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치 세월의 한 축, 그녀들의 밥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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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치 세월의 한 축, 그녀들의 밥 한 끼
  • 김병주
  • 승인 2010.02.16 17:1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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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어쩌면 그 놈의 ‘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리의 정치가 더 낯익던 시대, 선배들은 그렇게 늘 후배 소맷자락을 끌고 허름한 대학가 소주 집을 찾아 거친 시대를 술로 토해냈다.

그로부터 짧게는 10년 길게는 20여년…. 어느새 학부모가 될 만큼의 세월이 흘렀고, 그만큼 생활의 편리에도 익숙해져 있다. ‘건치’ 안에서는 허리 격에 있는 그녀들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현실은 ‘여성’이어서 여전히 소수라는 점. 그녀들이 오랜만에 격의 없는 방담을 나눴다. 특별한 주제랄 것은 없었다. 알고 보니 우선, ‘그녀들’끼리의 밥 한 끼가 오랜만이었다.

그럴 만큼 바빴나. 세월만큼이나 달라진 그녀들만의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가뜩이나 가라앉아 있었던 지난 6월 어느 날이었다.

#참석자 ▲위유민(42. 위민치과) ▲김영옥(40. 정성국치과) ▲김진이(38. 수치과) ▲조성희(40. 양치과) ▲정민영(36. 민치과)

▲ 민영 : 언니, 몇 달 됐어? 진료 않고 있잖아?
(얘기는 금세 김진이 회원한테 쏠렸다. 올 들어 생활에 적지 않는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 진료를 그만두고 자기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는 중이다.)

▲ 영옥 : 야, 참 럭셔리하게 산다. 너!
(시샘 반, 질투 반이다. 다들 한마디씩 빗장을 걸고 나섰다.)

▲ 진이 : 좋긴 좋더라. 남편이 가져다 준 돈 아껴 쓰다 보니. 1만원 갖다 주면 1만원 쓰고, 2만원 갖다 주면 2만원 쓰고….
(주변의 부러운 눈길이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한발 더 나갔다.)
언니! 노니까 얼굴 피부부터 달라지지 않는가?
(격려와 질투가 교차하는 웃음소리)
사실 어제 잠을 못 잤단 말야. 오늘은 뭔 작품을 빚어 볼 것인가. 작품구상을 하다 보니….
(결코 밉지 않는 만용에 두둑한 여유까지…. 전에 없던 일이다. 다시 한 번 방안이 자지러졌다.)

(화제를 바꿨다. ‘왜 건치였느냐?’는 새삼스러운 질문이 됐다. 그 시대엔 그냥 그랬단다. 다른 거창한 것을 논하기 전에, 무엇보다 자신을 지탱해 온 든든한 끈이었다고 했다.)

▲ 유민 : 94년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냥 강물 흐르듯 왔지. 만나는 사람들이 건치 선배들이었고, 다들 또 사회에 나가서도 잘 살고 있었고. 특별할 것 없이, 나한텐 그게 순리였어.

▲ 영옥 : 졸업할 무렵엔 처음 고민을 좀 했지. 치과의사를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나름대로 학생운동 때 생각했던 것들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놓고 말야.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치과의사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치과의사로서 사회운동에 쉽게 접목할 수 있는 것은 건치활동 밖에 없었어.

▲ 위유민

위유민, “건치를 흔들림 없이 끄고 올 수 있는 큰 힘은 시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인 것 같아”

 

▲ 유민 : 사회참여 뿐 아니라, 진료영역에서도 임상 공부도 꽤 많이 했잖아.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구강보건에 어떻게 도움 될 것인가 하고…. 이런 것들이 건치를 흔들림 없이 끌고 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었던 것 같아.

