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불평등 해소 대안 우리가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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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불평등 해소 대안 우리가 만들자!
  • 조성일
  • 승인 2010.02.0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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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11) 건강형평성 연구

 

건강 정책 분야에서 지난 10년간 있었던 매우 의미 있는 일 중 하나로, 건강정책학회의 창립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의미가 얼마나 큰지는 앞으로의 10년에 달려 있다.

창립하고 처음 맞는 새해 벽두에,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10년을 내다보자는 이 기획은 출범만큼이나 당찬 포부를 보여 준다.

‘건강 형평성’은 건강 정책의 중요한 문제 영역 중 하나이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10의 총괄 목표가 “건강 수명의 연장과 건강 형평성 확보”임을 보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건강 형평성의 10년을 평가하고 10년을 전망하는 것은 그 목표의 달성을 추진해 온 정부에서 조만간 공식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대신, 건강정책학회의 이번 기획에서는 건강 형평성 ‘연구’에 대한 회고와 전망이 한 주제로 포함됐다.

10년새 급속 발전한 ‘건강 불평등 연구’

‘건강 불평등 연구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강영호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건강 불평등을 다룬 연구들이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1997~8년도의 경제 위기를 지난 후에 그러한 연구들이 뚜렷이 증가했고, 특히 2005년을 전후해서는 국제 학술지에 실리는 한국의 연구들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건강 형평성 연구의 발전을 반영하면서도 또 그 발전에 더욱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역시 2003년 10월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창립된 일이다.

당시 건강 형평성 관련 연구 단체인 사회역학연구회, 건강과평등연구회, 건강이론정책연구실 등에서 활동하던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였고, 5개월 뒤에 창립총회를 열어 본격적인 학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 학회는 매년 여러 차례의 학술 행사를 통하여 연구 성과 교류, 연구 방법론 교육, 그리고 관련 단체와의 공동 학술 행사 등을 해 왔고, 보건복지부 연구 용역 과제 수행, 학술지 특집 게재, 미디어 기획 기사 공동 작성, 단행본 출간, 그리고 소식지 발행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어 왔다.

단체로서의 활동 외에도 각 회원들의 연구 논문들이 국내외 학술지에 꾸준히 발표됐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건강 형평성 연구에는 뚜렷한 성과가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2007년 11월 예방의학회지에 5편의 특집 논문을 통해 집약되어 있으며, 그 이후에는 ‘한국건강형평성학회 소식’ 뉴스레터의 매호에 나열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연구자들에 의해 건강 형평성과 관련된 약 100여 편의 국제 학술지 논문이 게재되었으며, 그보다 더 많은 국내 학술지 논문, 학위 논문과 아울러 여러 개의 단행본 저서 및 역서들이 출판되었다.

그 중에서도 건강형평성학회에서 발간한 단행본 ‘건강 형평성 측정 방법론’은 향후 장기간 실증적으로 건강 형평성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건강 형평성! ‘구체적 정책 대응’ 필요

그렇다면 그동안의 연구 결과는 무엇을 알려 주었는가?

예방의학회지 2007년 특집의 한 논문에서 저자들(김유미와 김명희)의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인의 전반적 건강 수준이 뚜렷하게 향상되고 있음에도 광범위한 건강 지표와 건강 위험 요인에 있어서 사회 경제적 위치에 따른 건강 불평등은 일관성 있게 지속되고 있다.

둘째, 이러한 불평등은 사회 변화의 영향을 받아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시간적 추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흡연율 등 일부 지표에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셋째, 흡연, 비만 등 주요 지표에서 사회 경제적 건강 불평등은 젊은 층에서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성인기 전반에 걸쳐 건강 불평등과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되먹임을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볼 때 주의할 것은 지난 10년간 복지의 강화를 위한 상당한 정책적 노력이 있었으며 그 결과가 나름대로 반영된 상태라는 것과, 국제적으로 한국 경제가 상당히 성장하면서 다수 인구의 건강은 대체로 꾸준히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구체적인 정책 대응이 없이는 향후 건강 형평성은 훨씬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역학적 연구→정책적 연구’로 발전해야

현재까지의 건강 형평성 연구는 대체로 불평등의 현황과 사회적 기전의 규명에 집중됐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학적 연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형평성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임을 뜻한다. 현실의 인식이 널리 이뤄져야 했던 단계라는 것이다.

물론 역학적 연구는 꾸준히 계속돼야 하겠으나 다음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책학적 연구가 더 깊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건강 형평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는 건강 정책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책 및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들에 대하여 기존 정책의 분석과 평가, 지속 가능한 구체적 정책 대안의 개발, 정책의 영향에 대한 실증적인 예측 등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의 건강 형평성 추이와 정책 대응 결과를 국제적인 맥락 속에서 해석할 수 있는 비교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철학적, 정치 경제학적 연구들이 뿌리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건강정책학회의 어깨에도 같이 지워져 있다.

복지지향과 시장지향 교차실험 결과는?

지난 10년 기간에 있었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재임으로 복지 지향적 정책 실험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를 내세웠던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 다수 득표로 당선됨으로써 시장주의적 정책 기간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현재의 시점이 이런 전환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향후 10년의 구체적 연구 과제가 무엇인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사회적인 의미를 차치하고 연구 자체의 입장으로만 보자면, 지난 10년과 향후 10년은 국제적으로도 특별한 가치를 지닐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기회이다.

‘좌파적’(복지 지향적) 정책 개입 10년에 뒤따르는 ‘우파적’(시장 지향적) 정책 개입 10년의 대규모 교차 실험(cross-over trial)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설계에서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는 잔류 효과(carry-over effect)는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추구하는 현 정부의 집착으로 인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는 “지난 10년간 시장의 횡포를 완충시키려 했던 많은 정책들은 어떤 효과가 있었는가?”이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10년간은 시장에 모든 것을 내던지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난 10년의 정책이 큰 효과가 있었다면 앞으로의 정책에 균형을 요구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반면, 지난 기간의 정책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을 시장의 손아귀에서 되찾으려는 외침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건강형평성 연구의 가치 살려야…

아울러 이제부터의 시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주어진다:

“시장지향적 정책이 형평성을 악화시키는가?”
“시장지향적 정책의 폐해를 보완할 약자보호정책이 가능한가?”

이러한 역사를 실험적 상황으로만 보기에는 그 이면에 지난 10여 년간 두 차례 경제 위기를 넘으면서 겪었던 너무나 많은 이들의 절규와 피눈물이 배어 있다.

건강 형평성 연구는 누구를 위한 연구인가?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고 그러한 고통에 짓눌려 있는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연구가 되어야 형평성 연구는 윤리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즉, 연구의 결과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때까지 연구자들은 윤리적인 짐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짐을 나누는 행동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부터 나온다.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에 의해 시작된 “Commission on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CSDH)”의 최종 보고서가 2008년에 “Closing the gap in a generation: health equity through action on the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다.

이것은 알마아타 선언에 비견할 만큼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보고서는 건강 형평성의 실현을 위해 세 가지 핵심 제안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첫째, 일상의 생활 조건을 개선하라.
둘째 권력, 돈, 자원의 불공평한 분포에 대처하라.
셋째, 문제를 측정하고 이해하며 행동의 결과를 평가하라.

CSDH 보고서에는 한국의 건강 형평성 연구들도 인용되어 있다. 나아가 한국은 사회 보호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경제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제시되어 있다.

세계를 둘러보면 아직도 불평등의 늪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은 세계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모범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실패 사례를 제공할 것인가. 당차게 출범한 건강정책학회가 뜻을 같이 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 방향타를 잡는 역할을 하기를 기원한다.

조성일(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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