 원을 넘어 중요한 국가사업의 영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이어져 이명박 정부에서도 과학기술기본계획으로 ‘577 전략’을 세우고 2012년에는 정부 연구 개발 투자액을 16조 2,000억 원 수준까지 올려놓겠다고 밝히는 등 타 분야에 비해 가장 높은 예산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양적인 성장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체적인 연구비의 증가와 더불어 보건의료 부문의 연구비의 증가도 급속하게 늘어나 일반 회계 예산의 평균 증가율을 앞서고 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연구 개발이, 특히 보건의료 부문의 연구 개발이 그 규모만큼 성장했는 지는 의문이다.

다음의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지난 10년간의 보건의료 연구 개발의 실태를 점검하고, 다가올 10년의 과제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연구비 중 보건의료 ‘6.5% 수준’

첫째, 보건의료 연구 개발에서도 일반적인 연구 사업과 마찬가지로 연구비의 절대 액수가 아직 작고 전체 연구비 중 보건의료 부문의 비중이 너무 적다는 것이 항상 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다.

국민의 정부 시기의 IT 사업 육성에 이어 새로운 국가 성장 전략 산업의 일환으로 보건의료의 산업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참여 정부에서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황우석 사건을 야기할 정도로 떠들었지만, 실제 전체 연구비 중 보건의료 부문 연구비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다.

모범으로 삼는 미국의 보건의료 부문 연구비가 전체 국가 연구비 중 1위를 차지하는 국방 관련 연구비(56.9%)에 이어 2위(22.7%)를 차지하고 있으나 한국은 아직 6.5%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민 1인당 보건의료 연구 개발비 투자액을 보아도 미국이 129달러 수준,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51달러, 34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아직 10달러 이하의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영리법인 도입과 민간 보험을 도입해서라도 의료 산업화를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실제 타 분야에 비해 보건의료 부문의 연구 개발비 비중은 타 분야에 비하여 높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가장 먼저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을 해야 하겠지만, 굳이 보건의료가 가지는 산업적인 측면을 실제로 활성화하고 싶다면 영리 법인 도입이나 민간 의료보험 도입에 시간과 예산을 소비할 것이 아니라 의약품, 의료 기기, 의료 기술 개발 등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정책 의지를 분명히 하라고 권하고 싶다.

대학병원 ‘연구비 지원’ 절실

특히 미국의 경우 연구 개발 정책 초기에 대학병원의 우수한 인력을 연구에 참여시키기 위해 ‘overhead’라고 불리는 관리비를 연구비의 100% 이상 지원해 대학병원들이 환자 진료보다는 연구 개발에 치중하도록 하는 토대가 된 사례를 참조할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41개 의과대학의 거대한 부속병원들은 병상 증설과 첨단 의료 장비 구비 등 의료의 군비 경쟁(medical arms race)에 돌입하면서 수도권에서 이미 2만 병상 이상을 증설했고, 앞으로도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들 대학병원이 외래 진료는 의원과 경쟁하면서 26,581개 중 매년 1,800개의 의원들이 문을 닫고 있고, 입원 진료는 중소 병원들과 경쟁하면서 매년 60여 개의 병원들이 도산하고 있다.

이들 병원이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병원 본래의 기능이 아니라 일반 환자들에 대한 진료에 집중하면서 우리나라의 의료 전달 체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급격한 국민의료비의 증가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대학 부속 병원들을 본래의 기능인 연구 개발에 매진하도록 하는 것은 보건의료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되며 국민의료비를 안정화시키고 국민들에게 첨단 의료가 아니라 양질의 의료를 누리게 하는 중요한 보건의료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적으론 팽창 But 질적 성장은 ‘미흡’

둘째, 지난 10년간 양적인 팽창에만 치중해 연구비의 기획과 집행, 평가 등 질적인 부분의 성장이 미흡하여 아직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산업기술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도 연구 개발이 예산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매우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 R&D 투자액 1% 증가 시 경제 성장 지수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0.52%인 반면 우리나라는 0.37%에 불과했으며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9년 국가 경쟁력 지수에서 우리나라 연구 개발의 국제 경쟁력은 세계 27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 분야의 연구 개발도 이러한 경향은 마찬가지여서 민간 부문을 제외한 국가 연구비로만 연간 7,0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앞에서 언급한 보건의료 관련 연구비 중 광의의 보건의료 연구 개발 비용으로 집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R&D는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하는 연구자들만 있지, 연구비 자체를 연구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었다.

또한 보건의료 분야의 연구 개발 정책과 관련한 연구 논문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별로 주목 받지도 못한 영역이었다.

정부는 연구를 기획하고 연구를 관리하며 연구 결과를 평가하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도록 연구에 대한 태도와 자세부터 바꿔야 한다.