▲ 민영 : 지금 보면 학생회 활동을 했을 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치에 활동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느슨할지라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아. 나도 지금 내가 투철하게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이 끈을 놓는다는 것은 20대에 내가 가졌던 꿈을 다 저버리는 것 같고 해서…. 내가 지금 그렇잖아. 활동은 않지만, 그래도 가끔 게시판에 글이라도 남기는 게.

▲ 조성희

 

조성희, “현재 건치에서 한발 빠져 나왔지만 그래도 그 자리가 있다는 게 나에겐 위안이 돼”

 

▲ 성희 : 선배들이 그냥 너무 좋았어. 내가 2000년 결혼했는데, 어느 순간 여자 동기들은 거의 없고 좀 시들시들해지면서 그만 두게 됐지. 지금까진 그냥 밖에서 보고만 있는 거지. ‘잘 하고 있나?’ 하고. 한발 빠져 나왔지만, 그래도 뭔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게 나한테는 위안이 되고. 뭐 그런 것 있잖아….
(조성희씨는 결혼 후 회원활동을 그만 둔 상태다. 그러나 그 마음이야 다를까…. 이 대목에서 술잔이 부딪혔다.)

(건치 회원의 90%는 남자다. 엄밀한 의미에서 조직문화 역시 다를 리 없다. 그 안에서 느끼는 여성 회원들만의 어려움은 없었을까.)

▲ 유민 : 당장 애가 삐약삐약하는데 말야. 회의하면서 잠시 쉬고 있으면서도 (한편에선) 집에 들어가서 애도 봐야 할 것 같고….

▲ 진이 : 그것 뿐인가? 육아가 없더라도 어려워.

▲ 민영 : 나 같은 경우는 내가 기획행사팀 팀장이었지만 팀원은 남자들이 대부분이거든. 그런데 남자들은 생활적인 것도 그렇고, 오락적인 것도 그렇고, 당구치고 술도 마시고 모든 것이 건치 안에서 다 해결이 돼. 그런데 나는 이 팀원들하고 화장품 얘기를 할 수도 없고, 여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감대를 절대 형성할 수 없단 말야. 사람들과 끈끈한 것을 형성할 수도 없고, 알게 모르게 소외감 같은 것들을 많이 느껴. 도저히 극복 안 되는 게 있단 말야.

▲ 진이 : 기대 꺼라. 아무리 해도 그것 극복 안 될 거다.
(다 같이 웃음)

▲ 김진이


김진이, “사진 소모임 하면서 점점 행복해지는 것 같아. 건치를 바라보는 관점도 너그러워지고”

 

▲ 민영 : 기획행사팀 같은 경우 섬세한 것들도 많고, 여성 회원들하고 같이 하면 더 재미있게 내 나름대로 풀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업으로만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좀 아쉬워.

▲ 영옥 : 사회에서 볼 때 우리는 다들 슈퍼우먼이잖아. 치과에서도 일하고, 애기도 키우고, 시댁에서는 집안 일 다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점점 여자 회원이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거지. 그럴수록 나는 이런 모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나중에 어느 정도 애들이 커서 우리 손을 떠나게 될 거 아냐. 지금은 발가락만 담그고 생활한다고 할지라도, 나중에 우리가 40대, 50대, 개원 20년차, 30년차 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지.

▲ 민영 : 그런 인적 풀들이 건치에 계속 축적이 되어야 그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데…. 그러지 않는 상태에서 여자 혼자서는 할 수가 없어.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 영옥 : 내가 워낙 여성적인 면이 없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여자였기 때문에 못하거나 하는 문제는 없었다고 보거든. 그런데 내가 처음 벽을 느꼈던 때가 있어. 그것은 애들 낳고 나서 내가 왜 일을 그만 둬야 하는지 그것이었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애 낳아 줬으면 됐지. 네가 들어가서 애를 봐 줘야지, 왜 나한테 일을 그만 두라고 하느냐’ 그거지. 이런 것 때문에 2~3년 동안 싸웠지. 결국 내가 지고 말았지만….
(다 같이 웃음)

▲ 김영옥

 

김영옥, “뭔가 밖에 나가 활동해야 살아 있다는 것을 느껴. 그렇지 않으면 병 날 것 같아”

(시간의 흐름은 어느새 의욕과 달리 아이들의 엄마로서, 주부이자 생활인으로서 또 다른 삶을 부여안게 됐다. 직업적 신분이 주는 생활의 편리에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이런 경우다.)

▲ 성희 : 시내버스비를 잘 몰라 내가 인터넷 검색을 했다니까. 한번은 내가 1천원을 내고 한참 기다려도 이 버스기사가 잔돈을 안 남겨주는 거야. 내가 그랬지. ‘아저씨, 왜 잔돈 안 나와요?’하고 말야. 그랬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주머니!’하고 나를 쳐다보더라고. 얼마나 창피하던지. 난 900원인 줄 알았거든….

(경제적 여유만큼, 삶의 내면도 살찌워졌을까? 활동하는 만큼 보람도 있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진이씨의 진솔한 고백은 참 의외였다.)

▲ 진이 : 올해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든. 그동안 일하느라 애들 못 봐 줬는데, 애들한테 관심 좀 가져야겠다 싶더라고. 4월부터 치과를 쉬었어. 솔직히 말해 그동안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나도 건치 활동했지만, 남편이 워낙 열심히 하다 보니 내가 끼어들 틈도 없었고, 오죽했으면 난 제발 남편이 좀 안했으면 했고…. 나도 꿈이 있었지만, 내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 하는 것도 싫고, 정말 울기도 많이 했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들이 아니다. 치과를 그만둔 것은 그 나름의 아픔이 있었던 탓이었다. 어느새 분위기도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 진이 : 내가 행복해져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나를 위하자. 내가 먼저 서야 한다’는 생각…. 남편 고생한 줄 알지만 과감하게 시간을 냈어. 나는 선배들이나 후배들한테도 말하고 싶은 게, 정말 자기 삶을 좀 찾으라고 얘기하고 싶어. 육아도 중요하고 뭣도 중요하지만 엄마가 행복해야 자기도 행복해지는 거니까…. 행복해지는데, 결코 시간투자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지나온 상처를 되새김하는 아픈 고해성사가 아닐 수 없었다.)

▲ 진이 : 그런데 사진 소모임하면서 점점 행복해지는 것 같아. 건치를 바라보는 관점도 좀더 너그러워지고. 본격적으로 쉰지 얼마 안됐는데, 6월부터는 새로 도자기 만드는 일에 도전하고 있어. 그런데 참 재미있어. 내 꿈은 그런 것들을 나중에 건치에서 장기적으로 잘 풀어보는 거야. 나이 들어 전시회를 한다거나 사진첩이나 책을 낸다거나. 난 지금 굉장히 행복해. 남편도 좋아 보이고.

▲ 모두 : 와! 참 멋있네.

▲ 영옥 : 그게 정말 중요해. 나도 퇴근해 집에 들어가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치과 일 하고 집에 가고, 치과 일 하고 집에 가고 그러는 게…. 나도 마음 좀 달래보려고 선배가 해 보라고 해서 피아노도 쳐 보고, 뭣도 해 보고 했는데…. 난 어차피 뭔가 밖에 나가 활동해야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병 날 것 같아.

▲ 정민영

정민영, “나는 싫은 데 뭘 해야 한다면 하는 거야. 그 안에 내 뜻은 없었어”

 


▲ 민영 : 나도 오마이 캠 활동했지만, 사실 그것이 내게 맞는 것은 아니었거든. 내가 내 자신과의 관계를 외면한 채, 계속 단체활동 한다면서 정작 내가 나를 소외시키고 있는 게 굉장히 공허하다는 것을 느껴.