또한 연구의 관리에 더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이 분야를 전공하는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양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집행하는 연구비라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건의료기술진흥사업과, 질병관리본부, 국립암센터,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의 연구비를 통합 기획, 평가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만 노력을 기울이지 말고 좀 더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를 기획하고 연구비를 관리하는 분야에도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젊은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시급하다.

연구 결과를 활용하고, 제품화, 산업화, 실용화하는 것, 신기술로 평가 인정을 받아 의료보험 급여 항목으로 채택되는 것 등도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이다.

보건의료연구 분야에도 ‘양극화 현상’

셋째, 보건의료 기술과 관련된 연구에 치우쳐, 보건의료 정책과 관련한 연구의 비중이 너무 적다는 것이 문제이다.

의료중계연구사업, 유망의료기술개발사업, 신약개발지원사업, 혁신형 연구 중심병원 지원사업, 임상연구인프라조성사업, 지역임상시험센터구축사업, 천연물신약연구개발사업 등 보건의료기술진흥법에 따른 다양한 연구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 방향과 부합되지 않거나 연구를 위한 연구로 그치는 부분이 문제이다.

물론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중장기적인 전략에 기반한 기초 의학 연구비 증액도 필요하고 보건의료 연구의 핵심인 임상 관련 연구와 기초 연구와 임상 적용을 연결하는 중계 연구 등도 확대해야 하지만, 보건의료 정책 관련 연구가 너무 적다는 것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보건복지가족부의 각 과에서 집행하는 정책 연구비를 활용한 연구, 건강증진기금 사업의 일환으로 일부 건강 정책과 관련한 연구가 행해지고 있으며,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연구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평가정책연구소에서 건강보험과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으나, 보건의료나 건강 정책과 관련한 별도의 연구 기금도 없고 이들로부터 독립된 보건의료 정책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비 항목도 아직은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국민건강보험에만 연간 35조 원의 재원이 투입되며 국민의료비가 5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실에서, 지출되는 재정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서도 재정 규모의 최소 5% 수준의 연구비를 다양한 연구와 평가, 관리비로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특히 고령화와 더불어 급격한 의료비 증가가 예상되는 우리나라에서 보건의료와 건강 정책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없다는 것은 앞으로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또 하나 지적되어야 할 것은, 참여정부 시기 보건복지 관련 예산 증가율이 높아지자 기획예산처가 부처별 예산 ceiling 제도를 도입하면서 보건의료연구개발사업 예산을 건강증진기금에서 출연하도록 하고 이 액수만큼을 일반 회계에서 줄인 이후 아직도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식경제부나 교육과학기술부 등 다른 부서의 연구 관련 예산은 규모가 연간 4조 원이 넘어도 대부분 일반회계 예산인데 비해 보건복지가족부의 연구 개발비를 건강증진기금으로 하는 것은, 국가재정법 등 예산 회계 관련 법률들의 논리에도 맞지 않고 국민건강증진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때문에 조속히 일반 회계 예산으로 전환하고 연간 2,400억 원이 넘는 건강증진기금에서 출연되는 연구비는 건강증진기금 본래의 목적 사업에 맞는 용도로 전환하거나 건강증진과 관련된 연구로 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건의료 연구 개발 ‘철학 부재’

그 외에도 보건의료 분야의 연구비 관리 체계의 문제, 부처별 역할 분담의 문제, 연구 기획과 평가 관리의 과학화·효율화 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보건의료 연구 개발에 대한 철학과 사상이 부실(不實)하거나 부재(不在)하다는 문제로 귀결된다.

국제적인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지구촌 시대에 기술 개발에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국가 정책의 중요한 분야지만 단순히 기술 경쟁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투자하는가에 따라 연구 개발 정책은 산업 정책, 고용 정책, 교육 정책, 경제 정책 등의 다양한 의미와 효과를 가지게 된다.

즉, 보건의료 부문의 연구 개발이 중요한 것은 해당 분야의 예산의 크기뿐 아니라, 연구 개발 자체가 가지는 정책적 효과와 의미 때문인 것이다.

연구비를 투입하는 분야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연구비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주무 부처의 정책과 이들 부처를 이끄는 청와대의 국정 철학의 문제이다.

특히 다른 분야의 연구 개발과 달리 보건의료 부문의 연구 개발은 ▲신기술 개발을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와 ▲실용화 촉진을 통한 보건 산업의 건실한 발전 외에 ▲국민 건강 문제 해결을 통한 삶의 질의 개선이라는 것을 갖추어야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운동의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던 연구 개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학회 웹진의 신년 특집 주제의 하나로 선정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살펴보고 회고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건의료 연구 개발 분야를 보건의료 정책과 산업, 그리고 운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확대하는 노력이 앞으로의 10년의 전망을 밝게 할 것이다.

이상구(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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