난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는 스타일이야. 나는 싫은데 뭘 해야 한다면 하는 거야. 늘 그런 식으로 살아온 거지. 그 안에 내 뜻은 없었어. 그게 싫어. 그런 면에서 진이 언니가 난 너무 부러워. 단순히 쉬고, 사진 찍고, 도자기 굽고 해서가 아니라, 언니가 언니를 새로 알게 된 것이니까.

(격려와 위로가 오고 가는 그 가슴 밑바닥엔 말은 서로 없었지만 왠지 마음 무거운 그 무엇이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일테다.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비보로도 그 충격이 자못 클 때였다.)

▲ 민영 : 정권 바뀐 1년 만에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게 이게 말이 될까.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게 정말 허점이 많구나 하는 걸 느꼈어. 정권 한번 잡고 대통령 한번 뽑아놓으면 5년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잖아. 이명박 정권 하는 걸 보면 정말 허망하다는 생각도 들고. 정말 한 밤의 꿈이었나….

▲ 영옥 : 난 생각이 좀 달라. 노무현도 겪어 봤고, 왜 그 사람이 한계에 부딪혔는지도 경험해 봤고, 그것에 역행해 이명박 같은 사람도 대통령 하는 것도 봤고…. 경험할 대로 경험해 봐서 이제 국민의식이 많이 높아졌다는 것이지. 그러면 차라리 더 밟아주라는 거지. 그럴수록 국민들은 다시 일어 설 수밖에 없다고 봐. 문제는,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가고 대안을 세워 가느냐 하는 거야.

▲ 유민 : 더 중요한 것은 이게 행동으로 나와야 하거든. 지난 보궐선거 한나라당 한번 봐. 성추행 하는 사람들도 다 당선되고 하잖아. 깨어 있는 정신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해.

▲ 민영 : 영옥 언니 말은 너무 희망적인 것 같아. 인터넷 보면 다 생각들이 분출돼 있어. 싫다고 하는데도 응집돼 있지 않고, 한 곳에 모일 데도 없고, 각개로 놀고 있고. 운하는 운하대로, 조중동은 조중동대로 싸워야 하고…. 도대체 뭣부터 막아야 돼.

▲ 유민 : 사회변혁이란 것은 좀 과감해야 돼. 그러니까 이명박 하는 방법은 노무현 때 했어야 하는데. 타협하지 않고….

▲ 성희 : 운동을 그렇게 하지 않았던 내 동기인데 노무현 충격으로 아노미 상태에 빠진 것 같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그 친구 말을 듣고 내가 너무 뜨끔하고 부끄럽더라고. 정말 우리 국민성에 문제가 있나 그런 생각도 해 봤어. 쉽게 잊어버리는 것.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보면 우린 아직 멀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예전에 시장이나 거리 나가면 힘들어도 박수도 쳐 주는 사람도 있곤 했지만, 지금은 아무 관심 없어. 관심 가질 만큼의 여유도 없는 것이지.

(그러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다시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 진이 : 다른 데서 봤을 때 반문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건치가 현재 여건에서 지금 정도의 역할을 하고 점차 저변을 늘려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우리 사회가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 성희 : 예전에 보면 건치는 다른 치과의사들과는 조금 동떨어진 사업도 많이 했었어. 그런데 끊임없이 좋은 교육이나 세미나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미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한테도 좀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모든 게 확 바뀔 수 없잖아. 멀리보고 이렇게 꾸준히 가는 게 난 낫겠다고 생각해. 지금 이 모습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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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경 2010-02-21 21:53:41
삶에서 인간의 냄새가 듬뿍나는 대화, 참 향기롭게 보입니더. 다음에는 나도 좀 끼이게해 주이소. 나도 마음만은 팔팔합니다.

이선장 2010-02-16 18:36:05
그래도 다들 잘 살고 있네.. 유민 누나부터.. 영옥이,성희,진이,민영이.. 다들 소식 들으니 반갑네.. 특히 성희는 정말 오랜만에 소식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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